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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분석

봉건왕조 교체의 괴현상

by 중은우시 2015. 7. 17.

글: 진사황(秦四晃)

 

중국 2천여년의 수십개 봉건왕조중 진정 '총부리(무력)'으로 얻어낸 경우는 엄격히 말해서, 진시황이 6국을 병합한 것을 제외하면, 유방과 주원장 두 명만 남는다. 오히려 대다수는 모두 정치적 권모술수과정에서 왕조교체를 이룬 것이다. 그중 자주 일어난 것은 친척이 순수견양(順手牽羊)으로 자연스럽고 교묘하게 황위를 빼앗은 경우이다.

 

한황양위신망(漢皇讓位新莽)

 

신(新)왕조를 세운 왕망은 고모가 한원제 유석의 황후이자, 한성제 유오의 생모이다. 왕망과 한성제는 사촌형제간이 된다. 왕봉, 왕음, 왕상, 왕근 등의 뒤를 이어, 한나라 대사마의 직위를 넘겨받는다. 한평제때는 신도후에 봉해지고, 안한공이 된다. 그의 지위는 재상으로서 태부, 대사마를 한 손에 거머쥐었다. 가구석(加九錫)하여, 작위도 존귀하고, 칭호도 높고, 권력도 컸다. 먼저 섭정을 하니, 사람들이 "섭황제(攝皇帝)"라 불렀다. 그리고 다시 "가황제(假皇帝)"라 칭한다. 2,3녀누 한나라의 주인이자 나이 겨우 6살인 어린 아들 유영을 버리고 천명을 받아 선양을 받는다. 한황실을 없애고, 국호를 '신'으로 바꾼다.

 

등극의식이 끝나자, 왕망은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인 유영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아이에게 말한다: 유영아, 예전에는 하늘이 너의 조상을 보우하여 천하를 관장하였고 십여대 이백여년이 지났다. 시간이 충분히 길었다. 하늘의 뜻은 돌고 도는 것이다. 알겠느냐? 현재의 명수는 우리 왕씨에게 넘어왔다. <시경>에 말하기를, '후복어주(侯服於周), 천명미상(天命靡常)"이라고 하였는데, 내가 그 뜻을 설명해주마. 바로, 은상의 후손이 나중에 주왕조의 신하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늘의 뜻은 바뀌는 것이다. 알아듣겠느냐. 그러나, 안심해라. 그렇다고 하여 네가 호의호식하는 것에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다. 나는 너를 정안공에 봉하여, 평원, 안덕, 누음, 중구의 몇 개현의 1만호의 주민을 너에게 내리마. 너는 너의 정안공국에서 하고싶은대로 하면 된다."

 

서한은 이렇게 멸망한다.

 

동한양위조위(東漢讓位曹魏)

 

조위의 기반은 주로 조조가 닦았다. 그러나 진정 황제를 칭한 것은 조비의 대에 이르러서이다. 한헌제와 조씨집안의 관계는 아주 복잡하다. 조조는 한꺼번에 딸 3명을 모조리 한헌제 유협의 후궁으로 바친다. 차례로 헌목황후 조절, 부인 조화, 귀인 조헌이다. 이 관계로 보자면, 조조는 바로 유협의 장인이다. 조비는 자연히 처남이 된다. 황제는 바로 조씨집안의 사위인 것이다. 나중에, 이 친척관계는 다시 어지러워진다. 한헌제 유협이 다시 그의 두 딸을 조비의 비빈으로 준다. 이렇게 되니 한헌제의 격이 올라간다. 조승상과 사돈간이 되는 것이다. 조비보다는 한 배분이 높아진다. 매부에서 장인으로 바뀐 것이다. 조비가 한 배분 내려간 것은 별론으로 해도, 조조는 딸 조절과 같은 배분이 되어 버린다. 조절은 오빠인 조비의 장모가 되어 버린다.

