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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의학

중국고대의 5대전염병

by 중은우시 2015. 5. 30.

글: 예방육(倪方六)


봄은 만물이 소생하고, 각종 유행병이 빈발하는 계절이다. 얼마전에 국가위생계획생육위, 전국애위회는 통지를 보내어 전국각지에서 전염병예방을 잘하도록 요구한다. 중국고대에 '유행병'이라는 단어는 없었지만, 그런 의학개념은 존재했다. 그것이 바로 "역(疫)"이다. 동한의 허신(許愼)이 쓴 <설문해자>에는 "민개질야(民皆疾也)"라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라는 뜻이다. 만일 대규모로 발발한다면, "대역(大疫)"이라고 부른다. 상한(傷寒), 장기(瘴氣), 전시(傳屍), 여풍(癘風), 노창(虜瘡)등 5대전염병은 고인들에게 침중한 재난을 가져다 주었고,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다.....


1. 상한: 고대에 가장 보편적인 전염병


유행병의 현상에 대하여 고대인들도 일찌감치 알았다. <주례.천관>에는 이렇게 말한다: "사시(四時)에 모두 여질(癘疾)이 있다. 봄에는 소수질(痟首疾)이 있고, 여름에는 양개질(痒疥疾)이 있고, 가을애는 학한질(瘧寒疾)이 있고, 겨울에는 수상기질(嗽上氣疾)이 있다." 봄의 '소수질'은 무슨 병인가? 글자만 보면 '두통'이다.

청나라말기의 국학대사 손이양은 <주례.정의>에서 이렇게 썼다: "봄에는 기운이 불화하여, 백성들이 그 기운은 느껴, 머리가 아픈 것이다." 손씨의 견해를 보면 봄날은 기온이 안정적이지 못하여, 금방 춥고 금방 더워서 쉽게 머리가 아프로 열이 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고대 의학에서 말하는 '상한'이다. 고대에 '상한'이라는 개념은 아주 광범위하여, 모든 외부에서 감염되는 질명을 '상한'이라 불렀다.


중국역사상 최초로 상한이 대유행한 것은 동한(東漢)때이다. 세계최초의 임상의학저작인 <상한잡병론>은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 진다. 작자인 장중경(張仲景)은 당시의 명의이고, 그의 종족은 원래 200여명이었는데, 건안원년(196년)이후 10년도 되지 않아 그중 2/3가 죽는다. 그중 70%는 상한으로 사망한다.


<삼국지.위지.무제기>에 따르면, 조위대군은 일찌기 상한때문에 곤란을 겪는다. 조조는 건안13년(208년) 칠월 남정을 개시하여 저명한 '적벽대전'을 벌인다. 십이월이 되자, 조조의 대군에 돌연 "대역(大疫)이 발생하여 이사(吏士)가 많이 죽었다." 실제로 조조군에 덮친 전염병은 바로 겨울/봄에 빈빌하는 '상한'이었다.


상한이 대규모사망을 불러온 사건은 13세기 상반기에 일어난다. <금사.애종본기상>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천흥원년(1232년), "변경에 대역이 발생하여, 오십일만에 죽은 자가 구십여만명에 이른다." 변경은 지금의 하남성 개봉시이다. 두 달도 되지 않아 근 백만명이 죽은 것이다. 현대학자는 당시의 의학자 이고(李杲)의 <내외상한판감론>에서 기록한 것을 참조하여 이번 대역을 '상한역'이라고 보고 있다.


2. 장기: 고대에 가장 흉맹한 전염병


고대 전염병중에서 장기는 아마도 고대인들의 눈에 가장 무섭고 흉맹한 것이었을 것이다. 장기는 도대체 어떤 전염병일까? 기실 그것은 바로 학질(瘧疾)이다. 학(瘧)이라는 것은 '병(病)'과 '학(虐)'이 합친 글자인데, '학'은 호랑이이다. 갑골문에서 '학'은 호랑이가 사람을 향하여 아가리를 벌린 것으로 나온다. 그 뜻은 분명하다. 호랑이처럼 흉맹한 전염병이라는 말이다.


고대초기에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瘧'을 '虐'으로 적었다. <예기.월령에는 "만다학질(民多虐疾)'이라고 적었다. 동한때 사람인 유희는 <석명.석질병>에서 '학(瘧)'자를 설명하면서 "혹학야(酷虐也)'라고 하였다. "무릇 질병은 차갑거나 뜨거울 뿐이다. 오로지 이 병만은 먼저 차갑고 나중에 뜨거워지는 두 가지 병세가 나타난다. 혹학야."


