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좌광두7

동림당(東林黨) 분석: 그들은 왜 실패했는가? 글: 고금지모(古今智謀) 황제가 조정대권을 과감하게 환관에게 넘겨주는데 대하여 가장 불만이 컸던 것은 문관집단이다. 문관집단의 이런 생각은 좋게 보면 그들의 모두 성현의 책을 읽은 사람들이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인생이상을 지니고 있으며, '군주를 요순으로 만들겠다'는 .. 2019. 1. 13.
완대성(阮大鋮): '통재(通才)'와 '간신(奸臣)'을 겸한 소인(小人) 글: 청림지청(靑林知靑) 추사여방초(秋思如芳草) 춘래일일생(春來日日生) 이것은 어렸을 때 외웠던 몇 개의 시중 하나이다. 당시에 비해 손색이 없다고 여겨져서 아주 좋아했었다. 그러나 이 시의 작자를 얘기하려면 약간 쑥스러워진다. 그는 완대성이라는 사람인데, 역사상 유명한 간신.. 2018. 12. 28.
남명(南明)이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글: 한정우기(閑情偶記) <도화선(桃花扇)>에서 공삼임(孔尙任)은 마사영(馬士英)의 입을 빌어 아주 정확한 시세판단을 한 바 있다: "나라에 변고가 있어야, 우리같은 자들이 뜻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일찌기 여러 사적(史籍)을 살펴봤다. 역사에 대한 인식과 분석이 어떤 때는 희극가가.. 2018. 7. 14.
이궁안(移宮案): 동림당이 선제공격으로 승리를 거두다 글: 정만군(程萬軍) 1620년 9월 26일, 태창제(泰昌帝) 주상락(朱常洛)이 돌연 사망한다. 대명의 후임황제문제는 다시 문제가 된다. 이때의 대명왕조에는 황태자(皇太子)가 없었고, 황태손(皇太孫)이 있었다. 그는 바로 주상락의 장남인 주유교(朱由校)이다. 그는 할아버지 만력제(萬歷帝)가 .. 2018. 3. 5.
명나라말기 동림당(東林黨)은 국가를 위하여 무슨 일을 했는가? 글: 정만군(程萬軍) 천계원년부터 천계4년까지는 동림당의 휘황했던 시절이다. 명사(明史)에는 이 시기를 묘사하는데 네 글자를 썼다: 동림독성(東林獨盛). 이때 명나라의 정계, 내각, 중앙6부등 핵심부서는 모조리 동림당인들이 차지했다. 명실상부한 "동림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요즘 .. 2016. 4. 9.
명말당쟁의 시비곡직 글: 양청균(楊淸筠) 동림당과 엄당의 투쟁은 천계제때 엄당의 승리로 끝난다. 비록 동림당이 천계제의 즉위에 거대한 공을 세웠지만, '삼대안(三大案)'을 통해서 기회를 만들어 주었지만, 천계제는 확실히 이들 재야에서 성장한 선비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충현이 이끄는 엄당을.. 2014. 12. 12.
동림당점장록(東林黨點將錄) <동림당점장록>은 천계5년(1625년), 위충현(魏忠賢)의 일당인 좌부도어사(左副都御史) 왕소휘(王紹徽)가 <수호전>의 방식을 모방하는 방식으로, 동림당 108명을 모아서 <동림점장록>을 만든다. <동림점장록>의 판본은 아주 많고, 다음은 진상에 가장 접근하는 버전이다. 명.. 2014.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