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해59 산화난만시 정의별양농: 모택동유소기양가후인취회측기(聚會側記) 글: 공동매(孔東梅) 2004년 여름, 어느 주일의 저녁, 나와 모친 이민(李敏)은 아주 의미있는 모임에 참석했다. 유소기(劉少奇)의 부인 왕광미(王光美) 할머니가 소집하여, 모택동, 유소기 두 집안의 후손들이 경성에서 함께 모여서 우정을 얘기하는 자리였다. 모임은 19시로 정했는데, 우리가.. 2012. 3. 27. 신중국은 왜 조어대(釣魚臺)를 국빈관으로 삼았는가 글: 홍촉(洪燭) 필자는 어릴 때 남방에서 지냈다. 머나먼 북경에 두 곳은 나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가져다 두었다: 그중 하나는 중남해(中南海)이고, 다른 하나는 조어대(釣魚臺)이다. 중남해는 말할 것도 없이 조국의 심장이었다. 모주석이 그 곳에 있으면서, 글을 쓰고 나라를 통치했다. .. 2011. 10. 8. 모택동은 이자성에게서 무엇을 배웠는가? 글: 홍촉(洪燭) 장중행(張中行) 노인이 1920년대 후반기에 통현(通縣)에서 사범대학을 다닌 적이 있다. 그 때 북경에 들어가 보았다: "걸어갔던 길은 임대옥(林黛玉)이 걸어서 입경했던 그 길이다. 조양문을 들어가서 계속 서쪽으로 갔다. 더 앞으로 가서, 나는 동사패루(東四牌樓)의 저시대가(猪市大街).. 2009. 10. 19. 장옥봉(張玉鳳)의 눈으로 본 강청(江靑) 글: 섭영렬(葉永烈) 1972년, 모택동이 병으로 쓰러졌을 때, 그의 곁에서 돌봐주는 사람은 수간호사(護士長) 오욱군(吳旭君)을 제외하고는 바로 장옥봉이었다. 장옥봉은 원래 모택동 전용열차의 승무원이었다. 1968년, 24살된 그녀는 철도부에서 일하던 유애민(劉愛民)과 결혼하고, 얼마후, 딸을 낳는다. 홍.. 2009. 3. 3. 모택동 만년의 비밀거주지 : 202와 305 전 중공중앙판공청 경위국 부국장 무건화(武健華)는 모택동의 경위중의 하나이며, 모택동이 서거한 후, 무건화는 명을 받들어 강청 및 모택동의 조카 모원신을 체포함으로써, 사인방시대를 마감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최근 그는 구술로 사인방체포의 전후의 경력을 이야기하면서, 모택동을 위하여 .. 2007. 4. 2. 이전 1 ···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