선진시기, 학질은 먼저 중국남방지구에서 유행한다. <주례>에서는 '가을에는 학한질이 유행한다'고 하였는데, 이 병이 가을에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예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일 가을에 온도가 높으면 학질이 잘 일어나는데, 이 병을 옮기는 모기가 번성하기 때문이다.


고대에 영남, 천귀(川貴)일대에는 장기가 많다. 그래서 이 지구는 학질의 피해가 컸다. 운남은 과거 민요에 이런 내용이 있다: "오월육월연장기(五月六月煙瘴起), 신객무불사(新客無不死), 구월십월연장악(九月十月煙瘴惡), 노객혼야락(老客魂也落)" 북위 역도원의 <수경주>에는 "노강수"에 이렇게 적었따: "노강의 양안에는 수시로 장기가 발생하여, 삼월, 사월에 지나면 반드시 죽는다."


역대에 관병들이 남정을 하면 많은 경우에 학질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 촉국의 승상 제갈량이 장기를 두려워하여, 남정계획을 늦춘 바 있다. 당현종 이융기가 남정할 때 장기로 실패한 바 있다. <자치통감.당기삼십삼>에는 이렇게 기록한다. 천보십삽년(754년), 당나라조정은 시어사, 유남유후 이복을 파견하여 7만대군을 이끌고 남조국(지금의 운남성 경내)을 정벌하게 한다. 결과 병사들이 장역(瘴疫)에 걸린다. 병도 들고 배도 고파서, 십중팔구가 죽어나간다. 이복은 산채로 붙잡히고 전군이 몰살당한다. 나중에 댜시 군대를 보내서 정벌할 때 합쳐서 거의 20만명이 죽는다.


3. 전시: 고대에 전파가 가장 무서웠던 전염병


"전시"는 고대에 가장 무서운 전염병이다. "시주(屍注)", "둔시(遁屍)", "풍시(風屍)", "침시(沉屍)", "비시(飛屍)"등 여러 별칭이 있다. '전시'라는 것은 실은 "페로(肺癆)"를 가리킨다. 즉 폐결핵이다. 폐결핵이 고대인들에게 미친 피해는 아주 역사가 깊다. 선진시기에 책으로 만들어진 <황제내경>에도 이 병이 언급되어 있다.


고인들은 왜 폐결핵을 '전시'라고 불렀을까? 화타가 쓴 <화씨중장경>에는 '전시론'이 있는데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다: "이 병은 죽은 사람의 기운도 옮겨서 병에 걸릴 수 있어 전시라고 한다' 진나라때 갈홍의 <주후비급방>에는 '치졸중오시방'이 있다. 이 전염병에 대하여, "나쁘지 않은 것이 없다. 해가 지나고 달이 지날 수록 점점 돈체(頓滯)되어 죽음에 이르고, 죽은 후에도 다시 곁에 있는 사람에게 옮겨서, 온 집안이 죽는다." 


수나라때의 저명한 의학자인 소원방(巢元方)은 폐결핵에 새로운 이름을 지어준다. 그는 <소씨제병원후론>에서 "오증(五蒸)"의 개념을 내놓는다. 그중의 '골증(骨蒸)'이 바로 결핵이다. 그 뜻은 병이 뼛속에 깊이 파고들고 음허조열유리투외(陰虛潮熱由裏透外)하여 고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고인들은 페결핵의 원흉을 일종의 '충(蟲)'으로 보았다. 송나라때 진언(陳言)은 <심인극일병증방론.노채서론>에서 "벌레가 그의 심장과 폐를 갉아먹는다"고 하였다. 여기의 벌레는 "노충(癆蟲)", "채충(瘵蟲)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기실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결핵간균이다. 


폐결핵에 대하여, 비록 고대인들은 말만 들어도 얼굴색이 변했지만, 사서의 기재를 보면, 수당시기에 허윤종이라는 폐결핵 전문가가 비법을 써서 치료했다고 한다. <신당서.방기전<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에 "관중에는 골증질이 많았고, 서로 전염되었는데 이에 걸리면 모두 죽었다. 윤종이 치료하면 반드시 나았다"고 한다.


4. 여풍: 고대병환으로 결혼할 수 없는 '악질'


여풍은 마풍병(麻風病)이라고도 한다. 대마풍(大麻風), 천형병(天刑病), 나대풍(癩大風), 나병(癩病)이라고 불린다. 이는 고대인들이 두려워하던 또 하나의 악성 전염병이다.


<황제내경>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여(癘)라는 것은 영기열부(榮氣熱腑)한다. 그 기운이 맑지 못하여, 그 콧대가 망가지고 색이 변하며, 피부가 짓무르게 한다. 풍한이 맥에 잡혀 사라지지 않는다. 이름을 여풍이라고 하고, 또한 한열(寒熱)이라고도 한다."


