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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윤69

자기국(自杞國): 신비한 소국, 몽골과 6년간이나 싸우다. 글: 식당(食堂) 1 건덕3년(965년) 정월 십구일, 송군(宋軍)의 총사령관 왕전빈(王全斌)은 군대를 이끌고 후촉(後蜀)을 멸망시킨다. 그후 후촉 남쪽의 지도를 개봉으로 보내어, 송태조(宋太祖) 조광윤(趙匡胤)에게 계속 남쪽으로 진격하여 대리국(大理國)까지 정복할지를 물어본다. 조광윤은 자신의 손에 익은 옥부(玉斧)로 지도에 대도하(大渡河)를 따라 선을 긋는다: 그리고 말한다: "이 밖은 우리땅이 아니다!" 그리하여 대리국과는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 조광윤이 대리국을 건드리지 않은 것은 이유가 있다. 첫째, 남조(南詔)의 오만(烏蠻), 백만(白蠻)은 흉악했다. 당나라때 남조와 싸우다가 국력이 고갈되어 망한 바 있다. 그리고 송나라가 후촉을 멸망시킨 후에도 사천에서 반란이 크게 일어나 근 2년의 시간을 .. 2022. 5. 26.
송진종(宋眞宗) 조항(趙恒): 송태종의 셋째아들인 그는 어떻게 후계자가 되었는가? 글: 노황설사(老黃說史) 송태종 조광의(趙光義)에게는 9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는 왜 황장자에게 황위를 물려주지 않고, 황삼자에게 넘겨주었을까? 황삼자 조항은 조광의의 장자도 아니고, 황후소생도 아닌데 어떻게 하여 황위를 물려받을 수 있었을까? 송태조 개보9년(976년) 십월 십구일 밤, 송태조 조광윤(趙匡胤)은 그의 동생 조광의를 불러 술을 마시고, 함께 궁안에서 잠든다. 다음 날 새벽(양력 11월 14일), 조광윤은 만세전에서 붕어하니 향년 50세이다. 송태조가 붕어할 때, 효장황후는 급히 환관 왕계은(王繼恩)으로 하여금 황자 조덕방(趙德芳)을 입궁시켜 후사를 처리하게 한다. 그러나 왕계은은 곧바로 남부로 가서 조광의에게 알리고, 조광의가 급히 입궁하여 등극하니, 그가 송태종이다. 조광윤의 죽음과 조.. 2021. 4. 13.
역사상의 "태종(太宗)": 모두 "내로부정(來路不正)"한 황제들이다 글: 청풍명월소요객(淸風明月逍遙客) 중국 수천년의 왕조사에서 묘호(廟號)는 아주 연구할 가치가 있는 문제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묘호"와 "시호(諡號)"는 모두 어느 정도에서 황제일생의 공과시비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다만 후세의 황제는 시호의 수가 늘어나서, 자손들이 조상을 위하여 시호를 정할 때 어떻게 평가했는지 알기 어려워졌다. 다만 '묘호'는 '시호'를 대체하여 황제에 대한 개관정론(蓋官定論)의 중요한 근거이다. 가장 원시적인 묘호는 상(商)나라때 건립된다. 당시에는 단지, "태(太)", "고(高)", "세(世)", "중(中)"의 4종이었다. 그리고, "조유공이종유덕(祖有功而宗有德)", 조는 공이 있는 황제에게, 종은 덕이 있는 황제에게 붙인다는 기준으로 조종의 묘호를 정했다. 나중에 왕조가.. 2020. 10. 26.
북송황제의 장례과정 글: 시습사사(時拾史事) 고대에 황제가 붕어하면, 왕왕 호화스럽고 융중한 장례식을 치른다. 예를 들어, 진시황, 한무제등등이 모두 그러했다. 그렇다면 송나라의 황제는 예외였을까" 당연히, 아니었다. 관가(官家, 황제)는 통치집단의 1인자이다. 중국에서 가장 권력이 있는 사람이다. 사후에 거창한 장례식도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황제의 지위를 체현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북송황제의 장례과장을 돌아보고, 도대체 어떤 절차를 거쳤고, 얼마나 복잡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유조(遺詔)를 선독(宣讀)하다 정상적이라면 황제가 붕어한 후 반드시 즉시 신황제를 확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국을 주재할 사람이 없게 된다. 구가기구도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럼 도대체 누가 황제에 올라야 하는가? 바로 이때 유조의.. 2020. 8. 23.
