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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당시

당나라 최고의 칠언율시(七言律詩)는?

by 중은우시 2009. 4. 19.

글: 정계진(丁啓陣)

 

이백(李白)은 역대의 문장가들이 공인한 중국문학사상 초일류의 위대한 시인이고, "시성(詩聖)"인 두보(杜甫)조차도 그를 숭상하였으며, 일찌기 그에 대하여 "시무적(詩無敵)", "민첩시천수(敏捷詩千首)"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이백 자신도 오만하고 고고했다. 당시 다른 시인들의 작품중에 그의 눈에 드는 작품은 별로 없었다.

 

다만, 오직 그보다 3살 많은 동년배 시인의 칠언율시 하나만은 이백의 눈에 들었을 뿐아니라, 심지어 이백으로 하여금 속수무책의 우울한 지경에 빠지게 한다. 이 시인은 바로 최호(崔灝)이다. 그가 이백으로 하여금 속수무책이 되도록 만든 작품은 유명한 <<황학루(黃鶴樓)>>이다. 시는 다음과 같다:

 

석인이승황학거(昔人已乘黃鶴去)

차지공여황학루(此地空餘黃鶴樓)

황학일거불부반(黃鶴一去不復返)

백운천재공유유(白雲千載空悠悠)

청천역력한양수(晴天歷歷漢陽樹)

방초처처앵무주(芳草鸚鵡洲)

일모향관하처시(日暮鄕關何處是)

연파강상사인수(煙波江上使人愁)

 

옛사람은 이미 황학을 타고 가버렸고

이 땅에는 덩그러니 황학루만 남았다.

황학은 한번가고 다시 오지 않는데

흰구름은 천년을 유유히 떠있네

맑은 냇가에는 한양의 나무가 물창하고

앵무주에는 풀들이 파릇파릇하네.

날은 저무는데 고향으로 가는관문은 어디인가?

강위의 물안개에 나그네의 설움만 깊어가네.

 

송(宋)나라때의 여러가지 시에 얽힌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 이백이 황학루에 올라서 최호가 누각위에 써놓은 이 시를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평상시처럼 즉흥적으로 시를 한 수 읇어서 누각에 써두지를 못했다고 한다. 송나라때 계유공(計有功)이 쓴 <<당시기사(唐詩記事)>> 제21권상에서는 이백이 당시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 "눈앞에 풍경을 보고도 말을 할 수가 없다. 최호의 시가 머리위에 있기 때문이다' 호자(胡仔)의 <<초계어은총화(苕溪漁隱叢話)>> 전집(前集)권5에서 인용한 <<해문록(該聞錄)>>, 오대 신문방(辛文房)의 <<당재자전(唐才子傳)>>권제1의 "최호" 조아래에는 모두 유사한 기록이 있다. 이들 문헌에는 동시에 다음과 같은 내용도 적어두고 있다. 이백은 비록 당시에 시를 쓰지 못하고 황학루를 떠났지만, 그는 마음 속으로 최호의 시보다 좋은 시를 짓겠다고 생각했고, 계속하여 최호의 시와 겨룰만한 시를 짓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이백의 <<등금릉봉황대(登金陵鳳凰臺)>>가 바로 최호의 <<황학루>>에 대항하기 위하여 지은것이라고 한다(<<당송시순(唐宋詩醇)>>권7). 필자는 개인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고증하기는 힘들지만, 정말 그러한 일이 있어났었다고 믿는 편이다. 이것을 당시사상의 한 아름다운 이야기로 얘기하면 되는 것이다. 다만, <<취후답정십팔이시기여퇴쇄황학루(醉後答丁十八以詩譏余槌碎黃鶴樓, 술취한뒤 정십팔이 나에게 황학루를 부숴버렸다고 나무라는 것에 답함)>>는 명나라사람 양신(楊愼)의 견해에 동의한다. 그것은 위작이다.

 

먼저 이백의 작품 두 수를 보자.

 

봉황대상봉황유(鳳凰臺上鳳凰遊)

봉거대공강자류(鳳去臺空江自流)

오궁화초매유경(吳宮花草埋幽徑)

진대의관성고구(晋代衣冠成古丘)

삼산반락청천외(三山半落靑天外)

이수중분백로주(二水中分白鷺洲)

총위부운능폐일(總爲浮雲能蔽日)

장안불견사인수(長安不見使人愁)

 

봉황대위에 봉황이 노닐다가

봉황이 떠나니 누대는 비어있고, 강물만 홀로 흐른다.

