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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군집10

<수당연의(隋唐演义)>의 가류루46우(贾柳楼46友)와 사맹사절십삼걸(四猛四绝十三杰) 글: 괴가(魁哥)​에서 가류루46우가 결의형제를 맺으면서 함께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었으며, 나중에는 함께 와강채(瓦岗寨)로 가서 수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46우중에서 어떤 호한은 무공이 고강하고, 어떤 호한은 무공이 평범하고, 또 어떤 호한은 형편없었다. 선전방(单田芳)은 수당연의 평서에서 무림고수를 "사맹사절십삼걸"로 정리했다. 가류루 46우중에서는 각각 2명이 수당사절과 수당13걸에 들어갔다. ​수당사절에 들어간 두 사람: 후군집(侯君集), 왕백당(王伯当)​후군집은 사절중 세번째에 해당한다. 그의 뛰어난 절기는 경공(轻功)으로 비첨주벽(飞檐走壁) 즉, 담장을 타고 지붕을 날아다닐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소백원(小白猿)"이라는 별명까지 얻는다. 와강채에서 후군집은 특수한 인재였다. 그는 의 고상.. 2024. 4. 30.
현무문사변때 이세민이 데리고간 10명은 누구인가? 글: 소담야사(笑談夜史) 장안성에서 권력쟁탈전이 벌어졌다. 이세민과 이건성 사이에 벌어진 권력쟁탈전을 현무문사변이라고 부른다. 결국은 이세민이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세민은 현무문사변때 10명을 데리고 갔다. 그럼, 그들 10명은 각각 누구일까, 그리고 그들은 어떤 결말을 맞이했.. 2018. 12. 20.
후군집(侯君集): 당태종 이세민은 왜 최대공신을 죽였을까? 글: 육기(陸棄), 손옥량(孫玉良) 당태종 이세민은 중국역사상 가장 인자한 군주중 하나이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군주로는 광무제 유수, 송태조 조광윤 정도가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바로 공신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토사구팽(兎死狗烹), 조진궁장(鳥.. 2018. 6. 21.
당태종의 태자 이승건(李承乾)은 왜 반란을 일으켰는가. 글: 정호청천(鼎湖聽泉) 당태종 이세민의 적장자로서 8살때 태자가 된 이승건은 당연히 역사의 행운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나중에 서둘러 부친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죽게 되었을까? 얘기하자면 길다. 이승건은 어렸을 때 매우 총명하고 철도 들고 결단력도 있었다. 진중하다고 할 .. 2017. 12. 29.
[황자쟁위술] 무장탈위술(武裝奪位術) 내선득위패(內禪得位牌) 이세민편외 요순우의 선양이후, 역사는 가천하(家天下)의 시대로 접어든다. 그 이후, 한(漢), 위(魏), 진(晋), 남조의 송(宋), 제(齊), 양(梁), 진(陳) 그리고 북조의 주(周), 수(隋), 당(唐)에 이르기까지 모두 선양의 방식으로 왕조가 교체된다. 선양이 이렇게 매번 활용된 원인은 바로 구황제와 신황제의 .. 2015. 10. 11.
당태종의 14명의 아들 글: 일득재주(一得齋主) 당태종 이세민은 중국역사상 일대명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을 얘기하자면, 그들은 대부분 싹수가 없었다. 결말도 아주 비참했다. 그중 3명은 피살당하고, 3명은 자살했으며, 3명은 요절했고, 1명은 유폐되었다. 2명은 서인으로 폐해진 후 다시 유배.. 2012. 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