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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협15

하태후(何太后)의 수학문제 글: 조염(趙炎) 삼국난세의 원인에 관하여 후세인들은 대부분 한영제의 "폐사입목(廢史立牧, 자사를 없애고 주목을 둔 것)"과 동탁(董卓)의 시대를 역행한 조치에서 찾는다. 기실, 전자는 황건적의 난때부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다. 태상 유언(劉焉)이 한 말처럼 "사방에서 반란이 .. 2015. 11. 2.
[황자쟁위술] 무장탈위술(武裝奪位術) 내선득위패(內禪得位牌) 우편 선양과 같은 정치적 권모술수는 시작이 어렵지, 한번 선례만 있으면, 학습효과를 발휘한다. 순은 갖은 머리를 짜내어 천자의 자리에 올랐고, 동시에 정치의 화산(火山) 위에 앉았다. 요임금이 남긴 것을 수습해야 했다. 천하는 비록 일시적으로 그에게 겁을 먹고 굴복했지만, 그가 이어받.. 2015. 10. 11.
봉건왕조 교체의 괴현상 글: 진사황(秦四晃) 중국 2천여년의 수십개 봉건왕조중 진정 '총부리(무력)'으로 얻어낸 경우는 엄격히 말해서, 진시황이 6국을 병합한 것을 제외하면, 유방과 주원장 두 명만 남는다. 오히려 대다수는 모두 정치적 권모술수과정에서 왕조교체를 이룬 것이다. 그중 자주 일어난 것은 친척.. 2015. 7. 17.
삼국시대 공고진주(功高震主)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최후 글: 문방장궤(文房掌櫃) 어떤 사람이 어떤 일에 처하면 모두 자신이 처한 지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주(主)인지 객(客)인지. 예를 들어 주군의 앞에서 신하는 영원히 객의 지위이다. 절대로 주군의 앞에서 자신의 재능을 자랑해서는 안된다. 특히 다른 사람이 있을 때에는. 삼국시대 양수(.. 2015. 1. 14.
한소제(漢少帝): 환관묘에 묻힌 유일한 황제 글: 문재봉(文裁縫) 고대인들은 사후의 묘를 쓰는 것을 아주 중시하였다. 백성의 집안들도 그러했으니, 황실귀족은 더욱 그러했다. 이치대로라면, 황제의 묘는 설사 금벽휘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 신경써야 할 것이다. 다만, 한소제가 죽은 후, 그저 아무렇게나 환관의 묘에 묻어버린다.. 2014. 12. 15.
유황숙(劉皇叔)의 신세내력 글: 마백용(馬伯庸) <삼국연의>의 첫부분 제1회에 유비가 등장하면서 자신은 한실종친이라고 내세운다: "중산정왕(中山靖王) 유승(劉勝)의 후손으로, 한경제(漢景帝) 각하의 현손(玄孫)으로 성은 유(劉)이고 이름은 비(備)이며, 자는 현덕(玄德)이다." 이 부분은 정사(正史)의 기재에 부.. 2014. 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