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민국 초기)64 유태인들은 왜 중국 만주로 몰려들어왔을까? 글: 나일소(那日蘇) 유태인들의 상업적 두뇌는 사람들이 즐겨 얘기하는 주제이다. 과거 중국의 만주는 황량한 땅이라고 여겨졌었다. 유태인의 고향인 중동에서 만주까지는 거리가 수천킬로미터나 된다. 그러나 풍운이 휘몰아치던 근대에 머나먼 공간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유태인과 만주는 서로 얽히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실제로는 연원이 깊다. 19세기말부터 유태인들은 대량으로 중국의 만주지역으로 몰려든다. 그들은 자신의 장사수완을 가지고 만주지역에서 경제기적을 일궈낸다. 하르빈의 길거리에서 유태인들은 한때 상업의 80%를 차지한 바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점점 이 땅에서 사라졌고, 지금은 유태인스타일의 건축과 묘지만이 옛 시절을 기억나게 해주고 있다. 만주의 근대역사는 기본적으로 종횡의 두 철도.. 2021. 4. 16. 노근재(盧芹齎): 그가 해외로 빼돌린 중국의 문화재는 도대체 얼마나 많을까? 글: 장재신(張再申) 조적(祖籍)이 절강인 노근재는 구미에서 이름을 떨친 대골동상이다. 그는 중국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문화재를 해외로 빼돌려 팔아먹은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05년, 청나라조정이 붕괴되기 직전이 되자, 일부 왕공귀족, 팔기자제들은 생활이 힘들어, 어.. 2019. 1. 12. 장작림(張作霖)의 여섯 부인 글: 설백포(薛白袍) 장작림은 북인남상(北人南相)으로 그의 일생은 전설적이다. 농촌의 일개 수의사에서, 녹림에 들어가 향마(響馬, 마적)가 되었다가, 나중에 초안(招安)된 후, 한걸음 한걸음 자신의 역량을 키워서, 나중에는 마침내 일방제후의 동북왕(東北王)이 되었다. 그의 신분이 올.. 2019. 1. 5. 소림사 사상 최대의 겁난: 풍옥상부하의 소림방화 글: 황소범(黃小凡) 1928년, 중원지역의 군벌혼전으로 총포가 날로 보급되어갔다. 일부 소림제자들도 군벌이 부대에 참여하여 전공으로 공업을 세우고자 했다. 마지막에는 소림사에 유례없는 겁난을 가져오게 된다. 1500년의 역사에서, 소림사는 많은 겁난을 당한다. 봉건시대에 매 왕조가 .. 2018. 7. 29. 민국사공자(民國四公子)중 하나인 장효약(張孝若)피살사건 글: 채휘(蔡輝) "우리나라 공상업계를 이끌고, 실업계의 거목으로 유명하며 고찰구미실업전사를 역임한 청나라때의 장원인 남통 장계직(張季直, 즉 張謇) 선생의 장남 장효약씨가 어제 여명 여섯시 십분, 전날 남통에서 상해로 온 옛하인이자 안휘사람인 오의고(吳義高)의 총에 저격을 당.. 2018. 7. 11. "무후비적(武侯秘籍)" 사건 글: 역사변연(歷史邊緣) 1920년대의 상해에서 신문시장에서 영향력이 큰 <신보(申報)>와 <신문보(新聞報)>에는 거의 동시에 내용이 동일한 광고가 실렸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관중(關中, 섬서지방)의 모 세가(世家) 자제인데, 조상이 일찌기 어느 석벽에서 고대의 백서(帛書).. 2018. 2. 26. 이전 1 2 3 4 5 ···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