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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진시황)

진시황(秦始皇)은 여불위(呂不韋)의 아들인가?

by 중은우시 2006. 1. 2.

진시황의 신세내력에 대하여는 수천년간 여러가지 설이 내려왔다.

 

그 중에서도, 진시황은 여불위의 사생아라는 전설이 가장 널리 퍼져있다. 이것은 <<사기>>와 <<자치통감>>등 권위있는 역사서에도 모두 기재되어 있고, <<한서>>의 작가인 반고는 직접적으로 진시황을 여정(呂政)이라고 하여 여씨라고 적은 바 있다.

 

이 설에 따르면, 위나라의 부유한 상인인 여불위는 장사를 잘했고, 야심이 매우 컸다. 어느 해인가 조나라의 수도인 한단에서 진나라에서 조나라로 인질이 되어 잡혀온 자초(子楚)를 알게 된다. 자초는 당시 진나라 태자인 안국군의 아들이었다. 여불위는 자초가 이용가치가 있다고 보고, 여러가지 방법을 써서 그에게 접근하고, 그의 환심을 산다. 여불위는 먼저 안국군의 애첩인 화양부인을 통하여 자초가 황태자가 되도록 만들고, 이어서 절세미녀를 바친다. 이 절세미녀는 바로 여불위의 애첩이었고, 자초에게 보낼 때 이미 아이를 가진 상태였다. 오래지 않아, 이 미녀가 아이를 나으니 바로 그가 영정(赢政), 즉 진시황이다. 안국군이 죽은 후 자초가 황위를 잇고, 자초가 죽은 후 영정이 즉위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에 대하여는 의문을 표시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명나라때의 역사학자인 왕세정은 이것은 여불위가 그가 얻은 부귀영화를 보존하기 위하여 스스로 만들어낸 얘기라고 본다.

 

또한, 저명한 근대 역사학자인 곽말약은, 이런 얘기는 서한초기에 나타나는데, 당시 여후(呂后, 유방의 부인으로 유방의 사후 권력을 독단했던 여인임)시대에 권력을 뺏기 위하여 여씨들이 날조하여 퍼뜨린 얘기라고 본다. 목적은 원래 세상은 여씨들 것이었는데, 유씨들이 잠시 뺏어간 것을 다시 여씨들이 되찾은 것이라고 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