오나라궁궐의 화초는 오솔길아래 묻혀 있고

진나라의 고관대작들은 모조리 무덤이 되어버렸네

삼산의 봉우리는 푸른 하늘 밖으로 반쯤 걸려있고

두 강물이 나뉘는 가운데 백로주가 있다.

하늘에 뜬 구름은 하늘을 항상 가리니

장안이 보이지 않아 나그네의 설움만 깊어지네

- <<등금릉봉황대>>

 

앵무내과오강수(鸚鵡來過吳江水)

강상주전앵무명(江上洲傳鸚鵡名)

앵무서비농산거(鸚鵡西飛山去)

방주지수하청청(芳洲之樹何靑靑)

연개난엽향풍난(煙開蘭葉香風暖)

안협도화금랑생(岸夾桃花錦浪生)

천객차시도극목(遷客此時徒極目)

장주고월향수명(長洲孤月向誰明)

 

앵무새가 오강에 날아온 적이 있어

강위의 모래톰은 앵무라고 이름하였네.

앵무새는 서쪽의 농산으로 날아가 버렸는데,

향기로운 모래섬의 나무는 어찌 여전히 푸르른가

안개는 걷히니 따스한 바람에 난초향이 가득하고

강언덕의 복숭아꽃은 비단물결과 어울린다.

떠돌아다니는 나그네는 부질없이 눈을 부릅떠보지만

긴 모래섬의 외로운 달은 누구를 비추는가

- <<앵무주>>

 

그렇다면, 이백의 <<등금릉봉황대>>, <<앵무주>>와 최호의 <<황학루>>를 비교하면, 도대체 어느 작품이 더 뛰어날까?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역대 문장평론가들은 이백의 <<앵무주>>라는 시는 별로 좋게 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일부 논자들은 <<등금릉봉황대>>는 <<황학루>>와 비견할만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원나라때의 방회(方回)는 일찌기 "태백의 이 시는 최호의 <<황학루>>와 비슷하다. 격률과 기세가 고하를 논하기 힘들다"(<<영규율수회평>>권1). 청나라때 왕부지는 송나라사람들의 시가 최호의 시를 따르지 못한다는 것을 비판한 후, "태백의 시는 <<십구수>>에서 왔고, 최호의 시는 순수하게 당나라식이다" 왕부지가 보기에 당시는 한시만 못하다는 것이다. 왕부지는 더욱 구체적으로 최호의 첫번째 연이 이백의 시만 못하다고 보았는데, 최호의 시는 "뜻이 기운에 많이 막혔다"고 보았다. 건륭제도 일찌기 두 시를 칭찬한 바 있다. "그 말을 모두 마음에서 나왔고, 풍경을 보고 완성한 것이다. 의상(意象)이 우연히 일치하고, 풍경은 각자 뛰어난 점이 있다"

 

또한 일부 사람들은 이백의 시가 최호의 <<황학루>>보다 뛰어나다고 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명나라때의 구우(瞿佑)는 <<등금릉봉황대>>는 최호의 <<황학루>>와 비교하여 "십배조비(十倍曹丕)"라고 평가하였다. 구우가 이렇게 말한 주요한 근거는 이백은 '애국우군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최호의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보다는 훨씬 높다는 것이다.

 

당연히,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백과 최호의 시를 직접 비교하지 않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백의 시가 최호의 시만 못하다고 보고 있다. 송나라때의 엄우(嚴羽)는 "당나라의 칠언율시는 최호의 <<황학루>>를 제일로 친다"고 하였다(<<창랑시화>>). 청나라의 김성탄(金聖嘆)은 후세인들은 최호의 <<황학루>>의 범주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하였다(<<관화당선피당재자시>>권3). 기효람은 최호의 시를 "절조(絶調)"라고 하면서, 그 '의경(意境)'이 한없이 넓다고 하였다(<<영규율수회평>>권1). 심덕잠(沈德潛)은 최호의 시를 '천고지기(千古之奇)'라고 불렀다. 이런 평가는 훨씬 더 많다.

