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열람서영(悅覽書影)
1635년 청태종(淸太宗) 홍타이시(皇太極)은 누나인 망구지를 능지처참한다. 형집행당일, 망구지는 옷이 모두 벗겨진 상태로 사람들 사이로 끌려간다. 현장에 도착한 후, 형집행인은 망구지의 살을 하나하나 베어내었다. 처참한 비명소리가 성경(盛京, 지금의 심양)에 울려퍼졌다. 칼질을 300번 했을 때 망구지는 숨을 거둔다.
능지(凌遲)는 중국역사상 가장 잔혹한 형벌중 하나이다. 형집행인은 수형자의 살을 정해진 수량 베어냈을 때 죽도록 해야 한다. 전체 과정에서, 수형자는 육체와 정신상의 이중고통을 겪는다. 홍타이시는 왜 자신의 누나에게 이렇게 잔인한 형을 집행하도록 했을까? 이 일은 망구지의 동모동생 망구얼타이(莽古爾泰)부터 시작해야 한다.
1
망구얼타이의 생모는 누르하치의 계비인 군다이(衮代)이다. 37년간의 혼인생활에서 군다이는 누르하치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낳는다. 바로 망구지, 망구얼타이, 더거레이(德格類)이다.
누르하치는 군다이를 매우 신임했고, 집안의 크고 작은 일, 재무권한을 포함해서 모두 그녀가 처리하도록 맡겼다. 상삼기(上三旗, 만주팔기중 황제가 직접 관장하는 3기)중 정남기(正藍旗)는 군다이의 자녀들이 관장하도록 맡겼다.
망구얼타이는 적자(嫡子)이고, "사대패륵(四大貝勒, 다이샨, 아민, 망구얼타이, 홍타이시)"중 하나로서 원래 황제후계자의 후보에 들어간다. 그러나 누르하치가 사망한 후, 아무도 망구얼타이를 옹립해주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망구얼타이가 벌인 황당한 짓때문이었다.
군다이는 여러 해동안 총애를 받아왔는데, 돌연 누르하치에게 버림받는다. 이유는 "사장금백(私藏金帛, 사사로이 금은보석과 비단을 감추어두다)"이었다. 그러나, 진상은 군다이와 대패륵(大貝勒) 다이샨(代善)간의 불륜이었다. 누르하치는 차마 처를 죽이지 못하고, 그저 다른 핑계를 대어 버린 것이다.
여진족은 수계혼(收繼婚)의 습속이 있고, 당시 다이샨은 이미 저군(儲君, 후계자)이었다. 누르하치가 죽으면 군다이는 자연스럽게 다이샨의 처가 되는 것이다. 다만, 누르하치는 일시적으로 화가 치솟아서 그녀를 버린 것이니, 화가 가라앉고 나면 다시 군다이를 데려갈 터였다. 그리 될 것은 나중의 대비(大妃) 아바하이(阿巴亥)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바하이도 마찬가지로 다이샨과 모종의 관계가 있었고 마찬가지로 "사장금백"이라는 이유를 들어 친정으로 쫓아낸다. 그러나 누르하치는 1년후에 다시 아바하이를 데려간다. 그러나 군다이는 아쉽게도 그렇게 될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다.
<청태종실록>에 따르면, "군다이는 아들 망구얼타이의 손에 죽었다."
망구얼타이는 군다이가 다이샨과 사사로이 정을 통한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후계자가 되는데 영향이 있을까 우려한다. 그리하여 악독하게 마음을 먹고 모친을 죽여버린다. 그리고는 바로 누르하치에게 달려가서 보고하고 칭찬을 받으려 했다.
누르하치는 비통해 하면서, 망구얼타이를 욕했다: "짐승같은 놈!"
망구얼타이는 이 일로 민심을 잃고, 칸의 지위를 승계할 자격도 잃게 된다. 다이샨은 전처의 아들인 슈투어(碩托)를 모함하여 그로 하여금 반란을 일으키게 해서, 저군의 지위를 박탈당한다. 그리하여 서자(庶子)였던 홍타이시가 황위에 순조롭게 등극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홍타이시의 승계는 여러 세력들이 타협한 결과였다. 칸의 자리를 공고히 하려면, 다른 '사대패륵'의 세력을 약화시켜야 했다. 정남기를 장악하고 있고, 성격이 거친 망구얼타이는 금방 홍타이시의 함정에 빠져버리고 만다.
2
1631년, 명나라와의 능하지전(凌河之戰)에서 망구얼타이의 정남기는 크게 타격을 입는다. 홍타이시는 그가 전투기회를 놓쳤다고 질책한다. 망구얼타이는 화가나서 반문한다: "너는 나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
홍타이시가 다시 반문한다: "너는 설마 자신이 당초 어떻게 모친을 죽이고 칭찬을 받으려 했는지 잊었느냐?"
