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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12

[황자쟁위술] 이퇴위진술(以退爲進術) – 후발제인패(後發制人牌) 이런 말이 있다: “고개내민 새가 총을 맞고(槍打出頭鳥), 솟아나온 나무가 바람에 쓰러지고, (風摧秀林木), 튀어나온 서까래가 먼저 썩는다(露頭椽子先腐朽).”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가면 위험이나 곤란에 처하는 경우에 혼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원장이 휘주를 .. 2015. 7. 27.
당태종 이세민의 자녀들 작자: 미상 당태종 이세민은 626년에 즉위한 후 24년간 재위했다(627-649). 이세민은 중국역사상 보기드문 타천하(打天下)도 할 줄 알고, 치천하(治天下)도 할 줄아는 명군이었다. 그러나 권력을 쟁탈하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두 형제를 죽이고, 부친을 퇴위시켰고, 여러 아들을 죽게 만들.. 2013. 4. 13.
당태종의 14명의 아들 글: 일득재주(一得齋主) 당태종 이세민은 중국역사상 일대명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을 얘기하자면, 그들은 대부분 싹수가 없었다. 결말도 아주 비참했다. 그중 3명은 피살당하고, 3명은 자살했으며, 3명은 요절했고, 1명은 유폐되었다. 2명은 서인으로 폐해진 후 다시 유배.. 2012. 8. 15.
이각(李恪): 당태종이 가장 사랑한 아들 글: 장걸(張杰) 두 왕조의 혈맥이 그에게 가져다준 것은 영예가 아니라, 재난이었다. 만일, 운명을 바꿀 용기가 없다면, 그저 운명의 수레바퀴에 깔릴 뿐이다. 그는 명문출신으로, 대당(大唐)의 황자(皇子)이면서, 전조인 대수(大隋)의 황손(皇孫)이기도 하다. 그는 두 왕조의 황족혈.. 2012. 2. 6.
당태종의 아들들 당태종은 아주 능력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자기의 자식들은 어쩔 수가 없었다. 당태종 이세민에게는 14명의 아들이 있다. 관례에 따르면, 장남은 태자로 삼고, 나머지 아들들은 왕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세민 자신이 적장자가 아니었고, 이로 인하여 아들들은 모두 황제의 지위를 탐하게 되었다... 2007. 6. 22.
당태종의 후계자 선정 배경 만년의 당태종에게 가장 골치아픈 문제는 태자문제였다. 정관17년 4월, 이승건(李承乾)이 태자위에서 폐위되었다. 이후 태자가 될 자격을 지닌 사람은 장손황후의 또 다른 두 아들이었다. 바로 위왕(魏王) 이태(李泰)와 진왕(晋王) 이치(李治)였다. 두 사람을 비교하자면, 이태의 조건이 훨씬 뛰어났다. .. 2007.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