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흠 12

"팔로군(八路軍)" 명칭에 관한 몇 가지 문제

글: 맹검홍(孟儉紅) 항전초기 홍군(紅軍)을 팔로군(八路軍)으로 개편하는 과정에 대하여는 여러 글과 책에서 상세히 소개한 바 있다. 다만, 여전히 약간의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예를 들어, 팔로군 번호의 유래라든지, 산하의 3개사(師)의 번호는 왜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지등등. 그리고 개편된지 1달도 되지 않아 왜 팔로군은 다시 제십팔집단군(第十八集團軍)으로 명칭이 바뀌었는지, 그리고 중공은 왜 팔로군이라는 명칭을 고집했는지. 국민당과 공산당간에 팔로군 번호를 둘러싸고 어떤 다툼과 알력이 있었는지. 중공은 또 어떤 상황하에서는 "제18집단군"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는지. 이런 문제를 이해하는 것은 이 시기의 역사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팔로군"은 원래 '월군(粤軍)'의 번호였..

장개석은 어떻게 황포군관학교 교장이 되었는가?

글: 녕녕(寧寧) 상해로 물러난 손중산은 냉정하게 반성하며 생각을 거듭한다. 손중산은 이 때 북대의 저명한 교수이자 중국공산당 북방지구 지도자인 이대쇠를 만난다. 그는 손중산을 만나기 위하여 일부러 찾아왔다. 중국지부에서는 모스크바의 코민테른에서 보낸 지령을 받았는데, 중..

주불해(周佛海): 절처봉생(絶處逢生)의 매국노

글: 유전(劉典) 중화민국역사에서 신기한 정계의 달인이 한 사람 있다. 그는 흥풍작랑(興風作浪)했고, 견풍사타(見風使舵, 바람부는대로 키를 돌리다)한 정객이며, 일생동안 공산당, 국민당정부, 왕정위친일정부를 오갔고, 그후 항전이 끝나고나서도 목숨을 유지한 중화민국 제3호 "매국..

일본침략군사령관 오카무라 야스지(岡村寧次)는 어떻게 무죄판결을 받았는가?

글: 중외서적 그의 전체 군대생활은 일본의 충국침략사의 축소판이다. 그리고, 그의 동료들이 법률의 엄격한 징벌을 받을 때, 그는 살아서 일본으로 돌아갔다. 1949년 1월 30일 오전 10시, 기적소리와 함께, 미국의 화륜선 빅스호는 상해의 황포강을 떠났다. 여러날의 항해끝에 빅스호는 일..

진공박(陳公博) : 공산당과 국민당에서 모두 제명당한 유일한 사람

글: 유계흥(劉繼興) 1921년 7월, 중국공산당 제1차전당대회("1대")가 상해에서 개최되었다. 일대의 대표이자, 광저우당지부 책임자인 진공박은 회의상에서 기고만장했고, 스스로가 맞다고 생각하고, 조직은 무시했다. 회의기간동안, 프랑스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되자, 안전의 측면에서 가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