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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고40

진시황릉의 허실(8): 비불발상(秘不發喪)은 조건이 필요하다. 글: 진경원(陳景元)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진시황응 여산에 묻었다(葬始皇驪山)"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황제가 붕어하니, 교산에 묻었다(黃帝崩, 葬橋山)"이라는 기록도 있다. 섬서성의 황제릉은 비록 매년 대형제사활동을 벌이지만, 사람들은 그 무덤의 진실성에 대하여 계속하여.. 2018. 2. 7.
진시황이 죽기전에 나타난 3대이상징조(三大異兆) 글: 촉인삼척안(蜀人三隻眼) 중국역사상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은 전설적인 색채가 짙다. 6국을 소멸시키고 중국역사상 최초의 대통일을 완성한다. 필생동안 고도의 권력집중을 추구했던 진시황에게는 더 걱정할 일이 없었다. 대통일후, 나이가 거의 반백이 된 진시황은 어떻게 하여야 장.. 2016. 7. 17.
진시황은 왜 말년에 스스로를 "짐(朕)"이라 칭하지 않았는가? 글: 유병광(劉秉光) 진(秦)나라가 전국을 통일하기 이전에 "짐"은 1인칭대명사로 "나"라는 뜻이었다. 남녀노소, 존비를 불문하고 모두 자신을 '짐'이라 칭할 수 있었다. 기원전221년, 진나라가 육국을 멸하고, 진왕 영정은 천하를 통일한 지고무상의 군주가 된다. 영정은 이렇게 생각한다. 자.. 2015. 12. 29.
[황자쟁위술] 광결붕당술(廣結朋黨術) 교장외위패(交將外圍牌) 병법에 이런 말이 있다: “장수는 밖에 나가 있으면, 군왕의 명도 받들지 않을 수 있다(將在外而君命有所不受).” 이는 봉건시대에 지방에 주둔하며 병사를 거느리는 장수의 권한은 공공연히 황제의 명에 항거할 수 있을 정도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당나라때가 최전성기인데, 그때의 지.. 2015. 8. 25.
[황자쟁위술] 부저추신술(釜底推薪術) – 알적장각패(挖敵墻脚牌) 옛말에 “지엽(枝葉)을 흔들려면 뿌리를 흔들어야 하고, 지엽을 튼튼히 하려면 뿌리를 튼튼히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기반을 튼튼히 다져야 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경쟁자를 무너뜨리려면 그의 기반을 무너뜨리면 된다. 즉, 건물을 무너뜨리려면 벽 아래를 파.. 2015. 8. 4.
[황자쟁위술] 투량환주술(偸梁換柱術) – 교조모위패(矯詔謀位牌) <사기.진시황본기>에 보면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신하들에게 제도를 정하게 명하고, 승상 위관, 어사대부 풍겁, 정위 이사는 백관들과 협의한 후, “….황제의 명은 제(制)로, 황제의 영은 조(詔)로 한다.”는 원칙을 정한다. 그 후 황제의 영은 “조서(詔書)”라 부르고, 특히 그 .. 2015. 7. 27.
이보국(李輔國): 환관으로 재상에 오른 인물 글: 사종의(史宗義) 중국역사상, 환관의 신분으로 재상에 오른 인물은 딱 2명이다. 한 명은 지록위마의 조고(趙高)이고 다른 한명은 이보국(李輔國)이다. 조고는 음흠하고 독랄하여 역사에 악명을 남겼다. 이보국은 조고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그는 아부를 잘하여, 배우지 않고.. 2015. 1. 1.
이사(李斯)는 얼마나 비참하게 죽었는가? 글: 위석아(危石兒) 이사는 전국시대 말기에 태어났다. 그는 이름없는 하급관리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탁월한 정치적 재능과 식견을 가지고, 한걸음 한걸음 진나라 승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유명'한 환관 조고에 의하여 모반죄로 처형당한다. 처형은 "구오형(具五刑).. 2014. 10. 2.
중국역사상 화살에 맞아죽은 4명의 황제 글: 진령신(陳令申) 사람들에게 무한한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중국황제왕조는 2000여년의 비바람을 거치면서 300여명의 황제를 배출했다. 그중 비정상적 사망을 맞이한 황제도 적지 않다. 진시황은 조고에게 죽임을 당했고, 당태종 이세민은 술사들이 만든 '선단'을 과다복용하다가 죽었다... 2014. 4. 4.
진왕(秦王) 자영(子嬰)은 어떤 사람인가? 글: 이치아(李治亞) 망국지군(亡國之君)을 얘기할 때면 대부분의 사람은 이를 갈면서, 그런 사람은 온갖 나쁜 짓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나라의 망국지군은 예외인 것처럼 보인다. 그는 인애(仁愛)하고 절제(節制)하였으며, 총명하고 근신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망국은 사람들로 .. 2014.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