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고40 진시황사후 호해(胡亥), 조고(趙高), 자영(子婴)간의 권력투쟁 글: 븍진사해(北辰四海) 진이세 호해는 거대한 역사의 쟁의중에 황위를 승계한다. 그리고 잔혹한 궁중투쟁을 겪고, 다시 격렬한 정치변혁이 일어난다. 또한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군을 시급히 대처해야 했다. 그래도 비교적 순조로웠다. 문관관료집단의 영수인 이사(李斯), 풍거질(馮去疾).. 2018. 8. 4. 공자 부소(扶蘇)는 왜 거짓조서를 받고 자살했을까? 글: 자요(子繇) 기원전210년, 진시황은 순유 도중에 급사한다. 사건은 너무나 돌연하게 일어났고, 나쁜 마음을 품고 있던 조고(趙高)에게는 다시 없을 기회를 가져다 준다. 조고는 먼저 이사(李斯)와 함께 진시황이 붕어했다는 소식을 감춘다. 이어서 진시황이 부소에게 보내는 조서를 위조.. 2018. 6. 26. 진시황릉의 허실(10): 여산북록에는 진시황이 묻혀 있지 않다. 글: 진경원(陳景元) 숙후가 사망하고, 유명한 조무령왕이 즉위한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상산에 자신의 능묘를 '예수'하기 시작한다. <사기.조세가>의 기록에 따르면, 조무령왕은 "3년(기원전323년)부터 능묘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기.집해>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능묘의 위치.. 2018. 2. 7. 진시황릉의 허실(9): 진시황은 현지에 매장하는 것이 현명한 조치이다. 글: 진경원(陳景元) 진시황이 만일 함양에서 죽었다면, 역대제왕이 경성에서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조정에서 항상 마련해둔 냉장된 보관장소가 있고, 궁내에는 장례활동을 치르는데 필요한 각종 도구가 충분히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비불발상'을 할 때, 궁문을 걸어잠그고, .. 2018. 2. 7. 진시황릉의 허실(8): 비불발상(秘不發喪)은 조건이 필요하다. 글: 진경원(陳景元)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진시황응 여산에 묻었다(葬始皇驪山)"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황제가 붕어하니, 교산에 묻었다(黃帝崩, 葬橋山)"이라는 기록도 있다. 섬서성의 황제릉은 비록 매년 대형제사활동을 벌이지만, 사람들은 그 무덤의 진실성에 대하여 계속하여.. 2018. 2. 7. 진시황이 죽기전에 나타난 3대이상징조(三大異兆) 글: 촉인삼척안(蜀人三隻眼) 중국역사상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은 전설적인 색채가 짙다. 6국을 소멸시키고 중국역사상 최초의 대통일을 완성한다. 필생동안 고도의 권력집중을 추구했던 진시황에게는 더 걱정할 일이 없었다. 대통일후, 나이가 거의 반백이 된 진시황은 어떻게 하여야 장.. 2016. 7. 17. 이전 1 2 3 4 5 ···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