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소하(蕭何): 진말 영웅각축의 최대의 승리자

by 중은우시 2019. 9. 16.

글: 곽천민(郭天民)


기원전209년, 얌전하게 농사나 지으려 하지 않고, 오로지 '부귀'를 꿈꾸던 농삿꾼 진승(陳勝)이 마침내 마음 속의 불만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900여명의 수졸(戍卒)을 이끌고 반란의 깃발을 내걸었다. 이는 진나라통치의 철의 장막의 한 부분을 찢어버리는 것이었고, 동시에 군웅축록의 서막을 연 것이었다.


항우와 유방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항우는 진시황의 순유를 보고, 거리낌없이 크게 말했다: "저 자리를 내가 가지겠다." 유방은 진시황의 대오를 보고 선망하며 말했다; "아..사내대장부라면 마땅히 저 정도 되어야지." 그리하여 둘은 각각 자신의 대오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킨다.


항우와 유방이 진나라를 무너뜨린 후, 다시 서로 싸운다. 결국 유방이 항우를 이기고 한나라를 건립하며 그는 개국황제에 오른다.


표면적으로 보면, 유방이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다. 마치 그가 최대의 승리자인 것처럼 보인다. 다만 만일 반란에 투입한 것과 최후의 수익을 비교해서 따져보면, 진정한 승리자는 유방이 아니라 소하이다.


반란을 일으킨 자들의 최초 목적은 오직 3가지이다: 첫째, 현재 압박받는 노예의 지위에서 벋어나는 것, 둘째, 칭왕쟁패하고 영화부귀를 누리는 것. 셋째, 강산을 남겨 자손후대가 이를 누리게 하는 것.


그런데, 의거에는 자본이 필요하다. 그리고 리스크를 안아야 한다. 반란의 가장 기본적인 자본은 바로 자신의 목숨이다. 가장 큰 리스크는 바로 자신의 생명을 잃는 것이다. 심지어 전체 가족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그저 목숨만 부지해야만, 반란의 이익회수율을 따지는 것이 의미가 있게 된다.


항우처럼 비록 반란의 첫째 목표는 달성했지만, 유방과의 쟁패과정에서 오강에서 목숨을 잃는다. 본전도 못건졌다. 후대도 남기지 못했다. 강산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유방은 비록 3개의 목표를 모두 실현했지만, 다만 뒤의 두 가지 목표는 심각하게 불완전했다.


유방이 황제에 오르기 전의 기간은 차치하고, 항우를 이기고 황제에 오른 때로부터 사망할 때까지의 기간을 보면 모두 7년이다. 이 7년간 그는 거의 매년 외지로 나가 전쟁을 했다. 풍찬노숙(風餐露宿), 석불가난(席不暇暖)이다. 어떤 때는 흉노와 싸우고, 어떤 때는 반란을 진압했다. 거의 편안하게 지내질 못하고 결국 최후에는 화살에 맞은 상처때문에 죽는다.


유방의 사후, 8명의 아들을 남겨 강산을 이어받게 했지만, 그중 6명은 모두 여후에게 암산을 당한다. 여후 자신의 친아들도 요절한다. 그후에는 너죽고 나살기식의 황위계승투쟁이 벌어진다.


그럼 소하는 어떠한가? 원래 진나라의 하급관리였고, 진말의 군웅각축과정에서 기회를 잡았고, 파이 한조각을 차지한다.


그 자신은 앞에 나서지 못했다. 그는 유방을 앞장세운다. 소하는 진나라의 포학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만일 잘못되면 자신의 목이 날아가는 것은 물론 구족이 연좌되어 죽임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실 소하는 처음에 유방을 좋게 보지 않았다. 그저 유방의 미래 장인인 여공이 유방을 아주 높이 평가하자, 마음을 바꾸어 유방을 지지하게 된다.


만일 유방을 창업자에 비유한다면, 소하는 벤처투자자에 가깝다. 그의 최초 투자는 겨우 오백전이었다.


그것은 유방이 함양으로 가서 임무를 집행할 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유방에게 300전을 주었는데, 오로지 소하만이 유방에게 500전을 준다. 200전을 더 준것때문에 나중에 암청난 보답을 받게 된다. 유방이 공신들에게 상을 내릴 때, 소하에게는 2000호를 더 준 것이다.


다만, 유방은 좋은 창업자가 아니었다. 진나라와 싸우는 것이건 나중에 항우와 싸우는 것이건 모두 패전이 많았다. 갑옷과 투구를 잃고, 낭패하여 도망친 적이 많다. 매번 소하는 유방을 도와 이를 수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었다.


항우의 유방에 대한 투자는 주로 아래의 4가지 방면에서 이루어진다.


