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강극실(姜克實)
중일전쟁후, 지금까지 이미 79년이 흘렀다. 오늘날의 소위 고령자층은 절대다수가 전쟁을 체험하지 않았다. 전쟁이라는 단어는 21세기의 현대인에게 있어서 이미 요원한 과거가 되어 버렸다. 만일 자연스럽게 놔두면, 동아시아각국의 민중들 사이에서 대립과 반목이 발생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국가간의 대립, 국민간의 반목은 전후 80년이 가까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왜 역사의 원한, 대립은 해소되지 않는 것일까? 원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역사인식의 대립에 관하여 필자는 두 가지 기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역사교육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기록의 문제이다. 양자간에는 하나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 즉 국가간의 정치적입장, 이해관계의 대립은 전후에도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계승되었을 뿐아니라, 정치적수단으로 학교의 교휵현장과 학계의 역사기록에 개입하였다는 것이다.
역사교육층면에서, 전후의 각국정부는 오랫동안 "애국주의" "민족주의"교육을 지도방침으로 삼고, 교육현장에서 교과서에 대하여 인위적이고 의도적으로 사료를 선택하고 역사를 해석했다. 이를 통해 국가명예를 수호하고, 자국의 입장을 강조했다. 이러한 민족주의색채를 지닌 교육으로 인하여 부정확하거나 편면적이거나 일방적인 역사해석을 가르치게 되고, 다른 민족에 대한 역사적 원한, 오해는 어려서부터 청소년들의 마음 속에 심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인위적인 화해의 장애가 된다. 이렇게 하여 편협하고 비이성적인 민족원한이 대대로 이어진다. 그 결과, 각국간의 역사인식은 편차가 갈수록 커지게 되고, 마침내 민족원한이 필요없게 된 시기에도 상호이해할 가능성을 잃어버렸다. 더더구나 오늘날의 대국주의, 패권주의, 옹군상무(擁軍尙武)의식이 범람하는 사회적 온상이 되었다.
1. 역사연구와 정치선전
일상용어중에서, 우리가 평상시에 무의식적으로 "정치"와 "선전", 그리고 "역사"와 "사실"의 두 단어를 종합하여 사용한다. 왜 이렇게 짝을 짓고 반대의 경우는 없게 되는가. 이 점에 대하여 사람들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는 않은 것같다. 실제로 이건 우연이 아니다. 정치와 역사라는 단어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고, 가장 적절한 조합법이라 할 수 있다.
정치는 특정한 권력집단(정권, 정당조직)의 통치를 가리키고, 모종 통치를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방법과 책략이 필요하다. 선전은 바로 통치를 위한 수법중 하나이다. 특징은 자신의 정책이 정확하다는 것과 통치의 업적을 실제보다 과대포장하여 묘사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정적의 장점은 폄하하고, 그의 잘못, 스캔들, 결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선전의 필요에 의해 정치가의 말은 국가의 공식입장에서 항상 두 가지 층면을 지닌다. 하나는 "대외선전"이고, 다른 하나는 "내부소식"이다. 전자는 공개된 내용, 숫자에 포함된 정도는 다른 과장이고, 후자에서 전달하는 소식은 기본적으로 사실에 근접한다. 그리하여 각종정보, 소식, 사료에 대하여 그 허실을 판별할 때, "대외"용인지, "대내"용인지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역사연구에서도 이건 아주 중요한 과제이다. 정치대변인, 외교관, 정치가는 공식입장에서 농허작가(弄虛作假)하고, 사실을 감추는 현상이 있다. 이건 어떤 사회제도, 어떤 국가이든 마찬가지이다. 궤변, 부정, 사실은폐행위는 지고무상의 국가이익을 보호하기 위함이므로, 누구도 정치가, 외교가와 정부대변인에 대하여 도덕적인 책임을 추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치와 선전간에는 특수한 친근관계가 형성되고, 어느 시대이든, 어느 국가이든, 어느 정권하에서건, 정치는 항상 선전수단을 이용하여 자신을 과대포장하고, 정적을 폄훼한다. 