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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쟁위술] 교식위현술(矯飾僞賢術) – 각수예제패(恪守禮制牌)

by 중은우시 2015. 8. 4.

 

중국고대에는 황제만이 쓸 수 있는 것들을 규정해두고 있었다. 예를 들어, 황금색 기와는 황제가 거처하는 황궁, 사찰, 능묘등의 건축물에만 쓸 수 있었다. 그리하여, ‘왕’에 불과한 조선왕궁에는 황금색 기와를 볼 수 없다. 그리고, 붉은색 글씨(朱批)도 황제만이 쓸 수 있다. 상소문이 올라오면 황제가 읽은 후에 지시를 붉은색 글씨로 써서 내려보내게 되는데 “저조소청(著照所請)”은 올린 내용으로 시행하라는 말이고, “지도(知道)”는 알았다는 말인데, 시행하지는 말고 그렇다고 상소문을 올린 자를 처벌하지도 말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황제의 전용도로로 “치도(馳道)”가 있다. 이는 황제의 말이나 수레가 다니는 도로인데, 황제를 제외하고 대신, 백성, 심지어 황실종친도 치도로 다닐 수는 없었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치도는 천자의 길이다. 진시황이 만들었고, 삼장(三丈)이며 나무를 심었다”, “치도의 바깥에 담장을 쌓고, 천자는 가운데로 다니며, 바깥 사람들이 들여다 볼 수 없었다”는 내용이 있다.

 

이 치도가 황위승계다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두 사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서한(西漢)의 한성제(漢成帝) 유오(劉驁)의 사례로, 그는 한원제(漢元帝) 유석(劉奭)과 효원황후 왕정군(王政君)의 사이에서 태어난 적장자이다. 할아버지인 한선제(漢宣帝)는 이 적황손을 아주 좋아하여 친히 그의 이름을 오(驁)라고 지어주고, 자를 태손(太孫)이라 하며, 항상 곁에 두고 아꼈다. 한선제의 사망으로 한원제가 즉위한 후 유오는 황태자에 책봉된다. 그런데, 서모인 부소의(傅昭儀)가 한원제의 총애를 받으면서 그녀가 낳은 이복동생 정도왕(定陶王) 유강(劉康)은 재능까지 뛰어나자 한원제는 태자를 바꾸려는 생각까지 품게 된다. 그리하여 왕황후와 유오는 태자 자리를 빼앗기지 않고 지킬 방법을 찾는데 고심한다. 마침내 하늘은 노력하는 사람을 버리지 않았고, 유오에게 기회가 찾아왔으며, 유오는 그 기회를 잘 잡았다. <한서.성제기>의 기록은 이러하다: “태자(유오)가 처음에 계궁(桂宮)에 거처하였는데, 황상이 급히 부른 적이 있었다. 태자는 용횡문을 나섰으나 감히 치도를 가로지르지 못하고 먼 길을 돌아가느라 늦게 도착했다. 황상이 늦은 이유를 물으니, 감히 치도를 가로지를 수 없어서 돌아오느라 늦었다고 아뢴다. 황상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앞으로 태자는 치도를 가로질러도 된다고 허락한다.”

 

다른 하나는 조조의 아들 조식의 사례인데 유오와는 반대의 상황이다. 조식은 초기에 조비와의 황위계승전에서 우위를 점하여, 한때 조비가 어찌할 바 모르게 만들기도 했다. 조조는 여러 번 사람들에게 조식이 “여러 아들 중 가장 대사를 맡길 만하다”고 말하여 그를 후계자로 삼으려는 뜻을 드러내곤 했었다. 그러나, 조식은 자신의 재주를 믿고 수신제가, 극기복례에 실패하여, 여러 번 계속 예제(禮制)와 부명(父命)을 어기는 어리석은 짓을 하다가 결국 후계자의 자리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 중의 한 사례가 바로 치도와 관련된다. 건안22년, 조식은 공공연히 국가의 법령을 어기고 가까운 친구인 승상주부 양수(楊修)와 함께 마차를 타고 사마문을 나서 치도를 달린다. 그 일을 보고받고 조조는 대노하여 상거령(尙車令)을 처형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 자건(子建, 조식)이 아들 중 가장 대사를 맡길만하다고 하였다.” “그런데 식(조식)은 사사로이 사마문을 열고 금문까지 갔다. 그 후로 그를 다르게 보게 되었다.”  이 사마문사건은 조식이 세자의 자리에서 멀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유오와 조식의 치도와 관련된 이야기에서 한 명은 치도를 가로지르지 않고 돌아가서 황제에 오르고, 다른 한 명은 치도를 사사로이 다니다가 앞길을 망쳤으니 절묘하게 대비되는 점이 있다. 유오가 치도를 가로지르지 않아서 부친으로부터 치도를 가로질러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낸 것은 고명한 수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조식이 이전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않고, 마음내키는대로 행동하다가 후계다툼에서 패배한 것은 어리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성패에서 치도와 관련된 것은 그저 소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하고 그것이 국면을 결정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어찌되었건 예제를 잘 지키고, 부친의 명을 잘 따르며, 효도를 다하는 것은 황위를 노리는 황자들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면 주었지, 나쁜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