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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26

"아편전쟁": 중국의 창세신화 글: 고천활해(高天闊海) 이 제목만 보면, 어떤 네티즌들은 '제목으로 어그로'를 끌려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렇지 않다. 영국의 역사학자 Julia Lovell(1975-)의 The Opium War: Drugs, Dreams and the Making of China(아편전쟁: 마약, 꿈, 그리고 중국만들기)라는 책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아편전쟁은 중국의 '창세신화(founding myth)'중 하나라고. 아편전쟁은 중국인들에게 의미가 아주 크다. 중국의 불쌍한 역사교육 속에서, 정부는 이데올로기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아편전쟁을 이러저리 뜯어고쳤다. 그렇게 하여 민족원한(서방국가에 대한)을 선동하고, 중공통치를 유지하려는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 중공이 역사허무주의로 고쳐쓴 중국역사속에서 .. 2023. 3. 13.
청나라 황제들은 한어(漢語)를 썼을까, 만어(滿語)를 썼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는 청나라궁중드라마를 보면, 우리는 자주 황제가 조회이 나가고, 대신들이 아뢰는 등의 장면을 보게 된다. 통치자인 청나라 황제는 조회에 나가서 만주족, 한족이 모여있는 대신들과 교류할 때, 어떤 언어를 썼을까? 한어일까, 만주어일까? 모두 알다시피, 청나라의 정치체계는 주로 만한 두 민족으로 구성되었다. 서로 다른 민족은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다. 언어의 차이는 교류에서의 장애를 가져온다. 청나라가 산해관을 넘어 북경에 자리잡은 직후, 조정의 관리들은 기본적으로 만주족이다. 그래서 청나라초기에는 만주어가 조정의 언어였다. 소수의 조정에 들어온 한족신하는 반드시 만주어를 익혀야 했다. 그러나, 두 민족이 융합되는 과정에서 일방적인 학습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2021. 11. 13.
명나라가 멸망한 후, 문신무장들이 대부분 청나라에 투항하고, 왜 남명이나 대순으로 귀순하지 않았을까? 글: 야독사서(夜讀史書) 1644년은 중국역사상 아주 특수한 해이다. 바로 이 해에, 276년간이나 존속해오던 대명왕조가 종말을 맞는다. 이와 동시에, 중국에는 다시 3개의 주요 세력이 나타나서 중원을 축록(逐鹿)하는 상황이 된다. 이 세 세력은 각각 대청(大淸)정권, 대순(大順)정권 그리고 .. 2019. 1. 12.
송(宋)과 청(淸): 서로 다른 금융발전경로 글: 오구(吳鉤) 합회(合會)는 민간이 자금을 모아서 성립한 상호부조조직이다. 강소,절강,복건 일대에 이런 류의 합회는 지금도 완강하게 생존하고 있다. 노방(爐房)은 원래 그저 은원보(銀元寶)를 주조하는 작방(作坊)이었는데, 점점 예금, 대출을 겸영하는 금융기관으로 변화한다. 당포(.. 2014. 10. 2.
"꺼우리빵즈(高麗棒子)": 조선사절단의 노비명칭에서 유래하였다. 글: 황보기(黃普基) 모두 알고 있다시피 "꺼우리빵즈"는 중국인들이 조선인(한국인)을 비교적 멸시하여 부르는 칭호이다. 그러나 이 칭호의 유래에 대하여는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몇 가지 견해를 보더라도 생각이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일부 해석은 확실.. 2013. 5. 18.
건륭제(乾隆帝)의 후계자선정: 아들을 보지 않고 모친을 보다 글: 자일(子逸) 옹정은 비밀건저(秘密建儲)제의 창시자이다. 건륭은 제도의 첫번째 수익자이다. 그는 즉위한 이후, 여전히 이 제도에 따라 후계자를 지정했다. 건륭은 일생동안 3번 후계자를 선정했다. 이전 두 번은 모두 후계자의 요절로 실패했고, 마지막에 건륭은 황위를 황십오자 영염.. 2013. 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