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경제/중국의 정보통신

일본계 핸드폰기업의 중국에서의 실패이유 (1)

중은우시 2006. 4. 10. 19:17

칼바람이 난무하는 강호에서는 조금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다. 출수가 반박자만 늦더라도 아마도 돌이킬 수 없는 패전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중국의 핸드폰시장은 이처럼 잔혹한 강호이다.

 

오년전에 미쓰비시, 마쓰시다와 도시바를 대표로 하는 일본계 핸드폰업체는 전면적으로 치고 들어왔다. 그러나, 현재 미쓰비시는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했으며, 마쓰시다의 중국내 합자회사는 2,5G 핸드폰생산을 점진적으로 정지하고 있고, 도시바도 합자회사의 지분을 회수하였다. 이러한 브랜드들은 모두 장수가 팔을 자르는 것과 같이 중국에서의 꿈을 접었다.

 

업계 인사들은 이와 같이 뛰어난 명성을 지닌 일본계 핸드폰기업들의 실패를 얘기할 때마다, 모두 중국시장의 변화는 너무 빠르다고 탄식하며, 이러한 전통적 일본기업들은 변신속도가 너무 느렸고, 결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좋은 시기를 놓쳤다고 보고 있다.

 

첫번째 문제 : 핸드폰이 인스탄트 소비품이 되어 버렸다.

 

빨라야 한다. 반드시 빨라야 한다.

 

순식간에 변화하는 핸드폰시장의 리듬은 항상 나는 것처럼 빨랐다. 그러나, 일본계 핸드폰들은 이러한 변화에서 너무 뛰는 것이 느렸고, 종점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호흡이 가빠졌다.

 

2000년에 광고회사에서 근무하는 이은이 최초고 구매한 것은 미쓰비시의 소비(小菲)였다. "그 때 소비의 판매가격은 1,780위안이었는데, 화음효과도 없고, 칼라화면도 아니며, 직립형의 외관은 마치 에어콘의 리모콘 같았다. 그러나, 주변에 써봤던 친구들이 모두 가격대비 성능이 매우 좋았고, 고장율이 매우 낮아서 사고나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은은 또한 당시의 구매는 미쓰비시가 쓴 홍콩의 스타 양영기(梁詠琪)의 영향도 받았고, 은색의 외각도 매우 멋있었다.

 

2000년부터 시작하여 미쓰비시핸드폰을 팔았던 장씨성의 사장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해에 미쓰비시의 두개의 핸드폰 소비와 소이(小易)가 중국에 들어왔다고. 그의 회사에서는 수천대의 소비와 소이를 팔았었고, 매우 높은 이윤을 얻었다고 기억했다.

 

그 해에, 광동에는 단지 두 개의 대리상이 미쓰비시의 대리권을 가질 수 있었고, 장사장이 있던 곳은 이로 인하여 짭짤하게 재미를 보았었다.

 

이처럼 멋진 개시전은 기록할 만하다. 적어도 미쓰비시가 중국에 들어올 때, 외관설계 및 내부품질에서 모두 시장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소비와 소이의 신화는 계속되지 못하였다. 이 두개의 제품을 다 팔고난 후에 미쓰비시는 다시는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지 못하였다.

 

장사장은 말한다. 미쓰비시 핸드폰은 지금까지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판 것이 단지 이 두개의 모델이라고. 미쓰비시가 중국시장에서 5년간 있으면서 30개에 못미치는 모델을 출시하였는데, 이러한 새 핸드폰은 사람들에게 눈에 띄는 감각을 제공하지도 못하였고, 풍부한 선택의 여지를 주지도 못하였으므로, 유저들이 선택할 여지가 매우 적었다.

 

이에 대하여, 낙성(諾盛)컨설팅의 고급분석사 한소빙도 이에 대하여 깊이 느낀 점이 있다. 일본계 핸드폰은 항상 "1대를 설계하면 10년을 가야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외관과 기능의방면에서 혁신을 중시하지 않으며, 유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원인은 중고급유저의 요구는 매일 더욱 복잡해지는데, 이 3대 브랜드는 단지 단일한 기술요소에 의지하여 이러한 유저들의 마음을 빼앗지 못하였다.

 

한 대리상은 이렇게 얘기한다. 이 몇년간의 핸드폰을 보면, 일본계 핸드폰은 외관이 너무 넓고 크다. 그리고 약간 무겁다. 그가 대리하는 마쓰시다를 보면, 그들의 제품은 외관상 거의 차이가 없다. 모두 직선의 선을 가지고 있고, 넓게 접히는 몸체를 가지고 있고, 이런 설계로 어떻게 소비를 이끌 수 있을 것인가.

 

"품질"에서 "패션"으로 사람의 욕누는 날로 변한다. 한소빙은 심지어 이미 핸드폰은 "인스탄트 소비품"이 되었다고 단언한다. 핸드폰의 생명주기가 짧아지면서, 사람들은 핸드폰의 교체율이 5년에서 십몇개월로 되었고, 기기교체의 비율도 점점 빨라진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소비자의 마음을 얻으려는 기업이라면 연구개발에 대한 투입을 강화하고, 신제품의 출시를 가속화하여야 한다.

 

2005년에, 노키아는 거의 50개의 신모델을 내놓았다. 비록 같은 집안의 형제들이지만, 소니에릭슨과 NEC는 2005년에 각각 18개와 31개의 신제품을 내놓았다. 그런데 11월이전까지, 마쓰시다는 중국에서 겨우 몇개의 신제품을 내놓았고, 미쓰비시와 도시바의 신제품 수량은 가여울 정도로 너무 적다.

