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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40

적벽대전에서 승리한 후 왜 손권은 조조에게 투항했는가?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적벽대전 이전에, 동오의 대부분 관리는 모두 손권에게 조조에 투항하라고 권했다. 왜냐하면 당시 쌍방의 역량이건 전쟁형세이건 모두 조조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다만, 손권은 노숙의 건의하에, 조조에 맞서싸우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주유의 주장하에 동오.. 2016. 1. 19.
[황자쟁위술] 양차동풍술(亮借東風術) 양자입승패(養子入承牌) 재첨편외 <삼국연의>의 적벽대전때 ‘만사구비, 지흠동풍(萬事俱備, 只欠東風)’의 상황에서 제갈량이 차동풍(借東風)한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다. 특히 무슨 일을 이루기 위하여 다른 조건은 갖추어져 있는데 중요한 한 가지가 빠진 경우가 있다. 그럴 때, 그 빠진 것을 채워주는 것이 왕왕 우.. 2015. 10. 11.
중국고대의 5대전염병 글: 예방육(倪方六) 봄은 만물이 소생하고, 각종 유행병이 빈발하는 계절이다. 얼마전에 국가위생계획생육위, 전국애위회는 통지를 보내어 전국각지에서 전염병예방을 잘하도록 요구한다. 중국고대에 '유행병'이라는 단어는 없었지만, 그런 의학개념은 존재했다. 그것이 바로 "역(疫)"이.. 2015. 5. 30.
서황(徐晃): 관우이후의 삼국제일명장 글: 불감왕언(不敢枉言) 관우는 유비와 헤어진 후 조조에 의하여 토산에 포위된다. 가솔을 보호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약심사(約三事)"를 하고, "항한불항조(降漢不降曹)"를 투항조건으로 하여 투항한다. 이 일은 관우의 충성과 의기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조조의 도량을 반영한다. 기.. 2015. 2. 23.
손권이 유비에게 "차형주(借荊州)"해준 것은 부득이한 조치였다. 글: 양민복(楊民僕) 역사상 유비는 '차형주'하였고, 한번 빌린 후에 돌려주지 않은 철두철미한 '무뢰한'이라는 견해가 있다. 손권은 부인도 주고 병사도 잃었으며, 호의를 베풀었지만 보답은 받지 못하였다고 하여 사람의 동정을 받는다. 다만 문제는 손권과 같이 총명하기 그지없는 사람.. 2015. 2. 10.
황건적의 난 이후의 5년(1): 의의 글: 낙극(洛克) 장각(張角)이 이끄는 '황건적의 난"은 난을 일으킨 해에 동한정권에 의하여 진압된다. 이 점에 있어서 이전 두 왕조말기의 농민의거와는 확실히 다르다. 진말과 서한말기(정확히 말하면 왕망의 신말기)의 농민의거는 모두 난이 일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의 정권이 .. 2014. 1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