홍타이시의 뜻은 너 망구얼타이는 생모까지도 죽이는 자인데, 설마 전투기회를 놓치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느냐라는 것이다. 홍타이시의 이 말은 망구얼타이의 아픈 곳을 찔렀고, 화가는 망구얼타이는 칼을 5치나 뽑는다. 다행히 동생 더거레이가 주먹을 휘두르며 막고서 망구얼타이를 영장(營帳)에서 끌고 나갔다.
그날 저녁, 망구얼타이는 술에 취해서 그랬다고 하면서 홍타이시에게 사죄한다. 그러나, 홍타이시는 그를 영장 안으로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망구얼타이는 이로 인하여 다라패륵(多羅貝勒)으로 강등되고, 5우록(牛錄, 팔기내의 단위)의 인구와 1만냥 백은을 잃게 된다.
망구얼타이는 마음이 울적해져서 망구지를 찾아가 호소한다. 망구지는 비록 동생이 모친을 살해한 짓은 잘못한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지만, 그래도 망구얼타이와 더거레이는 그녀의 동생들이다. 그래서 망구얼타이가 홍타이시를 독살하고 칸의 자리를 빼앗자고 얘기했을 때, 망구지도 동의하게 된다.
그러나, 망구지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반란에 동참하기로 하고 피를 뽑아 맹세한 7명중에서 2명이 배신한 것이다.
먼저 밀고한 자는 바로 망구지의 남편인 소노무(瑣諾木)이다. 두 사람은 정략결혼을 한 사이였고, 서로간에 애정이 없었다. 홍타이시는 망구지가 소노무에게 시집갈 때 그에게 하사품을 많이 내려주었었다.
그리하여 소노무는 홍타이시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연회때 술에 취한 척하면서, 홍타이시의 귀쪽으로 엎드려 그에게 망구얼타이를 조심하라고 알려준다.
그 일이 있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망구얼타이는 돌연 급사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남기를 장악하고 있던 더거레이도 마찬가지고 급사하고 만다. 망구지가 아무리 멍청해도, 두 동생이 왜 죽었는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리하여 홍타이시에게 원한을 품게 된다. 이때 홍타이시는 아직 망구지를 처리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스스로 죽을 길을 찾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1635년, 후금의 강적 린단칸(林丹汗)이 패망하고, 홍타이시와 여러 패륵들은 린단칸의 미망인들을 나누어 가진다. 타이쓰나보치(苔絲娜伯奇) 푸진(福晋, 만주어로 부인이라는 뜻임)은 홍타이시의 장남 하오거(豪格)에게 준다. 그런데 두 사람의 혼례당일 망구지가 혼례식장에서 난동을 부린다.
원래, 동생이 죽은 후, 망구지는 희망을 외손자에게 걸었다. 그녀의 딸은 하오거에게 시집갔고, 원래 외손자가 칸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홍타이시가 다른 여자를 하오거에게 내린 것이다. 그리하여, 망구지는 혼례식에서 홍타이시에게 이렇게 묻는다: "네가 이렇게 하면, 내 딸은 어떻게 되라는 것이냐!"
홍타이시는 좋은 말로 타일렀으나, 망구지는 그가 자신을 놀린다고 여긴다. 결국 홍타이시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망구지를 연금시켜버린다. 망구지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누나인데, 설마 말을 심하게 했다고 하더라도 홍타이시가 나를 심하게 처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망구지의 심복인 냉승기(冷僧機)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말다툼에서 냉승기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리하여 망구지가 연금된 틈을 타서, 냉승기는 결단을 내리고, 망구지와 망구얼타이 오누이가 밀모했던 일을 고발한다.
홍타이시는 대노하여,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한다. 과연 망구얼타이의 집안에서 10여개의 금인(金印)이 나왔다. 소노무는 이를 보고 망구지와 더거레이가 함께 맹세한 것을 진술해버린다: 우리는 겉으로는 황상을 모시는 것처럼 하면서, 속으로는 너를 도와주겠다.
홍타이지는 망구지를 능지처참에 처하고, 정남기내의 심복들 1천여명도 함께 처결한다.
이렇게 되면서, 홍타이시는 정남기를 정식으로 자신에게 귀속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정남기를 새로 통합정리하여, 일부분은 자신이 이끄는 정황기(正黃旗)와 상황기(鑲黃旗)에 집어넣고, 일부분은 새로운 정남기를 조직하여 아들 하오거로 하여금 관장하게 한다.
3
결국, 망구지는 정치투쟁의 희생양이었다. 그녀의 최후는 홍타이지가 칸의 지위를 승계할 때 이미 결정된 셈이다.
망구지의 일생은 아주 비극적이었다. 모친은 피살당하고, 남동생들은 급사하고, 남편은 배신하고, 심복은 밀고했다. 그 자신도 정략결혼의 도구였다.
백성들은 모두 황족의 생활을 선망하지만, 만일 선택할 수 있다면, 망구지는 평범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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