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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당)

후군집(侯君集): 당태종 이세민은 왜 최대공신을 죽였을까?

by 중은우시 2018. 6. 21.

글: 육기(陸棄), 손옥량(孫玉良)

당태종 이세민은 중국역사상 가장 인자한 군주중 하나이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군주로는 광무제 유수, 송태조 조광윤 정도가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바로 공신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토사구팽(兎死狗烹), 조진궁장(鳥盡弓藏)"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왕교조체시기에 보기 드문 현상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월왕 구천이 범려, 문종에게 대한 것이나, 유방 여후 부부와 주원장이 개국공신들을 살륙한 것들과 대조된다. 이세민이 개국황제는 아니다. 다만 당나라강산의 대부분은 그의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다. 단지 제1대 군왕은 그의 부친인 당고조 이연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이세민은 비록 개국황제는 아니지만, 당나라개국의 최대공로를 세웠고, 그의 지위는 개국황제들과 다를 바가 없다. 이세민은 원래 황제가 될 자격이 없었다. 황실에서 적장자가 승계하는 전통에 따르면, 황제는 당연히 그의 형인 태자 이건성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최종결과는 이건성과 셋째동생 이원길이 이세민에게 죽임을 당하고, 여러 장수들이 이세민을 황제로 옹립한다. 그것이 바로 현무문사변이다.


현무문사변은 당나라역사상 가장 피비린내나는 황위쟁탈전이다. 세형제가 골육상잔을 벌여, 정관천자가 이긴 것이다. 이 온 세상이 주목하는 황위쟁탈전에서 후군집은 큰 공을 세운다. 역사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건성, 원길을 주살한 것은 후군집의 책략이 많았다." 후군집이 어떤 사람이기에 황실의 '사사로운 일'까지 간여했을까? 그리고 이로 인하여 이세민을 황위에 올려놓은 최대공신이 되었을까? 그는 이렇게 큰 공을 세우고, 이세민에게 중용되었는데, 왜 마지막에는 인자하기로 소문난 이세민에게 죽임을 당해야 했을까?


후군집은 <수당연의>에서 강호별명을 가지고 있다: 소백원(小白猿). 수당연의의 '삼절(三絶)'중 하나이다. 후군집의 '절'은 바로 그의 경공(輕功)이다 평서에서는 그를 이렇게 형용한다: 높이 오고 높이 간다. 육지를 뛰어 올라서, 높은 누각과 큰 건물을 다니는데 평지를 밟는 것과 같다. 횡도강호수도해(橫跳江湖竪跳海), 만장고루각하채(萬丈高樓脚下踩)" 그리고 <수호전>의 '고상조(鼓上蚤)' 시천(時遷)과 같은 류의 인물이고, <삼협오의>의 '어묘(御猫)' 전소(展昭)와 함공도 오서(五鼠)도 같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역사상 진실한 후군집은 평서에서 묘사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고상소'나 '오서'가 아니다. 그는 대명이 자자한 군의 대장이다. 전장을 누비는 총사령관이고, 지모가 많은 군사가, 정치가이다.


후군집은 섬서성 순읍 토교진 후가촌의 사람이다. 그는 관료집안에서 태어났고, 할아버지 후식(侯植)은 '용모가 위엄있고, 무예가 절륜했다." 관직이 표기대장군, 비성현공에 이른다. 부친 후정(侯定)은 역시 부친을 닮아 관직이 표기대장군, 의동삼사, 개원군공에 이른다. 후군집은 권세있는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러나 그의 이 가정은 난세를 만난다. 할아버지와 부친은 모두 북주의 관리였고, 북주는 수나라에 찬탈된다. 그후에 후군집은 방탕한 젊은이로 살아간다. 활쏘기같은 가장 기본적인 기술도 잘 배우지 않았다. 그는 그저 옛일을 그리워하며 자랑하기 좋아했다. 그래서 역사서에 이렇게 적었다: "성격이 교만하고 가식적이며, 자랑하기를 좋아했다. 활을 쏘는 것조차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후군집은 군대에서 성공했고, 평소에 학문이 뭔지도 몰랐다." 후군집이 정말 그러했을까? 아마도 이것은 그저 역사에서 본 겉모습만일지도 모른다.


후군집은 와강채에서 출발한 사람이 아니다. 역사서에는 후군집이 "어려서 진왕을 모시는 막부에 있었다"고 하였다. 즉, 그는 어려서부터 이세민을 따른 것이다. 와강산에 있던 것이 아니라. 후군집의 가장 큰 공로는 현무문사변을 모의하고 기획한 것이다. "은태자(隱太子)를 죽이는 것을 모의하는데 특히 힘썼다." 여기서 은태자는 이건성을 가리킨다. 사서에는 우군집이 어떤 아이디어를 냈는지는 쓰지 않고 있다. 다만 현무문사변의 결과를 보면, 그가 세운 공은 당연히 모략의 공일 것이고, 제갈량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일선에서 전투에 참여하고 공을 세운 사람은 친히 이원길을 쏘아죽인 위지경덕이다. 이세민은 자신의 친형과 셋째동생을 죽였다. 성공하면 그만이지만, 실패한다면 그것은 구족을 멸하는 큰 죄이다. 이세민에게 이런 아이디어를 낼 수 있고,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보면 우군집은 문맹일지는 몰라도 담량과 견식이 있는 문맹이었다. 그의 탁월한 담량과 견식으로 후군집은 정변에서 큰 공을 세운다. 그리고는 좌위장군, 노국공, 식읍1천호, 병부상서, 이부상서등의 직위를 맡는다. 막료에서 화려하게 조정대신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삼국시대에 여몽(呂蒙)이 있다. 그는 거친 사람이었고, 노숙은 그를 멸시했다. 나중에 여몽은 손권의 권유로 공부를 하게 되고,노숙이 다시 그를 보았을 때는 견식이 노숙보다 위였다. 이때, '사별삼일 괄목상대'라는 말이 나온다. 후군집은 조정의 중신이 된 후에, 역시 공부에 매진하고, 명장 이정(李靖)을 스승으로 모신다.