 

필자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두 시는 확실히 고하를 논하기 힘들다. 다만, 명나라때 구우의 견해와는 반대로, 필자는 시가의 내용은 '애국우군의 뜻'을 담은 것이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보다 못하다고 본다. 이외에 비록 모든 사람들은 최호가 먼저 시를 창작하고, 이백이 나중에 따라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오리지날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보더라도, 우리의 태도는 최호에 기울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비록 최호의 <<황학루>>가 이백의 <<등금릉봉황대>>보다 조금 낫다고 하더라도, 이백의 명성에는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다.

 

송나라때의 저명한 시가이론가 엄우가 당나라 칠률은 최호의 <<황학루>>를 제일로 친다고 말한 이후, 후인들 중에서는 다른 의견을 내세운 사람들도 있다. 명나라때의 하중묵(何仲默), 설계채(薛啓采)등은 심전기(沈佺期)의 <<고의정보궐교지지(古意呈補闕喬知之)>>를 제일로 삼았고(양신 <<승암시화>>권10), 청나라의 반덕여(潘德輿)는 두보(杜甫)의 <<등고(登高)>>를 압권이라고 하였다(반덕여 <<양일재시화>>권1). 심덕기, 두보의 시는 다음과 같다.

 

노가소부울금향(盧家少婦鬱金香)

해연쌍서대모량(海燕雙棲玳瑁梁)

구월한침최목엽(九月寒砧催木葉)

십년정수억요양(十年征戍憶遼陽)

백랑하북음서단(白狼河北音書斷)

단봉성남추야장(丹鳳城南秋夜長)

수위함수독불견(誰爲含愁獨不見)

갱교명월조류황(更敎明月照流黃)

 

노씨집안의 젊은 며느리방은 울금향이 가득하고

바닷제비는 쌍으로 대모들보에서 살고 있다.

차가운 구월의 다듬이소리는 낙엽을 재촉하는데

십년동안 수자리나간 남편이 있는 요양을 생각한다.

백랑하의 북쪽에서는 소식이 끊겼는데

단봉성의 남쪽에는 가을밤이 길기도 하다

시름에 젖어 혼자볼 수는 없다고 그 누가 말했던가

그래도 밝은 달은 다시 비단장막으로 비추는데...

- 심전기 <<고의정보궐교지지>>

 

풍급천고원소애(風急天高猿嘯哀)

저청사백조비회(渚淸沙白鳥飛廻)

무변낙목소소하(無邊落木蕭蕭下)

부진장강곤곤래(不盡長江滾滾來)

만리비추상작객(萬里悲秋常作客)

백년다병독등대(百年多病獨登臺)

간난고한번상빈(艱難苦恨繁霜)

요도신정탁주배(倒新停濁酒杯)

 

바람은 세고 하늘은 높은데 원숭이소리 구슬프다

강물은 푸르고 모래는 흰데 새는 날아서 돌아온다

천지사방에 낙엽은 쓸쓸히 떨어지고

끊없는 장강은 도도히 흐른다.

만리타향에서 서글픈 가을에 언제나 나그네되어

한평생 병많은 몸으로 혼자 높은 누대에 오르네.

온갖 고생으로 귀밑머리도 하얗게 세어버렸고

이제는 늙고 병들어 탁주도 끊어야 하네

- 두보 <<등고>>

 

모두 좋은 시들이다. 어느 수가 더 좋은가? 이는 각자의 판단에 맡길 일이다.

 

이것저것 얘기했지만, 주제로 되돌아가보자. 최호의 <<황학루>>는 어디가 좋은가? 최호의 <<황학루>>의 좋은 점에 대하여, 선인들은 이런 견해를 내놓았다: 도도망망(滔滔莽莽)하여 소탕지기(疏宕之氣)가 있다(송. 유진한). 관연유여(寬然有餘)하여 쓰지 않은 것이 없다(명. 담원춘). 의경(意境)이 관연유여하다(청나라. 기효람). 의재상선(意在象先)하고 신행어외(神行語外)하다(심덕잠). 결론적으로, 최호의 시는 기세가 크다는 것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세 가지를 꼽고 싶다: 첫째는 도가에서 추구하는 신선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는 사상을 철저히 부정하고, 현실을 직면하는 용기를 갖추고 있다. 둘째는 경치를 잘 그리면서 짙은 향수를 느끼게 한다. 셋째, '유유' '역력' '처처'등의 단어와 첫째연의 가행구식등은 읽었을 때 음운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