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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설근22

조설근(曹雪芹)의 마지막 거처는 어디인가? 글: 정계진(丁啓陣) 지금까지, 조설근의 마지막 거주지에 대하여는 최소한 아래의 6가지 학설이 있다. 1. 육랑장 바깥의 소관제묘; 2. 서교 건예영; 3. 홍산구에서 온천진으로 가는 길의 상황기영 부근; 4. 남신장 행석구, 열무루와 보승사의 사이; 5. 온천진 백가동촌, 소석교 부근; 6. 정백기.. 2013. 8. 4.
조설근이 홍루몽을 썼다는 것이 왜 의심을 받는가? 글: 정계진(丁啓陣) 왜 <홍루몽>과 같은 위대한 작품의 작가가 누구인지를 문제로 삼을까? 첫째, 후세의 독자들의 "믿기 어렵다"는 심리이다. 하루살이는 계절을 모른다. 범인은 천재의 재능과 학식을 이해할 수 없다. 특별히 위대한 작품의 앞에서 후세의 독자들은 쉽게 이런 의문을 .. 2013. 5. 22.
대청왕조의 제일재자(第一才子)는? 글: 양영춘(梁迎春) 역대왕조에는 모두 재자(才子)들이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대청왕조도 마찬가지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는 나란싱더(納蘭性德), 기효람(紀曉嵐), 주어황(周漁湟)과 조설근(曹雪芹)이 있다. 이 봉모인각(鳳毛麟角)의 네명중 누가 대청왕조의 .. 2012. 8. 15.
대운하의 죽음 글: 홍촉(洪燭) 1980년대, TV다큐멘터리중에 <화설운하(話說運河)>라는 것이 있었는데, 옛날을 그리워하는 필치로 겅항대운하(京杭大運河)의 성쇠와 시말을 그렸다. 촬영팀이 대운하일선을 직접 다녀보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옛날이라면 그렇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신발이 닳아 없.. 2012. 3. 18.
팔기자제는 어떻게 무기력해졌는가? 글: 홍촉(洪燭) 위풍당당했던 팔기(八旗)는 원래 누르하치가 자신의 손으로 만든 군사, 정치, 생산이 삼위일체된 조직이었다. 초기에는 황(黃), 백(白), 홍(紅), 남(藍)의 4기(四旗)였는데, 나중에 사기가 증편되었다 그리하여 원래의 사기("정기(整旗)" 혹은 "정기(正旗)"라고 칭함)의 표지에 가장자리에 색.. 2010. 3. 4.
<<홍루몽>>의 작자는 '조설근'이 아니다. 글: 황수우(黃守愚) <<홍루몽(紅樓夢)>>의 진정한 작자가 누구인가? 이제 고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홍루몽>>의 제1회에는 이런 말이 있다: "조설근(曹雪芹)이 일찌기 도홍헌(悼紅軒)에서 십년동안 피열(披閱)하면서, 5번 덧붙이고 빼며(增刪), 목록을 편찬하고, 장회(章回)를 나누었다.. 2010. 2. 2.
지연재(脂硯齋)의 신분 글: 주령(周嶺) <<지연재중평석두기(脂硯齋重評石頭記)>>(홍루몽의 또 다른 판본)에는 대량의 지비(脂批, 지연재가 남긴 비평글)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지비에서는 지연재와 조설근(曹雪芹), 지연재와 홍루몽의 인물,사건간의 관계정보를 알 수 있고, 이들 정보는 홍루몽을 연구함.. 2008. 5. 6.
홍루몽의 최초 작자는 조설근인가? 작자: 연지풍(燕之楓) 홍루몽(紅樓夢)의 최초작가에 대하여, 홍학계에서는 논쟁이 매우 거세다. 청나라말기부터 논쟁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약 100여년간 계속되는 것이다. 홍루몽의 최초작가가 조설근(曹雪芹)이 아니라는 견해를 취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두가지 측면의 이유를 들고 있다. .. 2006. 12. 7.
홍루몽연구와 거촉(擧燭) 작자: 관하몽(關河夢) 오늘, 옛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이것저것 얘기하다 홍루몽을 얘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심무(劉心武)를 거론했다. 그는 나에게 <<유심무게밀홍루몽(유심무의 홍루몽 수수께끼풀이)>>를 읽어보라고 극력 추천했다. 전화를 끊고나서, 나는 오랫동안 마음을 안정시킬 수 .. 2006. 11. 4.
홍루몽의 대관원(大觀園)은 어디 있는가? 홍루몽의 연구자들에게 있어서 대관원의 모델이 된 건물의 소재지가 어디인지에 대하여도 학설이 많이 나뉘고 있다. 크게 나누면 북경이라는 설과 남경(또는 그 주변)이라는 설이 있고, 북경이라는 설에는 공왕부(恭王府)라는 설이 대표적이고 남경이라는 설에는 수원(隨園)이라는 설이 대표적이다. .. 2006.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