 

유협이 선양할 때는 아주 겸손했다. 그리고 스스로 알아서 내려간다. 그는 어사대부 장음을 보내어 황제의 인장과 수대를 조비에게 보낸다. 그리고 글을 내린다: 위왕, 일찌기 당요가 우순에게 선양하였고, 우순은 다시 하우에게 선양했다. 하늘의 뜻은 고정불변이 아니다. 황권을 덕이 있는 사람에게 넘겨야 한다. 한왕조의 기수는 이미 다 했다. 나는 지금 공손하게 황제위를 당신에게 넘기니 당신이 잘 해라. "어희(於戱)! 천지역수재이궁(天之歷數在爾躬)" 하늘의 뜻에 따라 당신이 강산을 차지해야 한다. 이렇게 황권을 넘기고, 유협은 산양공이 된다.

 

조비는 조위를 건립하고 연호를 황초라 하며,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린다. 동한이 멸망한다.

 

북주양위수양(北周讓位隋楊)

 

북주는 남북조시대 북조 최후의 왕조이다.  수나라의 개국황제 양견은 저명한 홍농 양씨 출신이다. 부친 양충은 관직이 상주국에 이르고, 수국공이 된다. 부친이 죽자 양견이 작위를 승계하고, 북주의 병권을 장악한다. 조정의 인맥이 아주 넓었다.

 

당연히 가장 중요한 것은 선조황실과의 친척관계이다. 제일층은 양견이 북주세종 우문육과 동서간이라는 것이다. 취한 여인은 모두 북주의 명장 독고신의 딸이었다. 제이층은 양견이 권력을 장악한 후, 딸 양려화를 북주선제 우문빈에게 시집보내어 황후가 되게 한다. 양견은 이렇게 하여 황상의 장인이 된다.

 

북주정제 우문선이 7살때 즉위하는데, 양견은 친척관계로 본다면 황제의 외할아버지가 된다. 상주국, 수국공, 좌승상, 양주주관등 관직을 혼자서 차지하고 있던 양견은 이때 문무를 겸직하며, 가황월(假黃鉞), 대섭정(代攝政)을 했다.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린 아이가 어찌 이런 노모심산의 관료사회에서 굴러먹은 늙은 여우를 당하겠는가. 그저 양견이 검리상전(劍履上殿), 입조불추(入朝不趨), 찬배불명(贊拜不名), 비구석(備九錫), 가새수(加璽綬), 출경입필(出警入蹕)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외손자는 철이 일찍 들었다. 외할아버지가 화를 낼까 겁을 내서, 계속 외할아버지에게 더 높은 모자를 씌워준다. 나중에는 강산도 넘겨준다. 양견은 이때 외부에 쇼를 한다. 외조카가 선양응 하자, 놀란 듯이 세 번이나 사양한다. 아마도 어린아이는 이렇게 마음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외할아버지께서 그렇게 연기하시길 원하신다면 저도 따라서 같이 연기하겠습니다.

 

손자는 외할아버지를 찬양한다: 응백대지조(應百代之朝), 당천령지운(當千令之運), 가륭대정지성(家隆臺鼎之盛), 문유익찬지근(門有翊贊之勤) 심동이윤(心同伊尹), 필치요순(必致堯舜), 정류공구(情類孔丘), 헌장문무(憲章文武). 애초입사(愛初入仕), 풍류영세(風流映世), 공경앙기궤물(公卿仰其軌物), 진신위위사표(搢紳謂爲師表).....위지약신(畏之若神), 앙지약일(仰之若日), 방풍미적(芳風美迹), 가송독존(歌頌獨尊).

 

외할아버지는 겸허하게 말한다: 손자의 말은 너무 지나치다. 너야말로 당금의 천자이다.

 

손자는 다시 공손하게 말한다: 나는 '조종의 기업이 이미 위험해 졌고, 생인의 명이 곧 위험해 질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그럼 내가 어찌하면 좋겠는가.

