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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1389

천리교(天理敎)의 난: 자금성까지 쳐들어가다. 글: 호연문사(浩然文史) 청나라의 용상이 가경제(嘉慶帝)에게까지 전해졌을 때, 국세는 이미 강옹건(강희, 옹정, 건륭)시대처럼 대단하지는 않았다. 가경제때의 백련교(白蓮敎)의 난은 5개 성에 화가 미쳤고 8년간이나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런 동란에도 가경제를 비롯한 청나라조정에서는 그다지 큰 일로 인식하지 않았다. 다만 통상적인 농민반란으로 치부하며 처리했다. 그러나 몇년후인 가경18년(1813년) 천리교의 난이 발생하고, 이들은 자금성내까지 쳐들어와서 직도황룡(直搗黃龍)의 기세를 보이게 된다. 비록 천리교의 난도 몇달내에 평정되었지만, 청나라조정은 극도로 놀라서, 가경제는 죄기조(罪己詔, 황제가 스스로의 잘못을 반성하는 조서)를 내리고, 청나라는 사교에 대한 단속을 전면적으로 강화하게 된다. 가경원년,.. 2022. 6. 20.
삼국시대 12필의 명마(名馬) 글: 흔다적노력(很多的勞力) 적토(赤兎) 말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적토연지수(赤兎臙脂獸). 머리부터 꼬리까지 길이가 1장이며, 말굽부터 꼭대기까지 키는 8척이다. 포효하면 하늘로 오르고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이다. 이 말은 먼저 동탁(董卓)이 타가가, 나중에 양아들 여포(呂布)에게 넘겨준다. 인중여포, 마중적토는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여포가 죽은 후에는 조조(曹操)가 관우(關羽)에게 넘겨주고, 관우는 이 말을 아주 좋아한다. 관우가 죽은 후, 이 말은 여러 날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결국 굶어죽는다. 이 말은 말중의 극품일 뿐아니라, 의리를 아는 좋은 말이었다. 적로(的盧) 마작적로비쾌(馬作的盧飛快), 궁여벽력현경(弓如霹靂弦驚). 적로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아주 빨리 달리고, 아주 높이 뛴다. 비록.. 2022. 6. 16.
아편전쟁(阿片戰爭)때의 중국인 글: 노패악곤(老牌惡棍) 1840년 7월 5일, 자금성(紫禁城)은 다른 날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이 날, 상처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도광제(道光帝)는 조제가법(祖制家法)에 따라 기춘원(綺春園)으로 가서 황태후에게 문안을 드렸고, 그후 몇 건의 일상적인 공문을 처리했다. 이 근검절약하기로 유명한 황제는 이때 알지 못하고 있었다. 천리 밖의 절강(浙江) 정해(定海)에서 중국에 “천년동안 없었던 대변국(千年未有之大變局)”의 전쟁이 소리없이 개시되고 있었다는 것을. 이때의 청나라는 역대왕조와 마찬가지로, 그저 “천하”만 알았지, “세계”는 몰랐다. 도광제도 역대제왕들과 마찬가지로 화이(華夷)만 알았지, 중외(中外)는 몰랐던 것이다. 비록 부친과 조부인 가경제(嘉慶帝)와 건륭제(乾隆帝)떄, 전후로 매카트니와 .. 2022. 6. 10.
중국에서 왜 하왕조(夏王朝)의 유적을 발견할 수 없을까? 글: 미언천담(薇言淺談) 수십만년전의 베이징인도 이미 발견했다. 그런데 왜 하왕조는 발견하지 못하는가? 수십만년전의 유적은 단지 연대만 판정하면 된다. 그러나 하왕조의 유적은 그것이 “하(夏)”로 판정되어야 한다. 현실에서 일부 유적은 발견했다. 그러나 그것이 하왕조의 것인지는 모른다(혹은 서방에서 인정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만일 문명이 있어, 흙으로 집을 짓고, 기반을 다지지 않고, 지붕에는 식물로 뒤덮여 있었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또 그 문명의 모든 물품이 후속자가 모두 받아들여서 후속자의 이름을 써놓았다면, 그것은 후속자의 문물로 인식될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세기의 물건을 네가 금세기에 쓰면서 금세기의 기술로 칠해버리면, 그것은 후인들이 아마도 금세기의 물건.. 2022. 6. 9.
진나라가 멸망할 때, 남방에 수수방관한 50만대군이 남아있었는가? 글: 곽엽민(郭曄旻) 중국역사상 최초의 통일왕조로서 대진제국(大秦帝國)의 속흥취망(速興驟亡, 빠르게 흥성하고 급격히 망하다)은 역사상 보기 드문 경우이다. 의 “독부지심(獨夫之心), 일익교고(日益驕固)”하여, “수졸규(守卒叫), 함곡거(函谷擧)”까지 겨우 몇 년의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10여년전에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역사다큐멘터리 에는 이에 대해 한 가지 해석을 내놓았다. 그것은 바로 “제국의 존망위기에 남부변방을 지키고 있던 50만 진군이 침묵을 선택했다” “철저히 자신의 손으로 만든 대제국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널리 알려졌고, 논리적으로 그럴 듯하다. 그러나 사실은 아니다. 확실히, 가의(賈誼)가 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진나라는 산동6국을 평정한 후, 군사적으로 두 가지 중요한 행동을 .. 2022. 6. 6.
동한말기 궁중내란의 교훈 글: 서숙형(徐叔衡) 이런 말이 있다. 생물은 스스로 부패한 후 벌레가 생긴다.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경제생활에서, 우리는 수시로 볼 수 있다. 어떤 회사는 요란하게 만들어, 엄청난 돈을 벌고, 대단하게 이름을 날린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부부가 이혼하고, 형제가 반목하고, 친구끼리 싸우는 일이 벌어져 멀쩡했던 회사가 순식간에 와해되어 버리고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어 보는 사람의 가슴이 아프게 만든다. 여기에서 동한 말기를 살펴보기로 하자. 황궁내란으로 국가가 갈갈이 찢겨진다. 천하통일에서 삼국으로 분열되는 침통한 사례가 있는데, 아마도 우리에게 어느 정도 교훈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황제가 멍청하여, 화근을 심었다. 동한말기, 한환제는 좋은 신하들을 .. 2022. 5.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