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군집10 당태종은 왜 위징의 묘비를 부수었다가 다시 세웠는가? 글: 유병광(劉秉光) 당태종(唐太宗)과 위징(魏徵)은 지금까지 현군직신(賢君直臣, 현명한 군주와 직언하는 신하)의 모범으로 얘기되었다. 위징이 살아있을 때에는 당태종이 그를 '거울'로 생각했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돈관계를 맺었다. 위징이 죽었을 때, 당태종은 5일간이나 조회를 열지 않고, 친필.. 2008. 12. 6. 이승건(李承乾) : 당태종의 불운한 황태자 이승건 묘비 일대의 명군인 당태종은 태자교육에 아주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러나, 결과는 그의 생각과 달라졌고, 그가 처음에 세웠던 황태자는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후보자가 아니었다. 그리하여 정관말년이 되면서, 태자를 폐위하는 일과 새로 태자를 세우는 일이 당태종의 정치역정에서 가장 골.. 2007. 5. 28. 중국역사상 가장 싱거운 전쟁 글: 맹헌실(孟憲實) 고창(高昌)은 옛날의 지명이다. 구체적인 위치는 현재의 신강에 있는 투루판(吐魯番)이다. 이곳은 서역지역에 위치한 한족의 지방정권이었다. 그렇다면, 왜 고창국은 마지막에 당나라와 서로 싸웠는가? 왜 겨우 3만의 인구를 지닌 고창국을 치는데, 당나라는 그렇게 중시하여, 20만.. 2007. 5. 22. 당태종 이세민의 공신들... 능연각(凌烟閣)은 원래 당나라 황궁내의 삼청전의 옆에 있는 조그만 각루였다. 정관17년2월 당태종 이세민은 그와 함께 천하를 얻는데 공을 세웠던 공신(몇명은 이미 죽었고, 남은 사람들도 대부분은 나이가 들었다)을 그리는 의미에서, 사람들에게 명하여 능연각내에 24명의 공신의 화상을 그리도록 .. 2006. 3. 6.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