그러나, 후군집은 <삼국연의>에서 제갈량이 위연(魏延)에 대해 선입견을 가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태어나면서부터 반골인 인물이다. 만일 그가 이세민을 도와서 현무문사변을 일으킨 것이 정확한 '반골'의 행동이었다고 한다면, 그가 이후에 일으킨 '반란'은 잘못된 길이었다. 결국은 자신의 목숨까지 잃고만다. 후군집의 첫번째 '반(反)'의 대상은 바로 그의 스승인 이정이었다. 후군집은 이정이 그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데 불만을 품는다. 그리하여 이세민의 앞에서 이정이 모반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다고 모함한다. '스승과 제자는 부자간과 같다"는 말이 있다. 후군집은 이렇게 스승의 은혜를 배신한다. 다행히 이세민은 일대명군이고, 후군집의 모함을 듣지 않았다. 그러나 이정은 이 일을 가지고 판단한다. 후군집이 나중에 반드시 반란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후군집은 처음에 이정을 따라 토곡혼을 토벌하여 대승을 거둔다. 거기서 풍부한 전투경험을 쌓는다. 나중에 이세민은 교하도행군대총관으로 임명하여 고창국을 토벌하게 하고, 역시 대승을 거둔다. 고창국의 국왕 지성(智盛)은 투항한다. 이 전투는 후군집이 독자적으로 군대를 이끌고 얻은 최대의 승리이다. 나라를 멸망시킨 공을 세웠으니, 마땅히 관직이 몇 단계는 올라야 했다. 다만 후군집은 승리를 거두고 조정으로 돌아온 후에 상을 받지 못한다. 오히려 수감된다. 원인이 무엇일까? 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둘 때, 후군집은 병사들에게 약탈하게 하여 많은 전리품을 사사로이 챙겼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다. 아래이 병사들도 그를 따라하게 된다. 이리하여 기율이 엄격했던 대당의 군대는 이때 강도로 변신하여, 나라의 위신을 많이 깍아먹는다. 만일 후군집의 전공이 혁혁하지 않았다면, 당장 참수를 당할 죄였다.


이세민은 관용적이고 인자한 황제였다. 공로를 참작해서 죄를 묻지 않고, 후군집을 용서한다. 비록 후군집에게 상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후군집에게 벌도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세민의 이런 관용은 후군집을 더욱 방종하게 만든다. 후군집은 자신에게 멸국의 공이 있다는 것을 내세워 '작은 죄'가 있지만, '큰 공을 세웠는데 상을 받지 못했다'고 여긴다. 그래서 마음 속에 원한을 품는다. 집안에서 문을 걸어잡그고 가족들에게 하소연을 하는 것은 괜찮은데, 후군집은 그 것을 다른 공신인 명장 장량(張亮)에게 해버린다. 그는 장량에게 자신과 같이 '반란'을 일으키자고 부추긴다. 걸핏하면 '반란'을 도모하는 것은 바로 죽음의 전주가 아니던가. 장량은 충신이었고, 후군집에 그에게 한 말한마디 행동하나를 모조리 이세민에게 알린다. 그러나 관용적이고 인자한 이세민은 증거부족을 이유로 여전히 후군집을 처벌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는 여전히 후군집이 현무문사변때 세운 공을 셍각하고, 고창국을 멸망시킨 공을 생각했을 것이다.


이 후군집은 정말 천생 '반골'이었다. 장량이 그의 말을 듣지 않자, 그는 다시 태자 이승건(李承乾)을 찾아가서 '모반'을 꾀한다. 다시 한번 현무문사변을 일으키자는 것이다. 이세민의 등극은 원래 명분이 없는 일이고, 형제를 죽였다는 것은 그의 마음 속에서 영원한 상처였다. 이제 아들이 다시 황위쟁탈을 위하여 그가 했던 자랑스럽지 못한 과거를 재연하려 한다. '반란으로 황위에 오른' 그가 어찌 이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 후군집과 이승건의 찬탈모의는 누설되었다. 이는 후군집이 가장 우려하던 일이다. 그래서 '이것을 참는다면 또 무엇을 참아야 한단 말인가'라는 상황인데도 이세민은 옛정을 생각해서 후군집을 풀어준다. 그러나, 대신들은 아무도 후군집을 위해서 용서해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모반죄는 대시대비(大是大非)의 죄이다. 후군집은 평소에 동료들과 잘 지내지 못했고, 친구가 많지 않았다. 설사 친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상황하에서 그를 동정해줄 수 있겠는가. 모두가 죽여야한다고 소리치자 결국 이세민도 후군집을 참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