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철칙

중국황제들은 왜 살인을 좋아했는가?

중은우시 2011. 12. 31. 19:30

글: 문재봉(文裁縫)

 

먼저 맹자가 양양왕(梁襄王)을 만난 이야기부터 해보자. 맹자가 양양왕을 만나러 갔다. 양양왕은 맹자에게 묻는다. 어떤 사람이 천하를 얻을 수 있습니까. 맹자는 대답한다. 살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천하를 통일시킬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맹자의 치국사상은 잠시 논하지 말기로 하자. 이 기준의 응용범위와 효과판단이 어떠한지에 대하여는 토론하지 말자. 애기하고 싶은 점은 맹자가 '살인을 좋아하지 않는"이라는 기준을 이처럼 중시한 것은 원인이 바로 맹자가 말한 것처럼, "지금 무릇 천하에 사람을 다스리는 자는 살인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없었다."

 

그렇다. "임금이 신하에게 죽으라면, 신하는 죽지 않을 수 없다." 대신도 마찬가지이다. 일반 백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자고로 군왕은 천하인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평생동안 시시때때로 살륙과 선혈을 가까이 하며 산다. 폭군혼제(暴君昏帝)는 말할 것도 없지만, 현명한 황제의 대표자로 인정받는 이세민도 초기에는 부친을 따라서 전쟁터를 누볐고, 친형제를 죽였다. 이렇게 따져보면 역사에 이름을 남긴 현명한 군주나 위대한 황제도 대부분 중급 살인죄를 벗어나기 힘들다.

 

오사(吳思)가 발명해낸 혈수법칙(血酬定律)은 이렇다: 강도, 토비, 군벌과 각종 폭력집단은 무엇으로 사는가? 혈수로 산다. 소위 혈수라는 것은 폭력에 대한 댓가이다. 급여는 노동에 대한 댓가이고, 이자는 자본에 대한 댓가이며, 차임은 토지에 대한 댓가이듯이. 그러나, 폭력은 직접적으로 가치를 창조하지 못한다. 혈수의 가치는 다투는 목표의 가치에 따라 결정된다. 만일 폭력을 쓰는 대상이 사람이라면, 예를 들어 납치라면 그 가치는 당사자가 피해를 회피하려는 의지와 재력에 따라 결정된다. 이것이 혈수법칙이다.

 

황권의 쟁탈과 황제의 폭력경향에 대하여 말하자면, 혈수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역사를 연구하다보면 슬프게도 이런 것을 발견하게 된다. 황제의 성적이 어떠한가는 왕왕 그의 살인수량과 정비례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사람을 많이 죽일수록, 공로가 더 커지는 것이다. 진실한 황권에서의 생존게임은 바로 그렇게 잔인한 것이다. 중국역사상, 많은 자원과 부는 살륙과 파괴능력에 따라 분배되었다. 파괴력은 직접적으로 사회구조를 만들고, 직접적으로 각 사회집단의 사회지위와 권리의무의 한계를 결정한다.

 

그렇지 않은가? 역사상, 어느 황제가 양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던가? 웅재대략을 가질 수록, 살인을 많이 저질렀다. 예를 들어, 각국의 사서에서 테무진(징기스칸)은 거의 모두 위대한 제왕으로 묘사된다. 세계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공자중 하나이다. 일본학자 태전삼랑(太田三郞)은 <징기스칸>이라는 책에서 "세계고금 개세의 영웅"이라고 치켜세웠다. "알렉산더, 시저, 나폴레옹등과 비교하면 그 업적의 위대함과 영역의 광대함을 볼 때 같은 반열에서 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즉 이처럼 고금의 위대한 제왕이라고 일컬어지는 징기스칸도 각도를 바꾸어 보면, 세계에서 재난을 대량으로 만들어낸 살인마이다.

 

1215년, 테무진은 금나라의 수도 중도(中都, 지금의 북경)를 함락시킨다. 함락후, 성안의 평민백성에 대하여 1개월이 넘는 기간동안 대도살을 실시한다. 이때 죽은 사람의 수가 백만을 넘었다.

 

1219년, 테무진은 호라즘을 정복한 후, 몽골침략에 항거했던 남성을 모조리 죽여버린다. 살아남은 소수의 부녀와 아동은 노예가 된다.

 

1220년-1221년 테무진은 서방정벌에 나서서 사마르칸트를 함락시킨다. 성안의 20만명은 소수의 젊은 여자들이 약취된 것을 제외하고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시체가 서로 베고 있고, 들판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1225년, 몽골대군은 서하를 침략한다. 다음해 징기스칸이 병사한다. 한족은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선한 일을 한다"는 가치관과는 선명하게 대비되도록, 그는 죽기 전에 성을 도륙하도록 명령내린다. 서하의 도성 흥경부(지금의 영하성 은천 부근)의 수십만명과 서하왕실은 모조리 죽임을 당한다. 전체 국가는 징기스칸에 의하여 인종말살을 당한 것이다.

