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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명)117

동림당(東林黨)은 대명왕조를 어떻게 망가뜨렸는가? 글: 요풍휘(姚豊輝) 명나라말기에는 유학자들로 구성된 동림당인들이 중용되어 나라를 다스렸다. 유학자들의 글을 보면 이들 동림당인들은 '정인군자(正人君子)'였다. 그러나, 그들의 '당수'는 명나라를 멸망하게 만든 역사상의 '망국지신(亡國之臣)'임이 확실하다. 동림당의 핵심구성원들은 강남사대부를 위주로 하는 관료집단이다. 숭정제는 즉위후 동림당인들에 의지하여 새로운 내각을 구성한다. 그들이 관직을 일단 차지하자, 말만 번지르르한 고상한 뜻을 펼치고자 했다. 고대 성인들의 이상적인 통치를 하고자 한 것이다. 관모를 쓰고 관복을 입자 이들은 득의양양하게 즉시 황제에게 상소를 올려 이것을 고쳐야 한다 저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변법혁신을 주장한다. 소위 "혁제조야적폐(革除朝野積弊), 반대탐종왕법(反對貪縱枉法)"(.. 2023. 3. 21.
명나라말기의 농민군은 "삼국연의(三國演義), 수호전(水滸傳)"을 병법서로 활용했다. 글: 역사D학당(歷史D學堂) 명나라말기에 중국의 대지는 풍운변환(風雲變幻)하여 전쟁이 지속되었다. 정규교육을 받은 관료들과는 달리, 농민반란군의 지도자들은 반란군을 지휘하여 싸울 때, 그들의 머리맡에 놓아두고 참고한 병법서는 대체로 , 등의 소설이었다. 청나라사람들은 이렇게 기록한 바 있다: 장헌충(張獻忠), 이자성(李自成)등의 무리는 "처음에는 모두 오합지졸이었고, 기율이 없었다" 그라나 나중에 성을 점령하고 지역을 차지하면서 점차 세력이 커진다. 그들이 '점점 지혜를 갖게 된' 원인은 바로 "듣기로 모두 의 전투사례는 그들이 전투할 때 유일하게 참고하는 비본(秘本)이었다." 을 쉽게 풀어쓴 것으로서, 과 는 실용성과 재미를 모두 갖추고 있다. 그래서 농민군들은 이 소설을 보배처럼 여긴 것이다. 멀리 .. 2023. 3. 12.
명나라 멸망직전에 발생한 2건의 괴이한 사건 글: 흔몽경성(昕夢傾城) 철학적으로 이런 말이 있다: "새로운 사물이 반드시 오래된 사물을 대체한다" 이 진리는 고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처음부터 강성하기 그지없고, 발군이었던 왕조도 백년이 지난 후에는 결국 쇠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결국은 다른 왕조로 쉽게 교체되곤 한다. 명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개국황제 주원장은 비록 글도 몰랐지만, 여전히 국가를 조리있게 다스렸다. 그러나 그의 자손들은 나라를 고스란히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주고 만다. 주원장이 만일 자신의 후손이 이럴 줄 알았더라면, 분명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어쩔 줄 몰랐을 것이다. 기실 우리가 역사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명나라가 멸망하기 전의 24시간동안, 조금 노력을 했더라면, 전기가 마련될 수도 있었을 것같다. 그러나, 두 가지 괴.. 2022. 8. 30.
선유전투(仙遊戰鬪): 복건왜구(福建倭寇)의 명조관군(明朝官軍)에 대한 최후의 항전 작자: 미상 1563년, 흥화전투(興化戰鬪)가 끝나면서, 복건연해의 국면은 이미 어느 정도 제압되었다. 그러나, 왜구의 핵심인 해상집단은 여전히 원래의 체계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신속히 정비하여 계속 보전(莆田)을 중심으로 한 해역에서 새롭게 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날로 위축되는 활동공간은 왜구의 생존현상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리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일으킨 선유전투에서 패배한 후 부득이 오랫동안 경영해온 복건해역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왜구는 천연적으로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전형적인 해안의 밀수집단으로서, 각지역의 왜구는 탄생때부터 아주 선명한 양면성을 지니고 있었다. 예를 들어 구성원의 구조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대로 무역에 종사하거나, 어업에 종사하거나 소금을.. 2021. 12. 30.
임진왜란때 명나라의 대일간첩전 글: 문사군(文史君) 모두 일본이 닌자는 정보업무가 일류라고 얘기하며, 고대일본이야기에서 유명하다. 근대일본도 중국에 대량의 간첩을 파견해서 대륙에서 풍운을 일으켰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뉴스를 통해 일본에서 간첩을 중국에 잠복시켜 정보를 빼내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간첩전을 얘기하자면, 중국이 일본의 스승이다. 일찌기 명나라때 임진왜란시기 명나라는 일본에 간첩을 잠입시켰고, 대량의 일본정보를 수집한다. 그리하여 명나라는 전체 전쟁국면을 파악하고 승리를 거두는데 큰 작용을 한다. 여기에서는 명나라 만력제때의 명나라가 일본에 보낸 간첩과 그들의 공적에 대하여 얘기해보기로 하자. 1. 대일간첩전의 시작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다. 5월, 조선국왕은 중국과의 변경지역인 의주로 피난간다.. 2021. 10. 20.
계주병변(薊州兵變): 명나라최강의 척가군(戚家軍)은 어떻게 우군에 참살당했는가? 글: 남북양조(南北兩謿) 만력23년(1595년)의 계주병변은 하나의 비극이며 지금도 차마 다 읽을 수가 없다. 이 사변은 사료에 기록으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오직 에 몇 마디 기록이 있을 뿐이다. 당시는 아직 삼대정(三大征)중 하나인 항왜원조(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가리킴)시기였으므로, 조선의 사료에는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만력이십삼년 십월, 기미(己未)일, 방해병(防海兵, 해안방어병)이 군량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며 북을 치고 소리를 질렀다(鼓噪). 계진의 독(督), 무(撫), 도신(道臣)이 난리를 일으킨 자를 붙잡아 처형하고, 나머지 일당은 남쪽으로 되돌려 보냈다. 병부에 보고하였고, 병부에서 허가했다." 명신종(만력제)때 병변이 여러번 발생한다. 예를 들어, 만력10년의 항주병변(杭州兵變), 1.. 2021.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