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목13 역사는 한 민족의 영혼이다. 글: 부국용(傅國涌) 1. "역사는 아무나 마음대로 꾸밀 수 있는 어린 계집아이이다" "역사는 아무나 마음대로 꾸밀 수 있는 어린 계집아이이다". 지금까지 이미 60여년간 유행한 이 말은 아직도 전혀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호적(胡適)이 정말 이 말을 했다고 믿고 있다. .. 2015. 2. 10. 황건적의 난 이후의 5년(1): 의의 글: 낙극(洛克) 장각(張角)이 이끄는 '황건적의 난"은 난을 일으킨 해에 동한정권에 의하여 진압된다. 이 점에 있어서 이전 두 왕조말기의 농민의거와는 확실히 다르다. 진말과 서한말기(정확히 말하면 왕망의 신말기)의 농민의거는 모두 난이 일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의 정권이 .. 2014. 12. 12. 중국고대에 "농민의 난"은 존재하지 않았다. 글: 양진도(楊津濤) 사학계에서는 "농민의거"의 성격규정과 평가에 대하여 이견이 존재해 왔다. 절대다수의 사람은 "농민의거"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진승, 유방, 주원장, 이자성의 이야기도 귀에 익숙할 것이다. 1949년이후의 중국통사에서 "농민의거", "농민혁명"의 내용은 오랫.. 2013. 12. 22. 북경대학은 "세 마리 토끼"때문에 유명해졌다. 글: 유계흥(劉繼興) 호적(胡適)은 농담처럼 이렇게 말할 바 있다: "북대는 세 마리 토끼때문에 유명해졌다" 이 "세마리 토끼"는 각각 채원배(蔡元培), 진독수(陳獨秀), 호적이다. 세 사람은 모두 토끼띠이다. 채원배는 동치 정묘년(1867년)생이고, 진독수는 광서 기묘년(1879년)생이며, 호적은 .. 2013. 11. 27. 두가지 유행: 어광(語狂)과 어장(語障) 글: 유재복(劉再復) <아주주간> 2001년 12월 16일자 10년전, 필자는 <어광(語狂)>이라는 글을 써서 <명보월간>에 발표했다. 비판한 것은 문화대혁명 기간중의 "일만번 발로 밟아서 영원히 다시 되살아나지 못하게 하자"는 등의 큰소리(大話), 미친소리(狂話)들이었다. 작년 가오싱.. 2013. 11. 24. 태평천국 금전의거(金田起義)의 몽매와 황당 글: 여쟁(呂峥) 과거에 연속 낙방한 홍수전이 '독존상제'설을 창조하다. 도광23년, 1843년, 광주의 길거리에 영남인의 무리중에 군계일학의 남자(키가 약 1.78미터)가 국자감 밖에 붙어 있는 방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누런 얼굴은 음울했다.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눈이 쑥 들어간 이 30세의 .. 2013. 11. 10.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