 

그렇다. 전신(戰神)은 바로 사신(死神)이다. 위대한 제왕은 바로 미친 살인마이다.

 

역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모든 황제는 황위에 오를 때 혹은 황위에 오르고 난 후, 모두 자진해서건 피동적이건 대거 도살을 벌인다. 어쩔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신 혼자만 황위를 노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오지존(九五至尊)이 되려면 먼저 구오를 정복해야 한다. 고대에 정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무력이다. 황권은 혈수를 가지고 얻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옛말에 "사람을 죽이면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마음대로 침해하면, 자신의 생명을 댓가로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가 안정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법률이다. 그러나, 황제는 항상 예외였다. 이런 말이 있다. "임금이 죽으라고 하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 황제 한 사람이 전체 국가으 모든 백성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으므로, 그가 누군가를 죽이고 싶으면 죽일 수 있다. 징벌을 받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아무도 감히 황제를 처벌하려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마 황제가 사람을 죽이면 조그만치의 '징벌'도 받지 않는 것일까?

 

세상에 십전십미의 완벽한 일은 없다. 예를 들면,

 

이세민은 현명한 군주이다. 친형 이건성을 죽이고 나서야 황위에 올랐다. 이세민은 변태광이 아니다. 역사적 사실로 보면, 피끓는 남자이다. 그렇다면 형을 죽이고, 부친을 핍박하여 황제위를 물려받는 것은 잔인무도하고 피비린내나는 일이다. 그가 이를 결정하기 전에 망설이지 않았을까? 황제의 자리에 안정적으로 앉고 나서도 꿈속에서 나타나거나, 스스로 자책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주원장은 미친 듯이 충신들을 주살했다. 그들은 모두 옛날에 그와 함께 전쟁터를 누비며 생사를 함께 했던 형제같은 사람들이다. 화운룡, 요영충, 유기, 서달....주원장은 손을 쓰기 전에, 차마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까? 불안하지는 않았을까?

 

다시 말해서 부친을 죽이고, 아들을 죽인 인간참극이 일어난 것은 그저 권력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권력을 얻고 나면, 모든 것을 얻은 황제로서는 댓가가 너무 비쌌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까? 권력을 빼앗기 위하여 수많은 평민백성의 목숨을 빼앗을 사람들도 자기와 같은 무수한 생명을 없앤 것이다. 미신이 성행하던 고대에, 그들은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으까? 역사에 기록으로 남아있지는 않다. 그러나 어떤 감정은 고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그 느낌을 약간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어떤 경우는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 황권은 항상 밀림법칙을 따랐다. 네가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아마도 너를 죽일 것이다. 인자한 황제는 마음이 약해서, 마지막에는 다른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는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예를 들어 주원장의 손자 건문제 주윤문이 그러하다.

 

홍무31년, 주원장이 병사한다. 주윤문은 정식으로 즉위하니 역사에서 건문제라고 칭하는 황제이다. 연호에서 보더라도 우리는 알 수 있다. '건문(建文)'. 부친은 홍무(洪武). 조손 두 사람의 성격은 전혀 달랐다. 주윤문은 지나치게 유약했다. 건문제가 즉위한 후, 개혁중 하나의 중요한 조치는 바로 삭번(削藩)이다. 당시의 번왕은 대부분 주윤문의 숙부이다. 그리고 그들은 병권을 쥐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번지에서 하고싶은대로 했다. 어떤 번왕은 심지어 반란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연왕 주체는 바로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주윤문에게 가장 큰 위협이었다. 그러나, 건문제의 유약함은 결국 그 자신을 해친다. 그는 연왕을 먼저 삭번시키지 못하고, 다른 친왕부터 손을 쓴다. 이렇게 한 것은 타초경사(打草驚蛇), 즉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만든 꼴이다. 연왕은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건문제가 주체에 대하여 손을 쓰기로 결정하였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연왕 주치는 신속히 정난의 기치를 내걸게 된다.

 

전투초기에 조정의 병력은 압도적 우세였다. 그러나 이때, 주윤문의 유약함은 다시 한번 드러난다. 그는 성지를 하나 내리는데, "나는 살아있는 숙부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주체는 여러번 위기를 벗어난다. 마지막에는 조정이 심연에 빠져버린다. 주체의 정난지역이 성공하고, 주체가 황위에 오른다. 주윤문은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했다. 아마도 주체에 의하여 불에 타 죽었을 것이다.

 

잔혹한 황가는 죽이지 않으면 죽은 것이다. 역사상의 좋은 황제는 대부분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좋은 사람'은 왕왕 좋은 황제가 되지 못한다. 대개는 지나치게 선량하고 자비롭기 때문에 차마 사람을 죽이지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