<사기.중니제자열전>의 기록에 따르면, 공자의 '72제자"중 하나인 염경(冉耕)은 일찌기 마풍병을 앓았다. 공자가 그를 보러 가서, 창밖에서 그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연신 탄식한다: "이 사람에게 이런 병이 걸리다니. 운명이로다." <사기>에는 염경이 앓은 것이 마풍병이라고 하지 않고 단지 '악질(惡疾)'이라고만 한다. 그러나, 동한학자 하휴증(何休曾)은 <춘추공양전에서 '악질'에 이렇게 주석을 달아 놓는다: "음(瘖, 벙어리), 농(聾, 귀머거리), 맹(盲, 봉사), 여(癘), 독(禿), 파(跛, 절름발이), 구(傴, 곱사등이), 불체인륜지속(不逮人倫之屬)을 가리킨다" 염경은 집안에 갇혀 있었으므로 악질중에서 '여'만 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고대에 마풍병을 앓은 유명인사는 염경외에 당나라초기의 시인 노조린(盧照隣)도있다. 노조린은 병이 든 가운데 <병리수부>를 써서, 자신의 고통을 읊었다. 당시의 저명한 의학자인 손사막(孫思邈)이 그에게 처방전을 내린 바도 있었으나, 치료가 되지 못하고, 결국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기록에 따르면, 마풍병은 수당시기에 대유행을 했다고 한다. 당나라조정은 일부 사원을 "여인방(癘人坊)"으로 하였다. 이는 중국에 설립된 마풍병전문치료병원의 시초인 셈이다.


5. 노창: 고대인들이 가장 먼저 치료방법을 발견한 전염병"


노창은 '완두창(宛頭瘡)', 천행발반창(天行發斑瘡), 두창(豆瘡)이라고도 불리며, 명청시기에는"천두(天痘)", "진두(疹痘)"라고 불렀다. 천연두이다.


이 전염병에 대한 최초의 기재는 진나라 갈홍의 <주후비급방.치상한시기온병방>이다: 매년 이 병이 시시때때로 유행한다. 종기가 머리와 몸에 나는데, 순식간에 퍼진다. 모습은 화창(火瘡)같고, 흰고름이 있다. 금방 터지고 금방 생긴다. 즉시에 치료하지 않으면 심하면 죽는 사람이 많다.


'노창'은 중국의 본토질병은 아니다. 당시 항간에 이렇게 전해진다: "영휘4년, 이 병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전해진다. 중국전역에 퍼진다." 왜 '노창'이라고 부르는가? 갈홍의 고증에 따르면, "건무연간에 남양에서 오랑캐를 치다가 걸린 병이기 때문에 노창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갈홍의 기록에는 의문점이 많다. "영휘"는 당고종 이치의 연호이다. "건무"는 동한의 첫번째 황제인 광무제 유수의 연호이다. 갈홍이전에 최소한 진혜제 사마충등 3명의 황제가 '건무'라는 연호를 쓴 적이 있다.


어떤 학자는 광무제때의 명장 마원(馬援)이 교지(지금의 베트남)을 정벌하다가 병에 걸려 사망했다는 전설을 들어, '건무'가 유수의 연호라고 본다. 나아가, 천연두가 동한때 마원의 남방원정군이 가지고 왔다고 한다. 필자가 <후한서.마원열전>을 살펴보았는데 확실히 마원은 "교지에 출정하였고" 전염병으로 사망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는 분명 장기감염(학질)일 것이지, 천연두는 아닐 것이다.


비록 갈홍의 기록에 의문이 있기는 하지만, 두 가지는 긍정해야 한다. 하나는 천연두가 외래질병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중국인들은 천연두를 매우 일찌감치 알았다는 것이다.


현대의 고증에 따르면, 고고전문가들은 3천년전의 이집트 미이라에서 천연두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추측한다. 천연두는 4세기에 이집트 혹은 인도에서 외부로 전파되었다고. 18세기에 유럽에서는 1억이상의 인구가 천연두로 죽었다. 천연두는 비록 흉맹하지만, 중국에서 최초로 천연두 치료방법을 발견하여 천연두는 중국에서 유럽처럼 커다란 재난을 불러오지는 않았다. 청나라의 주순하의 <두진정론>의 기록에 따르면, 송나라때 송진종 조항이 황제로 있을 때, 이미 '왕소종두(王素種痘)'의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런 이 기술은 유럽으로 전해지고, 더욱 효과적인 '우두접종'으로 천연두를 예방하게 된다. 현재 천연두는 유일하게 인류에 의하여 소멸된 전염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