"연운십육주(燕雲十六州)"의 지리적위치는 얼마나 중요한가? 글: 지역사(知歷史) '연운십육주'를 얘기하자면, 그것이 거란의 야율덕광(耶律德光)에게 할양되고난 후, 이후의 4백년간 중원한족왕조의 운명을 직접적으로 바꾸었다고 할 수 있다. '연운십육주'는 말그대로 16개의 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유주(幽州), 계주(薊州), 영주(瀛州), 탁주(涿州), 막주(莫州), 단주(檀州), 순주(順州), 신주(新州), 규주(嬀州), 유주(儒州), 무주(武州), 운주(雲州), 응주(應州), 환주(寰州), 삭주(朔州), 울주(蔚州)이다. 비록 겨우 16개의 주이긴 하지만, 는 이 땅에 대하여 아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유, 연의 여러 주는 기후와 지형으로 한족과 외족을 나누고 있어, 장정 1명이 관문을 막으면 만명의 적도 막아낼 수있다"(幽燕諸州, 蓋天造地設以藩漢之限, 誠一.. 2020. 5. 18.
진양성(晋陽城): 중국에서 풍수가 가장 뛰어난 도시 글: 천지사화(天地史話) 중국에 이런 용흥지성(龍興之城, 개국황제가 태어난 곳)이 있다. 춘추시기에 성이 만들어진 후, 여러 황제를 배출했다. 그러나 송나라에 이르러 철저히 파괴된다. 춘추말기, 진(晋)나라의 대경(大卿) 조간자(趙簡子)의 가신 동안(董安)은 태원분지의 북단 진수(晋水.. 2019. 1. 30.
조광윤의 죽음과 관련된 2명의 소인물 글: 백가잡평(百家雜評) 중국역사상의 풍운인물로서 조광윤의 일생은 전설로 충만하다. 그는 여러가지 수수께끼를 남겼는데, 그중 가장 큰 수수께끼는 바로 그의 죽음이다. 976년 십월 십구일 밤, 조광윤은 동생 조광의를 불러서 술을 마신다. 다음날 새벽에 조광윤이 돌연사하니 향년 50.. 2019. 1. 28.
송(宋)과 요(遼)는 왜 통혼하지 않았을까? 글: 니퇴간객(泥腿看客) 중국고대의 중원왕조는 역대이래로 번속국과 통혼, 화친하는 관습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화친을 가장 많이 한 황조는 한, 당이다. 예를 들어 한나라때, 유방이 종실녀를 휴노에 시집보낸 것부터 시작하여, 나중에 한무제때도 다시 세군공주, 해우공주를 오.. 2019. 1. 16.
역사에 기록된 3번의 괄골요상(刮骨療傷) 글: 독사방(讀史坊) <삼국연의>에 관우의 괄골요상에 대한 장면이 나온다. 우리에게 관우는 진짜 사나이라는 이미지를 주었다. 화타는 관우를 위해 뼈를 긁어내고, 관우는 한편으로 술을 마시면서 한편으로 바둑을 두었다. 마치 아픔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피가 한 바가.. 2019. 1. 9.
명나라때의 비구니 글: 장계합(張繼合) 중국역사에 조금 밝은 사람이라면 분명히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장당난한(贓唐爛漢)" 확실히 행복한 생활을 추구하는 측면에서 이 두 왕조는 통이 컸다. 왕왕 외래인구도 받아들여서 같이 자신의 생활을 만들어갔다. 송나라때는 조광윤의 시야가 좁았고 문인기질을.. 2019.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