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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승31

호해(胡亥)즉위문제: <사기>와 출토자료중 어느 것이 사실일까? 글: 난가인(爛柯人) 호해즉위건은 이천년동안 안개 속에 쌓여 있다. 역사학자들은 그가 황위를 찬탈했다고 보지만, 새로 출토된 자료는 그가 합법적으로 즉위했다고 말한다. 이 두 가지 설중 어느 것이 정확할까? 두 가지 설이 나오게 된 배후에는 어떤 역사적 이유가 있는 것일까? 1. 의 출토와 획기적 발견 2003년, 북경대학은 죽간(竹簡)을 기증받는데, 그 내용 중 일부는 였다. 는 이 책의 첫부분 "석자진왕조정출유천하(昔者秦王趙精出遊天下)"에서 나온 것이다. 진, 한 이전의 서적에는 이름을 지은 경우가 드물어, 서적의 첫마디를 가지고 명명하는 것이 하나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조정은 바로 진시황이다. 진시황의 성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진(秦), 조(趙)의 조상은 뿌리가 같아 모두 .. 2022. 8. 17.
소하(蕭何): 진말 영웅각축의 최대의 승리자 글: 곽천민(郭天民) 기원전209년, 얌전하게 농사나 지으려 하지 않고, 오로지 '부귀'를 꿈꾸던 농삿꾼 진승(陳勝)이 마침내 마음 속의 불만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900여명의 수졸(戍卒)을 이끌고 반란의 깃발을 내걸었다. 이는 진나라통치의 철의 장막의 한 부분을 찢어버리는 것이었고, 동.. 2019. 9. 16.
중국역사상 2개의 '장초(張楚)' 정권 글: 지봉간적역사(指縫間的歷史) 중국역사상 전후로 2개의 "장초(張楚)"정권이 탄생한다. 각각 대택향의거후 진승이 건립한 정권과 북송이 멸망한 후 여진족이 만들어준 장방창(張邦昌)의 괴뢰정권이다. 역사학자들은 양자를 구분하기 위하여 통상적으로 진승의 정권은 "장초"라고 부르.. 2019. 6. 3.
고대 "농민반란군"의 우두머리는 대부분 농민이 아니었다, 그러면...? 글: 고건중국(古建中國) 이런 말이 있다: "천하는 합쳐진지 오래되면 반드시 나뉘고, 나뉜지 오래되면 반드시 합친다" 중국역사상 9개의 대통일왕조가 있었다. 매 왕조의 존속기간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했다. 진나라는 겨우 15년이고, 양한(兩漢)은 400여년이다. 새로운 왕조가 건립될 때면.. 2019. 2. 12.
진승(陳勝)은 칭제한 후 또 다른 반란주역 오광(吳廣)을 어떻게 대했는가? 글: 풍전사감(瘋癲史鑒) 기원전209년, 진승은 대택향(大澤鄕)에서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느냐?"는 말로 반란의 기치를 내건 후, 진나라의 폭정에 시달리던 백성들은 전국각지에서 속속 호응해왔다. 1개월도 되지 않아, 진승의 반군은 겨우 900명의 가난한 백성에서 시작하여, 수만의 보병.. 2019. 1. 6.
유방(劉邦)은 진시황(秦始皇)의 동생이다 (2) 글: 정보(程步) 4. 유방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 200년간 존속한 왕조의 개국황제이고, 그 후에 부인 여후가 여러해동안 집권하였는데, 아무도 유바으이 조상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른다. 이것도 기이하지 않은가? 기이하다. 그래서 한나라이래로 여러 글에서 추측하고 논쟁했다. 어떤 사.. 2018. 10. 27.
진왕조가 천하통일후 15년만에 멸망한 원인은 폭정이 아니다. 글: 천천천(天天天) 진시황은 겨우 10년의 시간을 들여 일거에 6국을 멸망시키고 전국을 통일하여, 최초의 중앙집권제국가를 건립했다. 그러나 이 국가는 겨우 15년간 존속하고는 운명한다. "합구(合久)"되기도 전에 다시 "분(分)"한 것이다. 원래 진시황은 만대를 내려가는 진왕조를 원했으.. 2018. 8. 27.
거록지전(巨鹿之戰)의 수수께끼 글: 독력견문(讀歷見聞) 거록지전은 전략적인 결전이었다. 진군(秦軍)과 반진군(反秦軍)의 어느 한측이 승리를 거두면 다른 측은 불가피하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다. 이 전쟁사상 보기 드문 이소승다(以少勝多)의 저명한 전투는 전체 과정을 보면 통상적인 이치에 맞지 않는 괴이한.. 2018. 2. 16.
태평천국을 말한다 글: 양혜왕(梁惠王) 오늘의 웨이보에서 정부는 다시 태평천국을 칭송했다. 네티즌들은 적지 않게 태평천국을 욕했다. 이 문제에 대하여 필자는 몇 마디 하고 싶다. 중국의 역사교과서에 나오는 태평천국은 모두 긍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져 있다. 나도 그렇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대학.. 2016. 8. 23.
대택향(大澤鄕)의 역사메아리 글: 조성명(曹聲明) 벼랑끝에 몰린 사람은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잠재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진2세 원년7월, 진승(陳勝)은 9백여명의 피로에 지친 술졸(戌卒)을 이끌고 어양(漁陽)으로 변방을 지키러 가고 있었는데, 큰 비를 만나서 길을 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대택향.. 2014. 1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