첫째는 병력모집이다. 유방의 세력은 처음에 아주 약소했다. 장병들 중에서는 그를 좋게 보지 않아 떠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전쟁터에서 죽고, 그의 부대는 인력손실이 심각했다. 그는 어떤 때는 심지어 1인사령관인 적도 있다. 다만 소하는 항상 적시에 병력을 모집해 주었고, 유방이 가장 필요로 할 때 보충해 주었다.


둘째는 물자조달이다. 유방과 항우가 형양(滎陽)에서 여러 해동안 대치할 때, 양식이 부족했는데, 소하가 후방에서 계속하여 양식을 운송해 주었다. 나중에 한나라를 건립하고, 반란을 평정할 때도 소하는 여전히 생산을 조직하고 물질제공을 책임졌다.


셋째는 인재추천이다. 유방은 항우에 의해 한왕에 봉해진다. 그러나 그는 평생 한중에 남아 있으려 하지 않았다. 계속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수하 장병들도 고행을 생각하며 속속 도망쳤다. 그러나 유방은 병력도 적고 장수도 약했다. 아주 재능이 뛰어난 장수가 급히 필요했다. 소하는 적시에 그에게 한신을 추천한다. 유방은 한신을 좋게 보지 않자, 한신은 분노하여 인사도 없이 떠나버린다. 그때도 소하가 다시 쫓아가서 붙잡아 왔다.


소하는 유방에게 이렇게 말한다. 한왕으로 오래 있고 싶다면 한신이 필요없다. 그러나 만일 천하를 쟁탈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한신을 써야 한다. 그리하여 유방은 한신을 대장군으로 삼는다. 결국 한신은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유방이 천하를 얻을 수 있게 해준다.


넷째는 심환(心患)제거이다. 유방이 황제의 보좌에 오른 후, 한신을 초왕에 봉한다. 나중에 다시 회음후로 강등시킨다. 다만 한신은 공고진주(功高震主)할 정도여서 유방에게 큰 걱정거리가 된다. 한신은 비록 소하가 유방에게 추천한 사람이고, 소하는 한신에게 발탁해준 은혜가 있다. 다만 소하는 시종 유방의 편에 선다. 관건적인 순간에 그는 아무런 망설임없이 손을 써서 한신을 유인살해하는 것을 도운다.


유방이 강산을 차지한 후, 논공행상을 하는데, 그는 여러 사람들의 주장을 물리치고 소하를 제일공신으로 올린다. 그리고 상도 가장 많이 내린다. 신하들의 서열을 정할 때도 소하가 첫째였다. 그리고 "검리상전(劍履上殿), 입조불추(入朝不趨)" 즉 검을 차고 대전에 오를 수 있고, 궁내에서 종종걸음으로 걷지 않아도 되게 해주었다. 그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세있는 인물이 된다.


사실상, 유방은 일년 내내 외지에서 병력을 이끌고 전쟁을 수행했다. 조정내의 일은 그에게 보고할 여유가 없었다. 모두 소하 한 사람이 결정했다. 소하에게 부족한 것은 그저 황제라는 명분 뿐이었다.


소하의 일생을 돌아보면, '피견지예(披堅持銳)'의 모습은 없다. 전쟁터에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지도 않았다. 풍찬노숙하지도 않았고, 여기저기 돌아다지지도 않았다. 혁명이 성공한 후, 그는 장양처럼 화를 피해 은거하지도 않았고, 더구나 한신처럼 토사구팽 당하지도 않았다.


소하는 일처리가 조용했지만, 번화한 지방에 거주하지 않고 호화주택을 짓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본인은 여전히 반란이 가져온 영화부귀를 누렸고, 천수를 누렸다. 그래서 그의 두번째 목표는 더욱 완벽하게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소하가 죽은 후, 그의 자손후대는 작위와 봉지와 재산을 세습받는다. 그리고 황실의 은총을 받는다. 비록 4번 죄를 지어 작위를 잃은 적이 있지만, 금방 다시 회복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셋째 목표도 기본적으로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소하가 유방보다 1살이 많고, 사망은 1년이 늦었다는 것이다. 만일 처음부터 소하와 유방의 분투과정을 음미해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소하는 기실 처음부터 유방을 이용했다. 그가 한신을 이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한 모든 것은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결국 그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유방은 봉상때 소하의 공적을 평가하며 이렇게 비유했다. 그는 말하기를 사냥때 비록 토끼를 잡는 것은 개(狗)이지만, 토끼를 발견하고 명령을 내리는 것은 사람(人)이다. 일반적인 공신은 공구(功狗)이지만, 소하는공인(功人)이다.


유방의 이 말은 수하의 다른 공신들에게 들으라고 한 말이지만, 그 자신이 바로 소하의 공구였다는 것은 알았을까? 공구는 가장 먼저 사냥감을 먹는다. 그러나 진정 사냥물을 차지하는 것은 결국은 공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