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개석154

1949년이후 대륙과 대만의 연해도서쟁탈전 글: 김이(金二) 1 조금 나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해녀 여민병(女民兵)을 주제로 한 영화 를 기억할 것이다. 당시에는 전체인민이 반드시 보아야 하는 영화였다. 의 스토리원형은 동두(洞頭)의 여민병이다. 여민병이라고 하여 여자들이 그저 총을 들고 폼만 잡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 여민병의 훈련강도는 남성정규군에 못지 않았다. 심지어 임신8개월의 여민병까지도 사격훈련에 참가했다. 당시 동두도(洞頭島)의 여민병은 토비 45명을 생포하고, 토비 10명을 죽였으며, 특무 12명을 체포하고 총기 28점을 노획했다. 1965년 2월 절강성의 민병경연대회에서 왕월하(王月霞)는 중기관총, 경기관총, 돌격총, 소총등 7개의 사격항목에서 100여발의 총탄을 모조리 적중시켜, 절강성인민정부, 성군구로부터 "신창.. 2022. 8. 5.
"도주장군(逃跑將軍) 손원량(孫元良)": 탐재호색(貪財好色)한 그는 103살까지 살았다. 글: 민국삼십칠(民國三拾柒) 1924년, 손중산(孫中山) 선생은 군벌을 타도하고, 군사인재를 배양하기 위하여 이름도 유명한 황포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를 설립한다. 모두 알다시피 황포군관학교의 앞의 7기동안 호종남(胡宗南), 장영보(張靈甫), 두율명(杜聿明)등 우수한 장군들을 배출해냈고, 그들중 대부분은 "황포계"로 '교장' 장개석(蔣介石)이 최고지도자로 성장하는 기반이 된다. 그중에는 황포 1기출신의 손원량이 있는데, 장개석이 크게 인정한 인물이다. 장군으로서 손원량은 잘 싸웠고, 적지 않은 평가할만한 우수한 전적도 있다. 송호항전(松滬抗戰)때 그는 부대를 이끌고 묘행진(廟行鎭)에서 일본군을 성공적으로 격퇴했으며, 이 전투는 당시 국제적으로 '국군이 최초로 일본군을 격패시킨 전투'로 평가되었다. 그리하여.. 2022. 7. 25.
장백령(張伯苓): 남개대학(南開大學)의 창립자, 그리고 주은래(周恩來)와의 관계 글: 임휘(林輝) 당금 중국대륙의 명문대학중에서 천진의 남개대학은 역사가 깊은 곳이다. 많은 중국인들은 이 대학에서 주은래가 공부한 적이 있다고 알고 있다. 남개대학의 창립자인 장백령은 남개대학을 창립했을 뿐아니라, 남개중학, 남개여자중학, 남개소학, 중경남개중학등 남개시리즈학교들을 창립하여, 민국시기 중국 사립학교의 모범이 되었다. 장백령은 스스로를 이렇게 묘사한 바 있다: "나는 천재도 아니고, 장점이랄 것도 없다. 내가 평생 노력하여 자그마한 성취를 이룬 것은 내가 교욱에 대하여 신앙과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뿐이다." 그와 일찌기 남개대학을 다닌 적이 있는 주은래간의 이야기도 중공의 당매체에서 계속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다. 옛날 주은래는 장백령에게 제적당.. 2022. 7. 22.
“소면호(笑面虎)" 모인봉(毛人鳳) 글: 심사기담(尋史奇談) 그는 일찌기 국민당 특무의 "1호인물"이었다. 그의 성공의 길에는 여자의 도움을 빼놓을 수 없다. 성공하기 전에 그는 은인자중하며 오랫동안 후덕하고 착실한 사람처런 행동하여, 모든 사람이 그에게 속았었다. 그가 고위직에 오르자 그는 칼을 빼들었고, 심지어 그를 여러해동안 따랐단 부하들조차도 액운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일생동안 명리를 추구하여, 적을 많이 만들었고, 심지어 '태자야'를 끌어내릴 음모를 꾸미기도 했다. 말년은 한없이 처량했고, 모두가 그를 떠난다. 병이 위중했을 때 민간의 비방을 썼다가 목숨을 잃는다. 그가 누구인가? 그는 바로 국민당의 특무두목 "소면호" 모인봉이다. 모인봉의 성공에는 한 여자를 언급해야 한다. 그 여자는 바로 그의 처인 향영심(向影心)이다. .. 2022. 7. 18.
왜 중국인들에게 "입장(立場)"만 있고, "시비(是非)"는 없게 되었는가 글: 청운(靑雲) 중국인이라면, 모두 "입장을 확실히 한다(站穩立場)"는 말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입장"인가? 모택동의 '최고지시' 하나가 바로 '입장'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무릇 적이 반대하는 것은 우리가 옹호한다. 무릇 적이 옹호하는 것은 우리가 반대한다!" 허난성의 어느 국장이 기자에게 이렇게 소리친 적이 있다: "너는 당을 위해서 얘기하는 거냐? 아니면 군중을 위해서 얘기하는 거냐?" 이는 '입장을 확실히 한다'는 것이 여전히 중국관료사회의 정치적 주선율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입장"의 본질은 "상황을 잘 깨달아서 줄을 잘 서는 것"이다. 세력만 보지 사람은 보지 않는다. 영원히 세력이 더 큰 쪽에 붙어야 하는 것이다. "입장"은 다음의 몇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 두 개의 집단간.. 2022. 3. 18.
100년전 중국 지식인들의 기개 글: 굴강적아아(倔强的丫丫) 채원배(蔡元培): 자유가 없는 대학교장은 하지 않겠다. 채원배는 일생동안 여러번 사직했다. 그중 북경대학 교장으로 있을 때만 하더라도 전후로 여러번 사직했다. 그는 1917년 1월 4일 북경대학 교장직에 올랐는데, 7월 3일 여원홍(黎元洪) 총통에게 사직서를 제출하여, 장훈(張勛)의 복벽(復辟)에 항의했다. 1923년 1월 17일 채원배는 다시 분노하여 사직서를 제출한다. 다음 날 그는 에 북경대학 교장직무를 사임한다는 성명을 싣는다: "채원배는 인격을 지키려는 생각에서, 사법독립과 인권에 간섭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교육당국과는 더 이상 연락을 유지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미 총통에게 국립북경대학 교장의 직을 사임하겠다고 하였다. 오늘부터 더 이상 학교 업무를 보지 않겠다. 이에.. 2021. 1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