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사회/중국의 성씨

중국의 성씨: 일본의 성씨로 오해받는 3가지 성씨

중은우시 2022. 6. 3. 16:33

글: 가흥설사(家興說史)

 

<통지.씨족략>에 이런 기록이 있다: “진나라가 육국을 멸하고, 자손은 서민이 되었다. 나라이름을 성으로 쓰거나 성(姓)을 씨(氏)로 쓰거나, 씨를 씨로 썼다. 이때부터 성씨의 구분이 사라졌다...성과 씨가 하나로 혼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고이래로, 성씨의 유래는 여러가지이다. 나라이름, 지방이름, 관직, 직업 등등이 모두 성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중국의 성씨가 복잡하고 많아지게 된 원인이다.

 

현재의 중국인들은 대부분 단자성(單字姓, 한글자로 된 성)이다. 복성(復姓, 두글자이상으로 된 성)은 비교적 드물다. 많은 복성들은 역사가 흐르면서 단성으로 고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떤 지역에는 여전히 복성을 쓰고 있다. 중국의 복성중에서 3개의 성씨는 비교적 특수하다. 자주 일본의 성씨로 오해받는다. 그러나 기실 그 성씨의 기원은 고대중국이다.

 

동문(東門)

 

동문은 아주 보기 드문 복성이다. 서문(西門)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기실 고대에는 방위를 성으로 쓰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예를 들어, 남궁(南宮), 동방(東方), 북당(北堂)등등이다. 모두 지명이 성씨로 된 것들이다. 동문도 마찬가지이다. 그 원류는 희성(姬姓)이다. 춘추시대 노장공(魯莊公) 희동(姬同)에게 아들이 있는데 공자수(公子遂)라 불렸다. 자는 양중(襄仲)이다. 그는 곡부의 동문 옆에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동문양중(東門襄仲)”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하여 동문이라는 성씨가 후세에 전해지게 된 것이다.

 

동문이라는 성은 지금까지 이미 2,5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지금 하남성 신양시 및 흑룡강성 두 곳에 아주 드물게 동문성씨의 사람들이 분포되어 있다. 희귀성씨중 하나이다.

 

동야(東野)

 

동야는 일본에서 아주 유명한 성씨이다. 중국에도 일본의 추리작가 히가시노 게이코(東野圭吾)가 유명하다. 기실 중국의 동야성씨는 그 연원이 더욱 길다. 동문과 마찬가지로 희성에서 나왔다. <동야지>의 기록에 따르면, “동야씨는 황제(黃帝)에게서 시작한다. 황제의 성은 공손씨(公孫氏)이고 희수(姬水)에서 자라서 성을 희로 고쳤다” 동야라는 성의 시조는 주공단(周公旦)의 셋째아들인 희어(姬魚)이다. 노공이 동쪽 들판을 주어서 먹고 살게 하였으므로 이 성을 얻는다.

 

동야 일맥은 안정적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청나라때, 1685년 강희제는 제75대 동야패연(東野沛然)을 한림원 오경박사에 임명한다. 지금 동야성씨는 주로 산동성 평읍, 하남성 주구와 하북성 황엽에 분포되어 있고, 다른 지역들 제녕, 곡부, 태안등지에도 소수의 동야성씨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신원(新垣)

 

신원을 성씨로 가진 대표적인 일본인은 아마도 아라가키 유이(新垣結衣)일 것이다. 기실 이것도 중국의 고대 성씨이다. 신원의 구체적인 내력은 고증이 되지 않는다. 단지 서주 초기에 출현했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실제로 복성중 많은 것은 연원을 고증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 성을 취할 때 비교적 마음가는대로 정했고, 심지어 ‘혁련(赫連)’처럼 스스로 만든 성씨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서에 ‘신원’ 성씨는 두번 나타난다. 한번은 <사기.노중련추양열전>에 나오는 “신원연(新垣衍)”이다. “위왕이 객장군 신원연을 한단에 들어가게 했다...” 또 한번은 <사기.권26>에 나오는 “신원평(新垣平)”이다. 

 

그외에 <사기.위세가>를 보면 “신원(新垣)”이라는 성(城)이 나온다. 그러나 신원성씨와 관련이 있는지 여부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 중국에 신원 성씨가 남아 있는지도 수수께끼이다. 아마도 중국에는 이미 사라진 것같고, 일본에서만 이 성씨를 사용하는 것같다.

 

<중화성씨대사전>에 나오는 2글자의 복성은 모두 9,012개이다. 비록 많은 것들은 이미 소실되었거나 단성으로 고쳐졌지만, 그래도 많은 복성은 아직 남아 있다. 이들 복성도 진귀한 문화유산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