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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13

남송 "엄예(嚴蘂)사건": 어떻게 주희(朱熹)의 오점이 되었나? 글: 최애역사(最愛歷史) 악비(岳飛)의 아들 악림(岳霖)은 난감한 일에 부닥쳤다. 절동제형(浙東提刑)을 맡자마자, 그는 기녀 한명을 심문해야 했다. 그녀의 이름은 엄예(嚴蘂)이고, 태주(台州) 관기(官妓)의 행수(行首, 花魁, 즉 으뜸기생을 가리킴)였다. 미모와 재주를 겸비했고, 사(詞)도 잘 지었다. 전에 엄에는 태주를 순행하는 주희(朱熹)에 의해 감옥에 갇혔고, 고문을 했다. 이유는 그녀와 태주지주(台州知州) 당중우(唐仲友)간에 부정당한 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악림이 태주에 도착한 후, 엄예는 그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비통한 마음으로 사를 한 수 읊는다: 불시애풍진(不是愛風塵), 풍진을 좋아해서가 아니고 사피전연오(似被前緣誤). 전세의 인연이 잘못된 것일 터 화락화개자유시.. 2022. 7. 19.
송나라때 '문정공(文正公)'의 시호를 받은 인물은? 글: 용가독사(勇哥讀史) 이런 말이 있다: "생진태부(生晋太傅), 사시문정(死諡文正)"(살아서 태부에 오르고, 죽어서 문정의 시호를 받는다). 고대의 무수한 문인들에게 있어서, 사후에 '문정'이라는 시호를 받는 것은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송나라는 문인을 존중한 시기였다. "만반개하품(萬般皆下品) 유유독서고(惟有獨書高)"(모든 것은 하품이고, 오로지 문관이 높다)을 부르짖던 왕조에서 몇명의 대신이 '문정'의 시호를 받았을까? 답안은 9명이다. 평균 34년에 한명씩 배출되었다. "문정"의 시호를 받은 9명의 대신은 사망한 시간을 기준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이방(李昉), 왕단(王旦), 왕증(王曾), 범중엄(范仲淹), 사마광(司馬光), 황중용(黃中庸), 채변(蔡卞), 정거중(鄭居中), 채심(蔡沈) 이.. 2020. 12. 18.
송(宋)은 왜 개봉(開封)을 수도로 삼았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조송(趙宋)은 나라를 세우면서, 후주(後周)의 정치적 유산을 승계했고, 변량(汴梁, 開封)을 수도로 삼는다. 그러나 송태조(宋太祖) 조광윤(趙匡胤)의 마음 속에는 변량을 수도로 삼고 싶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개봉은 "사전지지(四戰之地)"이고, 방어할 험준한 지형.. 2018. 10. 16.
공자(孔子) 소정묘살인사건의 진상 글: 연비(燕飛) 여러분 안녕하세요. 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연비입니다. 고금중외, 인류역사상 수많은 의문사건이 있습니다. 그러나, 공자가 소정묘(少正卯)를 죽였다는 것처럼 애매모호하고 많은 사람들이 논쟁을 벌이는 사건도 아마 드물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쪽은 공자가 사람을 죽였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공자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쌍방 모두 확실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소송은 이천년간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선진(先秦, 진나라이전)문화를 얘기하면서 이 역사적인 미스테리한 사건에 대하여 저는 약간 새로운 발견을 했고, 새로운 견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얘기해볼까 합니다. 먼저, 우리가 간단하게 공자가 .. 2018. 7. 5.
만씨팔룡(萬氏八龍): 문재가법(門材家法), 백불일구(百不一覯) 글: 사우춘(史遇春) 절강(浙江) 은현(鄞縣)의 만리안(萬履安) 선생은 이름이 태(泰)이고 이안은 그의 자(字)이다. 호는 회암(悔庵)이며, 청나라 절동학파(浙東學派) 용상지파(甬上支派)의 창시자이다. 청나라초기에 절강의 학술연구는 아주 번성했다. 전당강(錢塘江)을 경계로 하여, 절.. 2018. 2. 20.
송(宋)나라는 왜 장안(長安)이나 낙양(洛陽)을 수도로 삼지 않았을까? 글: 목도도(木圖圖) 송나라의 건국은 후주(後周)의 정치유산을 승계하여 변량(汴梁)을 수도로 삼는다.다만 송태조 조광윤은 마음 속으로 변량을 도읍으로 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개봉은 "사전지지(四戰之地)"로 방어할 천험의 험지도 없고, 공격을 쉬우나 방어는 어렵기 때문이다.. 2017. 10. 20.
왕양명(王陽明): 삼불후(三不朽) 글: 고성(高成) 중국고대에 어떤 사람이 불후의 인물이었을까? 노(魯)나라의 대부(大夫) 숙손표(叔孫豹)는 "입덕(立德), 입공(立功), 입언(立言)"해야 한다고 하였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중 하나도 하기 힘들다. 위청, 설인귀, 이정, 반초등등의 선현도 겨우 그중 한두개만을 완성했을 뿐.. 2015. 3. 5.
왕양명: 용장오도(龍場悟道) 글: 두문자(杜文子) 왕양명은 명나라의 저명한 철학자이며 사상가이다. 그는 심학(心學)의 집대성자이다. 그의 위대한 학설로 그는 공자, 맹자, 주희와 나란히 '공맹주왕(孔孟朱王)'이라 불린다. 왕양명 학설의 핵심은 3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 "심즉리(心卽理)". 그 뜻은 천하만물의 근원은.. 2014. 8. 27.
모기령(毛奇齡): 학술이 단정하지 못한 대가 글: 주운(周雲) 기실 학술이 단정하지 못한 사람은 현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고이래로 있었다. 일찌기 한나라때, 누군가 가짜경서를 만들거나, 유명학자의 제자를 사칭하며 여기저기 사기를 치고 다녔다. 그후, 이런 기풍은 계속되었다. 청나라때까지도 마찬가지이다. 청나라때의 학.. 2014. 1. 15.
경원당금(慶元黨禁): 남송역사의 대역전 글: 우운국(虞雲國) 순희(淳熙)16년(1189년), 송효종이 아들 송광종에게 황위를 넘겨준다. 이 남송의 제2대황제도 송고종의 뒤를 따라, 제2대 태상황이 된다. 누가 알았으랴 송광종이 즉위한지 3년이 되지 않아 정신병을 앓게 될 줄은. 전제정치체제하에서, 황제가 새옷을 입지 않았다고 말할.. 2014.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