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덕34

임표(林彪)는 왜 한국전쟁 참전에 반대했을까? 글: 봉황역사(鳳凰歷史) 중공 고위층이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할 때, 모택동(毛澤東)과 임표(林彪)는 견해가 달랐다. 당시, 모택동은 확실히 임표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해 한국전쟁체 참가하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임표는 몸이 좋지 않아서 참전하지 않았고, 나중에 팽덕회(彭德懷)가 총사령관을 맡아서 참전한다. 나중에 이 문제에 대하여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특히 "9.13"사건이후, 대다수의 견해는 이러했다: "임표는 한국전쟁문제에서 소극적이었고, 병을 핑계로 참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의 진상은 그렇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모택동은 동북지방이 전쟁의 위협을 받고 있고, 또한 동북지구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라는 것을 고려하여 당중앙에 동북변방군(東北邊防軍)을 설립할 것을 건의했다. 모택동의 .. 2022. 10. 26.
"주덕(朱德)의 편담(扁擔, 멜대)"과 "임표(林彪)의 편담" 글: 임휘(林輝) 1950년대초, 토비(土匪)출신의 중공 전 군사지도자 주덕의 간고(艱苦)하고, 소박한 정신을 칭송하는 글인 이 소학교 교재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 글은 조작혐의가 있어 작년에 교과서에서 삭제된다. 더욱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이 조작혐의가 있는 글이 1967년 2월 정치적 원인으로 주인공을 "임표"로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몇년 후 임표사건이 발생하고나서, 주인공은 다시 원래대로 주덕으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주석의 편담"도 날조된 것이 아닌가? 먼저 이 정치적 풍운변화에 흔들린 글의 내용을 보기로 하자. 대체적인 내용은 이러하다: 1928년 주덕과 모택동은 폭동에 실패하여 도망쳐서 정강산에서 만난 후, 먹을 것이 부족하여, 사람을 5.. 2022. 9. 5.
임표가 정강산에서 발탁, 중용된 경위는? 글: 옥미수(玉米穗) 임표는 주덕이 부대를 이끌고 정강산에 올라 모택동과 합칠 때, 제28단 1영 3연의 연장(連長)이었다. 28단은 주덕의 주력단이고, 단장은 왕이탁(王爾琢)이다. 1영(營)의 영장은 주자곤(朱子昆, 그는 나중에 환남사변(皖南事變)때 항영(項英)과 함께 피살된다)이고, 2영의 영장은 원숭전(袁崇全)이었다. 2영 영장인 원숭전은 나중에 홍군을 떠나 국민당군에 투항하려 했다. 단장 왕이탁이 그를 뒤쫓아갔다가 원숭전의 총에 죽고 만다. 28단은 하루아침에 단장과 2영의 영장을 잃었다. 임표는 이런 상황하에서 연장에서 먼저 영장으로 승진하고, 다시 얼마 후 단장까지 오른다. 이를 통해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공초(龔楚)의 회고에 따르면 구체적인 경위는 개략 다음과 같다: 1928년 7월, 먼저.. 2022. 7. 28.
정강산시기 주모(朱毛) 충돌: 임표(모택동지지) vs 진의(주덕지지) 글: 옥미수(玉米穗) 1928년 연말, 국민당군은 정강산에 대한 제3차 포위소탕작전을 벌인다. 정강산에서는 당정군긴급회의를 개최하여 대책을 논의한다. 회의에 출석한 사람은 모택동(毛澤東), 주덕(朱德), 진의(陳毅), 홍오군(紅五軍)의 팽덕회(彭德懷), 등대원(滕代遠), 상감변구특위서기(湘贛邊區特委書記) 담진림(譚震林)등이었다. 주덕이 의견을 내놓는다: 정강산은 우리가 1년간 건설한 혁명근거지이다. 쉽게 버릴 수 없다. 다만 만일 모든 홍군이 이 산을 지킨다면 양식이 부족하여 오래 버틸 수 없고, 고사당하는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홍군을 두 부대로 나누어, 홍4군 31단과 홍5군은 모택동, 팽덕회 두 동지가 지휘하여 정강산을 고수하고, 나(주덕)는 홍4군 28단, 29단을 이끌고 포위망을 뚫고 동으로 가.. 2022. 7. 28.
정강산(井岡山)시기 주모(朱毛) 충돌: 원인은? 글: 옥미수(玉米穗) 주덕(朱德)이 군대를 이끌고 처음 정강산에 들어왔을 때, 모택동과의 사이이 적제 않은 이견과 충돌이 있었다. 이는 많은 당사자료에 언급되고 쓰여 있다. 다만 기술방법은 비교적 우회적이다. 어떤 경우는 간략히 언급하며 지나가며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중공초기 고위군사장군인 공초(龔楚)가 쓴 에는 주덕과 모택동간의 충돌을 일으킨 구체적인 사건과 원인에 대하여 상세하게 회고하고 기술하였다. 공초는 또한 그 본인이 당시 주덕과 모택동 두 사람의 성격차이 및 능력등 방면에서의 자신의 견해도 써놓았다. 공초의 기술에 따르면, 1928년 5월부터 10월까지, 주모간에 몇건의 유쾌하지 않은 사건이 벌어진다. 첫째, 6월하순, 28단, 29단(주덕이 이끌고 정강산에 들어간 부대)은.. 2022. 7. 27.
무정(武亭): 팔로군 총사령부의 포병단장 글: 대웅역사관(大熊歷史觀) 1937년 8월 25일 홍군 총사령부는 명령을 내려 홍1방면군, 홍2방면군, 홍4방면군 및 섬북홍군(陝北紅軍)을 개편하여 국민혁명군 제8로군(약칭 '팔로군')으로 개편했다. 이전의 홍군 총사령관 주덕(朱德)이 팔로군의 총지휘관이 되고, 부총지휘관은 팽덕회(彭德懷)가 맡았으며, 참모장은 섭검영(葉劍英), 부참모장은 좌권(左權)이 맡는다. 산하에는 120사(사단직속부대 교도단), 115사(사단직속부대 독립단), 129사(사단직속부대 교도단)이 있었으며, 매 사단은 2개의 여단을 지휘하고, 매 여단은 다시 산하에 두 개의 단을 지휘했다. 이것이 바로 항전시기 홍군이 팔로군으로 막 개편된 후의 기본편제이다. 당연히 3개사단의 산하에 있는 12개의 주력단을 제외하고 팔로군 총사령부는 .. 2022.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