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래(周恩來)와 유소기(劉少奇)의 암중각축(暗中角逐)
글: 고문겸(高文謙) 1966년 8월 5일, 모택동은 에서 이상하리만치 격렬한 어조로 직접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유소기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반동의 부르조아계급입장에 서서, 부르조아계급독재를 실행하여, 프롤레타리아계급의 거대한 문화대혁명운동을 탄압하고, 시비를 전도하고, 흑백을 혼동하며, 혁명파를 토벌하고, 다른 의견을 억누르며 백색공포를 실행하며 스스로 득의하며 부르조아계급의 위풍을 키우고,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뜻을 꺽었다. 어찌 그렇게 독하단 말인가?" 모택동은 글에서 1962년 조정시기의 소위 '우경'문제를 연결시켜, 기세등등하게 유소기와 최종대결을 벌이겠다는 자세를 취한다. 모택동의 이 글은 그후 전체회의에 인쇄되어 배부되어, 회의참석자들이 유소기를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 전체회의는 바로 ..
2023. 5. 18.
정강산시기 주모(朱毛) 충돌: 임표(모택동지지) vs 진의(주덕지지)
글: 옥미수(玉米穗) 1928년 연말, 국민당군은 정강산에 대한 제3차 포위소탕작전을 벌인다. 정강산에서는 당정군긴급회의를 개최하여 대책을 논의한다. 회의에 출석한 사람은 모택동(毛澤東), 주덕(朱德), 진의(陳毅), 홍오군(紅五軍)의 팽덕회(彭德懷), 등대원(滕代遠), 상감변구특위서기(湘贛邊區特委書記) 담진림(譚震林)등이었다. 주덕이 의견을 내놓는다: 정강산은 우리가 1년간 건설한 혁명근거지이다. 쉽게 버릴 수 없다. 다만 만일 모든 홍군이 이 산을 지킨다면 양식이 부족하여 오래 버틸 수 없고, 고사당하는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홍군을 두 부대로 나누어, 홍4군 31단과 홍5군은 모택동, 팽덕회 두 동지가 지휘하여 정강산을 고수하고, 나(주덕)는 홍4군 28단, 29단을 이끌고 포위망을 뚫고 동으로 가..
2022. 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