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국진(方國珍): "원나라를 망하게 한 자는 방국진이다(亡元者, 國珍也)"
글: 서북낭(西北狼)청나라때의 명사연구자인 부몽린(傅夢麟)은 원나라말기 농민반란을 연구하면서 내린 결론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원나라를 망하게 한 자는 바로 방국진이다(亡元者, 國珍也)"그렇다. 부몽린이 보기에, 원나라에 가장 크게 해를 끼친 자는 진우량(陳友諒)도 아니고, 장사성(張士誠)도 아니며, 더더구나 주원장(朱元璋)은 아니었다. 오히려 원나라말기 난세에 존재감이 별로 없는 소군벌 방국진이었던 것이다.더욱 이해되지 않는 점이라면, 반원의 기치를 가장 먼저 들었던 방국진은 원말의 난세를 무사히 넘기고, "명태조 주원장의 통치하에 말년을 편안하게 보내면서, 자손을 보호하고, 부귀복록을 누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강남백만병을 모조리 죽여버렸다는 주원장이 왜 유독 자신과 천하..
2024. 10. 6.
춘신군(春申君) 황헐(黃歇): 군왕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신하가 임신한 소첩을 바치다.
글: 역사대미감(歷史大微鑒)옛사람들은 이런 말을 했었다: "불효에 세 가지가 있는데, 후사를 두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크다(不孝有三, 無後爲大)" 이를 보면, 옛사람들은 가족혈맥의 전승을 매우 중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백성도 마찬가지이니, 왕실은 더욱 신경썼다. 황제가 만일 생육능력이 없다면, 이는 단순히 효 불효의 문제가 아니라, 황위를 노리는 자들이 기회를 노릴 수 있어, 통치지위에 위기가 미치고, 국가가 동란에 빠질 수 있다. 그러므로 '전종접대(傳宗接代)'는 황제의 가장 중요한 직책중 하나가 된다.역사상 후사를 두지 못한 군주는 많다. 한소제 유불릉, 한애제 유흔, 명무종 주후조, 광서제 재첨, 선통제 부의가 모두 일국지군으로 후사를 두지 못한 경우이다. 그리고 춘추전국시기에 한 초나라..
2024.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