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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성씨

"허세(許世)": 중국에 1명만 남은 성, 스리랑카왕자의 후손

by 중은우시 2024. 2. 7.

글: 무풍(無風)

 

중국고대의 역사는 유구하고, 문화의 연원도 길다. 성씨도 그 중의 하나이다. 성씨는 두터운 족보처럼 화하자손의 원류와 변천을 기록하고 있다. 장(張), 왕(王), 유(劉), 이(李)등 자주 볼 수 있는 성씨들을 제외하고, 중국에는 보기 드문 성씨들도 있다. 예를 들면 제일(第一), 상관(上官)같은 성씨들이다. 그러나, 이런 성씨도 아무리 드룸라도 하더라도 전국에 천명은 넘는다. 그러나, 여러 성씨들 중에서 하나의 성씨는 전국에 오직 1명뿐이다. 그렇다면 그 성씨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그 성씨는 바로 "허세(許世)"이다. 이 성씨는 스리랑카(錫蘭, 실론)의 왕자에서 유래한다. 스리랑카는 열대의 도서국가이고, 자연풍광이 아름답다. 그러나, 그 시대에 스리랑카의 발전과 외부와의 교류는 확실히 폐쇄적이었다.

 

왕자는 어려서부터 교육을 잘 받았고, 당시 스리랑카에서 제공하는 모든 지식을 익혔다. 그러나 그의 시야는 섬나라의 해안선에 의해 제한되었다. 그는 더욱 넓은 세계를 탐색하고자 했고, 더욱 선진적인 문화와 기술을 익히고자 했다. 이를 통해 자신의 나라를 더욱 번영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정화(鄭和)는 명나라의 가장 유명한 항해가로 7번에 걸쳐 하서양(下西洋)했다. 그의 함대는 일찌기 동남아, 남아시아, 중동 내지 동아프리카의 여러 지방에 이르렀다. 그중에는 스리랑카도 포함되어 있다. 정화의 제3차 하서양때, 그는 스리랑카에 도착한다. 이때 처음 난난 후 양자간에는 깊은 우의를 닦게 된다.

 

정화는 스리랑카왕자에게 중국의 선진적인 기술과 풍부한 문화를 보여주었다. 이는 왕자로 하여금 중화문명에 대한 흥취를 크게 불러 일으켰다. 정화도 왕자의 총명함과 지식에 대한 갈망에 감동한다. 두 사람간의 교류는 보통의 우의를 넘어섰고, 일종의 문화와 지식에 대한 교류라고 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화와 스리랑카왕자간의 우의는 점점 깊어졌다. 방문을 마칠 때, 정화는 중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스리랑카국왕은 자신의 아들이 정화를 따라 함께 중국으로 가서, 중국의 선진적인 문화와 기술을 배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이는 지식을 갈망하던 스리랑카왕자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그러나, 운명은 항상 변수가 충만하다. 왕자가 정화를 따라 스리랑카를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리랑카 국내에 내란이 일어나서, 왕자의 가족들은 불행을 당한다. 돌연한 변고로 인하여 스리랑카왕자는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할 수 없이 중국에 머물게 된다. 정화의 도움으로, 그는 이름을 바꾸고 이국타향에서 생활하게 된다. 현지에 적응하기 위하여, 왕자는 성과 이름을 바꾸게 되고, "허세"라는 성씨는 그렇게 탄생한다.

 

스리랑카왕자의 후손은 점점 중국사회에 융합되었고, 허세가족은 복건성 천주에 뿌리를 내린다. 그들은 정화가 부여한 이름을 성씨로 삼고, 조용하게 살아간다.

 

비록 가족구성원들은 자실의 혈맥중에 외국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여러 대에 걸쳐 중국에서 살아가면서 완전히 중국사회에 동화되었다. 그들은 중국의 풍속습관을 따르고, 복건의 사투리를 쓰며, 보통사람으로 살아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허세가족의 구성원은 점차 줄어들었고, 나중에는 단지 허세음아(許世吟娥) 1명만 남게 되었다.  

 

허세음아는 어려서부터 그의 가족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말을 들어왔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은 수수께끼였다. 성년이 된 후, 우연한 기회에 그녀는 자신의 뿌리를 찾기 시작한다. 옛날의 가족기록을 살펴보고, 나이든 친척들을 방문하면서, 스스로 조사연구를 진행했다. 허세음아는 점점 자기 가족의 역사를 정리할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이 스리랑카왕자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깜짝 놀랐고, 동시에 말로 다하기 어려운 자부심을 갖게 된다.

 

이 발견은 허세음아에 있어서 자신의 신분을 확인한 것일 뿐아니라, 가족역사를 되살린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더욱 적극적으로 스리랑카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했다. 스리랑카왕실은 그 소식을 들은 후, 허세음아에게 스리랑카로 이주해 오도록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허세음아에게 있어서 중국이 조국이고, 자신이 출생하고 성장한 곳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중국에 남기로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