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원제 14

상관씨(上官氏): 6살에 황후, 15살에 태후, 40살에 태황태후가 된 여인

글: 역사상적괴점(歷史上的拐點) 상관씨는 명문집안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상관걸(上官桀)이고, 외할아버지는 대장군 겸 대사마 곽광(霍光)이다. 곽광은 곽거병(霍去病)의 동생으로 조정의 대권을 완전히 장악했던 인물이다. 그와 상관걸은 모두 한무제때의 중신으로, 한무제의 탁고를 받아 나이어린 한소제(漢昭帝)를 보좌했다. 이런 할아버지를 두었으니 상관씨의 일생은 당연히 평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딸을 궁으로 보내기 위해, 상관씨의 부친인 상관안(上官安)은 한소제를 어릴 때부터 길러준 한소제의 유일한 누나인 악읍장공주(鄂邑長公主)를 찾아가서, 과부로 지내는 장공주의 애인 "정외인(丁外人)"의 관직과 작위를 올려주는 것을 조건으로 악읍장공주를 설득하는데 성공하여, 상관씨를 한소제의 후궁으로 들어가게 하는데 성공한다. ..

상관황후(上官皇后): 중국역사상 유일한 민며느리 황후

글: 역사변연(歷史邊緣) 민며느리(童養媳)는 가난한 집안의 계집아이를 어린나이로 장래 남편이 될 사람의 집에 보내는 것이다. 거기서 장래의 시집에서 일하며 갖은 고생을 다하게 되는 불행한 여인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한나라황실에 민며느리가 있었다. 그녀는 바로 한소제(漢昭帝) ..

서한 황태태후(皇太太后)와 태황태후(太皇太后)의 대결

글: 유병광(劉秉光) 한원제(漢元帝)의 후비는 아주 많았다. 그중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3명이다. 첫째는 황후인 왕정군(王政君)이고, 둘째는 소의(昭儀) 부요(傅瑤)이고, 셋째는 소의 풍원(馮媛)이다. 당연히 이는 모두 한원제 시대에 그녀들이 얻었든 최종 봉호(封號)이다. 한원제는 평생동..

해혼후(海昏侯) 유하(劉賀): 권신이 괴뢰황제를 고르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다.

글: 악치(岳峙) 한(漢)나라 400년 역사상, 겨우 27일간 황제를 지낸 해혼후 유하의 존재감은 아주 낮다. 그를 얘기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우연히 그의 이름을 꺼낸다고 하더라도, 그저 조롱의 대상으로 삼을 뿐이었다. 그러나, 해혼후묘가 발굴되면서, 유하는 돌연 함어변신(鹹魚變身)한다. ..

[황자쟁위술] 광결붕당술(廣結朋黨術) – 막부지낭패(幕府智囊牌) 유오편

기원전21세기경 대우(大禹)가 자신의 아들 하계(夏啓)에게 군왕의 자리를 넘겨준 이후 중국고대 가천하(家天下)의 시대에 역대의 제왕들은 모두 대대손손 영원히 제왕의 자리에 앉아있기를 바랬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왕들이 자신의 후계자가 될 아들의 종합적인 능력을 길러주어야 했다..

카테고리 없음 2015.08.04

[황자쟁위술] 교식위현술(矯飾僞賢術) – 각수예제패(恪守禮制牌)

중국고대에는 황제만이 쓸 수 있는 것들을 규정해두고 있었다. 예를 들어, 황금색 기와는 황제가 거처하는 황궁, 사찰, 능묘등의 건축물에만 쓸 수 있었다. 그리하여, ‘왕’에 불과한 조선왕궁에는 황금색 기와를 볼 수 없다. 그리고, 붉은색 글씨(朱批)도 황제만이 쓸 수 있다. 상소문이 ..

카테고리 없음 2015.08.04

상관황후(上官皇后): 중국역사상 유일한 동양식(童養媳, 민며느리) 황후

글: 서문(瑞文) 동양식은 대년식(待年媳)이라고도 하며, 고대 민간에는 이런 유형의 결혼이 많이 있었다. 그녀들은 대체로 빈곤한 가정의 어린 딸을 역시 한미한 시집으로 보내고, 성년이 되어 비로소 남편과 정식으로 결혼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여자의 집에서는 인구부담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