그래서 반드시 인식해야할 점은 선전은 "정치행위"에 속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 내용이 반드시 같은 크기의 사실이라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역사는 정치와 다르다. 그 목적은 정확하게 발생한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다. 학문성질로 보면, 절대로 거짓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수법면과 목적면에서 정치선전과는 수화불상용(水火不相容)이다. 같은 역사적 사건에 대하여, 각 나라, 각 정치조직간에 서로 다른 입장, 서로 다른 해석방법, 서로 다른 역사관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사실의 진상"은 절대로 여러 가지일 수 없다. 그래서, 역사(사실)기록에서, 적아(敵我)를 가리지 않고 모두 엄정하게 사실대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 이 원칙에 위배된다면, 그것은 역사라고 부를 수가 없다. 이 점에서 보자면, 역사기록은 사실, 사료, 증거의 검증을 거친 보편성이 있는 과학에 속한다. 정권의 필요에 따라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계속하여 바뀌는 정치선전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선전은 정치전략성, 과장성을 가진 일시적인 통치방법이다. 그러나 역사는 진실성, 보편성, 영구성을 가진 과학이다. 정확하고, 엄정하기 사실을 기록하고, 정확하게 역사를 해석하기 위하여, 역사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근거와 증거를 제공하는 자료관, 도서관, 문서관등이 출현한 것이다.
2. 역사가 정치에 이용되는 현상
이상은 이론층면에서 정치선전과 역사사실의 이질적인 관계를 지적했다. 주목할만한 것은 현실적으로 정치가 역사에 개입하는 현상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혹은 정치선전과 역사사실을 혼동하거나, 심지어 정치선전이 역사교육, 역사기록을 대체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국가, 민족, 정치집단의 대립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근,현대역사의 교육과 기록에서, 이런 현상은 아주 보편적으로 발생한다.
예를 들어, 근대역사교육에서, 중국, 일본, 한국의 삼국간에 각자 자신의 정치적입장에 맞추어 자신의 국가역사교과서를 편찬해서 애국주의 역사교육을 진행하고, 민족간 역사원한을 선전하는 현상이 존재한다. 이 현상은 최근에 이미 민족화해를 저해하고, 역사연구의 국제협력을 방해하는 심각한 정치문제가 되었다. 다음으로, 대륙중국은 전후에 오랜 기간동안 역사를 '정치통치의 도구'라고 보았다. 중국공산당사, 계급투쟁사가 역사분야를 점령했고, 한때는 '근,현대사'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런 역사도구론의 오도하에 정적인 국민당정권의 항전실적은 말살되거나, 부당하게 폄훼된다. 이전의 소학교 교과서에 나타난 것처럼, 중국공산당이 항일을 영도하고, 장개석은 아미산에 숨어 지냈으며, 나중에 산에서 내려와 항전의 과실을 따먹었다는 류의 기술이 나타난 것이다.
역사가 정치에 이용되어 통치도구로 변신하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가 나타난다:
- 특정국가, 정치집단의 입장, 이해관계가 역사기록에 반영되어, 연구조직과 연구자의 어용화, 당원화현상이 나타난다. 역사기록의 공정성과 학술적인 엄정성은 보장할 수 없고, 국가입장, 정치원칙, 정당의 당성에서 반대의견을 배제하고 학문자유에 간섭하는 폐해가 나타난다.
- 정치선전의 역사화. 국가사관, 정치사관의 영향하에, 정권조직의 '선전내용'이 '역사사실'로 나타나서 역사서적과 교과서에 실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 정치선전의 교육화. 이렇게 편파적인 정치선전내용과 부정확한 역사사실, 역사해석이 국가에서 관리하는 학교교육, 사상교육을 통하여 청소년의 역사인식에 삼투한다. 그리하여 국가간에 역사인식이 대립되는 대중사회의 온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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