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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1405

한착(寒浞): 16세에 상국이 되고, 20세에 왕위를 찬탈하고, 60년간 화하를 통치했으나, 역사에서 말소되다... 글: 소왕설역사(小王說歷史)​하(夏)나라의 역사에서 한착(寒浞)이라는 이름은 아는 사람이 적다. 그러나 그의 경력은 눈길을 끈다. 16살때, 한착은 상국으로 발탁된다; 겨우 4년이 지난 후에 그는 음모를 통해 왕위를 찬탈하여 화하를 통치하는 국왕이 된다. 그리고 정권을 60년간 장악한다. 그의 폭정, 음모, 도살은 역사서에 적지 않게 기록되어 있다. 결국 그는 주류의 제왕명단에서 말소된다. 한착은 어떻게 집에서 쫓겨난 소년에서 야심만만한 찬탈자가 되었을까? 그근 왜 그렇게 오랫동안 통치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최종적으로 역사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었을까? 이들 문제는 무수한 역사애호가들의 흥미를 끄는 이슈이고 깊이 생각에 빠져들게 만든다.​한착의 어린 시절: 쫓겨난 소년​한착의 어린 시절은 동탕과 폭력으.. 2024. 11. 22.
웅정필(㷱廷弼): 역사의 붕괴, 누구도 화를 피할 수 없다. 글: 일경지월(一景之月)​1​명나라말기의 역사를 읽다보면 한 사람을 절대로 피해갈 수가 없다. 그는 바로 명장(名將) 웅정필(熊廷弼)이다.​그는 아마도 척계광(戚繼光)처럼 빛나지도 않고, 이성량(李成梁)처럼 야심이 크지도 않았고, 심지어 그의 뒤를 이은 손승종(孫承宗)만도 못할지 모른다.​그러나 그는 여전히 유일무이한 존재이다.​웅정필은 어렸을 때, 그다지 편안하게 보내지 못했다. 비록 공부는 잘했지만, 현실은 그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지 않았다. 웅씨집안은 돈이 없었고, 먹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공부하면서 일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살림살이는 여전히 별로 바뀌지 않았다.​스무살이 되던 해, 고향인 강하(江夏, 지금의 호북성 무한시)에는 연속 3년간 기근이 든다. 일가.. 2024. 11. 18.
방통(龐統)의 죽음에 관한 몇 가지 의문.... 글: 정월난양(淨月暖陽)​삼국연의 덕분에, "와룡, 봉추중 한명을 얻으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는 말로 우리는 삼국시대에 방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명성을 천추에 남긴 제갈량과 나란히 이름을 떨칠 정도인데, 일찌감치 죽어버려서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와룡, 봉추가 모두 있었더라면, 유비는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을까?​소설에서 방통은 서천(西川)을 취하는 전투에서 죽었다. 그가 죽은 곳은 "낙봉파(落鳳坡)"이다. 유비의 백마 "적로(的盧)"를 탔는데, 적로는 예로부터 "극주(克主)"로 유명했다. 그리고, 그가 죽은 상황은 명장 방연(龐涓)과 극히 유사하다. 이렇게 많은 신기한 점들이 있으므로 방통의 죽음은 "천명으로 정해진 것(天命注定)"이라.. 2024. 11. 15.
유인궤(劉仁軌): 당나라때 출장입상(出將入相)의 항왜민족영웅 글: 최애역사(最愛歷史)​당고종(唐高宗)때 낙양(洛陽)에 순우씨(淳于氏)라는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남편을 죽인 죄로 대리시(大理寺)에 압송되어 수감되었다. 그녀의 죄명은 마땅히 사형감이다. 그런데 재상(宰相) 이의부(李義府)가 마침 대리시를 시찰왔다가 순우씨를 보고 그녀의 미모에 반해버린다.​그리하여, 이의부는 대리시승(大理寺丞) 필정의(畢正義)에게 자신이 순우씨를 첩으로 삼고 싶으니, 방법을 찾아서 그녀를 풀어주라고 말한다.​필정의는 그저 담량이 적은 관리였다. 재상의 분부를 어찌 어길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몰래 희생양을 찾아서 순우씨와 바꾸게 된다. 그런데, 이 일이 나중에 대리시경(大理寺卿) 단보현(段寶玄)에게 발각되고, 그가 고발하여 경성을 뒤흔들게 된다.​사안이 중대하다보니 당고종이 직접.. 2024. 11. 14.
양각애(羊角哀)와 좌백도(左伯桃): 결의형제(結義兄弟)이야기의 원조 글: 자귤(紫橘)​도원삼결의(桃園三結義)를 배울지언정, 와강일주향(瓦崗一炷香)은 배우지 말라. 유비, 관우, 장비가 결의형제를 맺은 후, 생사를 같이 하기로 하는 형제가 된다. 그들이 결의를 맺은 이야기는 후대에까지 칭송받고 있다. 이후 형제결배(結拜)이건 아니면 흑방결배이건 모두 도원결의의 여파라 할 수 있다. 다만 실제로, 유관장의 도원결의 이야기는 명(明)나라때 비로소 나타난 것이다. 명나라이전에 형제간의 결의를 맺을 때는 양각애와 좌백도를 따랐다. 이 두 사람 간에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별로 유명하지 않은 형제정의​양각애, 좌백도의 이야기는 정사(正史)에 실려 있지 않다. 두 사람의 이야기의 출처는 서한시대 유향(劉向)의 이다. 아쉽게도 원문은 송나라때 이미 유실되었고, 오늘날 볼.. 2024. 11. 13.
당덕종(唐德宗): 큰 일을 하려다, 큰 일을 당하다 글: 최애역사(最愛歷史)​안사의 난(安史之亂)이후, 당나라는 이미 "부고모갈(府庫耗竭, 국고를 소모하여 고갈되다)", "금군미약(禁軍微弱)"의 곤경에 빠진다. 그러나, 제오기(第五琦), 유안(劉晏), 양염(楊炎)등 이재(理財)대가들의 노력을 거쳐, 당덕종 즉위초기인 건중원년(780년)의 국고세수는 이미 1305만관곡(貫斛)에 이른다. 정상적인 세입외에 매년 700만관곡에 이르는 염리(鹽利)세수도 있었다. ​그의 부친 당대종(唐代宗)의 즉위초기와 비교하면 국고수입은 몇배로 늘었다.​이런 자금은 당덕종의 허리를 튼튼하게 만들었고, 그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삭번(削藩)"전쟁을 시작한다.​그는 큰 일을 하고자 했다(大幹一場). 그러나 역사는 오히려 이를 피동문장으로 바꾸어 버렸다. ​1​안사의 난 이후, 당나라.. 2024. 1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