 

원인을 종합하면, 구미의 브랜드에 비하여, 일본핸드폰은 국내의 중고급시장을 더욱 중시한다. 그러나 이 시장의 점유율은 적고, 판매량도 적고, 공장은 자금을 투입하려고 하지 않으며, 더 많은 신제품을 개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연구개발에 더 투입하지 않고, 마케팅비용을 증가시키지 않으므로, 장사장은 일찌기 그 제품에 대한 흥미를 일허버렸고, 반년전에 미쓰비시와의 합작을 종료하였다.

 

미쓰비시를 제외하고, 마쓰시다와 도시바도 마찬가지로 외관설계, 기능설계에서 패션개념을 적시에 따라가는데 발걸음이 늦다. 그러나, 미쓰비시등 이러한 회사들이 깨닫고 다시 왔을 때는 패션, 기능등의 개념은 이미 그들을 멀리 떠나버렸다. 이 때, 이미 해는 바뀌어 2005년으로 넘어갔고, 그들은 스스로의 잘못을 되돌아볼 시간도 얻지 못하였다.

 

둘째 문제 : 판매채널변혁의 좋은 기회를 놓쳤다.

 

되돌아보면, 제품의 외관설계의 혁신이건, 패션기능의 활용이든 모두 일본계 핸드폰의 약점이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제대로 판매채널에 대하여 구조조정을 하였다면, 다시 한번 일어설 기회는 있었다. 2002년부터 시작된 핸드폰채널대전의 가운데, 오만하고 긍지에 넘치던 3대 일본계 핸드폰업체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고, 판매채널이 경직되고 제대로 운영되지 않게 되었으며, 그들은 여러 곳에 상처를 입게 되었다.

 

2000년이전에, 해외핸드폰은 계속하여 단순하게 전국대리상에게 판매하는 모델에 의존했다. 이 때, 중국산 핸드폰은 직접 성급대리점, 시급대리점 심지어는 직접 말단에까지 공급하였고, 채널판매에 따른 원가를 감소시키고, 시장에 반응하는 속도를 단축시켰다.

 

구미의 핸드폰업체는 이 '모델방식"을 보고는 전국대리상모델을 재고한 다음에 연이어 변신을 시도하였다.

 

한 판매상인은 이렇게 말했다. 2002년에 노키아, 모토롤라, 지멘스등의 브랜드는 PD(성급판매플렛폼)를 발전시키기 시작했고, 향진등 시장을 커버하기 시작했다.

 

노키아의 채널에 대하여 깊이 연구해온 한소빙은 이렇게 말했다. 노키아는 2003년부터 판매채널개혁을 시작했고, 대중형 도시에서는 직접 공급하여, 중간단계를 감소시켰고, 원가를 낮추었다. 작은 도시와 농촌에서는 국내제조업체들의 방식을 배워서 시행했다.

 

2004년에 되어, 노키아는 더욱 철저하게 채널변혁을 시도했고, 전국에 FD(물류판매플렛폼)을 발전시키고, FD를 통하여 핸드폰을 직접 시급판매상과 대중형의 소매상에 공급하였으며, 전국대리와 성급대리를 감소시켰다.

 

이러한 구미의 브랜드들은 말단에까지 손을 뻗쳤다. 일련의 변혁으로 그들은 일부 전국대리상을 남긴 것을 제외하고는 성급, 지급으로 발전시키고 직접 여러 형태의 복합형 판매채널에 공급하였고, 요율성있게 브랜드침투율을 높여갔다.

 

그런데, 미쓰비시, 마쓰시다와 도시바는 이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전국총대리상만 사용했고, 이 채널변혁의 열품중에도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한가지 방식만을 고집하였다. 결과적으로 비싼 채널원가로 인하여 그들은 큰 손실을 입게 되었다.

 

그들은 왜 채널을 변혁시키지 않았는가? 그 중의 원인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말들이 많다. 판매상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은 이러한 브랜드 핸드폰이 일본에서 계속하여 운영상을 핵심으로 하는 주문핸드폰모델이었고, 현재의 이와 같은 판매채널은 경험해본 바가 없기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일 다시 뼈와 살을 상하게 하는 변혁을 이룬다면, 원가를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그들은 자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대리상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핸드폰의 가격은 그들에게 불만투성이었댜. 채널의 노화는 매우 중요한 원인이다. 값비싼 채널원가는 대리상으로 하여금 시장에서의 발언권이 매우 약해지도록 만들었다.

 

마쓰시다의 핸드폰을 대리한 바 있고, 지금은 연상(Lenovo)의 핸드폰을 대리하는 초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일본계 업체들은 총판에 보조금을 주는 업무모델에 습관이 되어 있고, 가격에 대한 민감도가 높지 않다. 또한 일본계 핸드폰은 계속 중고급의 시장포지셔닝을 하고 있어서, 이것은 중국내 소비자들의 가격예상과 낙차가 크게 되었다. 통계에 의하면, 일본계 핸드폰은 대부분의 기종이 중고급이고, 가격도 2,500위안이상이며, 이것은 대중소비자의 선택의사와 맞지 않는 것이었다.

 

교세라 핸드폰의 중국업무책임자인 손유안은 일찌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한 바 있다. 그가 책임지는 중국핸드폰사업의 사장은 일본에 멀리 있다. 시장의 의사결정단계가 너무 복잡하며 길고, 시장에서 민첩하게 반응할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고위경영진에 현지인원이 ㅜ족하여, 시장의 의사결정도 너무 늦게 된다.

 

채널변혁은 사실 되살아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분명하게 이 3대 브랜드는 그 기회를 놓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