 

손자의 말은 더욱 간절해진다: 왜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당신은 "구공원피(九功遠被), 칠덕윤해(七德允諧), 백요사사(百僚師師), 사문목목(四門穆穆). 광경조림지지(光景照臨之地), 풍운거래지소(風雲去來之所), 윤문윤무(允文允武), 유명동덕(幽明同德), 취산취수(驟山驟水), 하이귀심(遐邇歸心)'입니다.

 

외할아버지는 다시 겸양하여 말한다: 안됩니다. 안됩니다.

 

손자는 오히려 조급해진다. 할아버지 너무 아닌척 하지 마세요: 당신은 "웅규신략(雄規神略), 기개조야(氣蓋朝野), 상국수왕(相國隋王), 예성자천(睿聖自天), 영화독수(英華獨秀)....우순지대공이십(虞舜之大功二十), 미족상비(未足相比), 희발지합위삼오(姬發之合位三五), 기가족론(豈可足論).

 

외할아버지는 더 말하지 않았다.

 

손자는 마지막 말을 한다: 목행이사(木行已謝), 화운기흥(火運旣興), 하락출혁명지부(河洛出革命之符), 성신표대종지상(星辰表代終之象).. 금편지수천명(今便祗順天命), 출손별궁(出遜別宮), 선위어수(禪位於隋), 일의당우(一依唐虞), 한위고사(漢魏故事).

 

581년 이월 갑자일, 양견은 못이기는 척 임광전에서 황위에 오른다. 국호를 대수라 정하고 연호를 개황이라 한다.

 

대수양위대당(大隋讓位大唐)

 

역사를 자세히 연구하지 않은 사람은 당나라는 이연, 이세민 부자가 전쟁을 통하여 천하를 얻은 것으료 여긴다. 기실 이는 친척의 손에서 빼앗아 온 것이다.

 

이, 양 두 가족의 관계는 심원하다고 할 수 있다. 전문에서 말한 독고신이라는 사람은 딸 하나를 북주세종 우문육에게 시집보내고, 다른 딸 하나는 양견에게 시집보냈다. 우문육이 취한 딸은 첫째이고 양견이 취한 딸은 일곱째이다. 이연의 조부인 이호는 서위때 좌복야로 있었고, 농서군공에 봉해졌다. 독고신과 나란히 '팔주국가'에 들어간다. 독고신의 넷째딸이 시집간 사람이 바로 이연의 부친 이병이다. 이렇게 하면 알아차릴 것이다. 이연은 원래 양견과 친척간인 것이다. 그는 수문제 양견을 이모부라고 불러야 한다. 

 

수나라말기 천하가 대란에 빠지자, 태원을 지키고 있던 이연이 보기에 이모부의 강산을 남에게 빼앗기게 생겼다. 차라리 남에게 빼앗기느니 우리가 차지하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들 이세민등과 상의한 후, 근수루대(近水樓臺)의 잇점을 활용하여 병력을 보내어 관중을 차지한다. 먼저 수도를 점령한 것이다.

 

이연이 장안을 장악한 후, 이종사촌인 수양제 양광은 여전히 강도(양주)에 머물며 황음을 즐겼다. 이연은 전왕조의 방식을 그대로 써서, 친히 12,3살된 어린아이인 수양제의 손자 양유를 황제에 앉힌다. 역사에서 말하는 수공황제이다. 양주의 양광에게는 태상황이라는 허명을 보내고 스스로 승상에 오른다.

 

양유는 이연의 손자뻘이다. 어린 황제는 겨우 1년동안 자리를 지키다가 할아버지 양광이 양주에서 피살되자, 스스로 어떻게 해야할지를 알고, 이연에게 자리를 넘겨준다.

 

양견의 후손이 양위할 때의 말은 우문가의 손자가 했던 말과 꼭같고 전혀 다르지 않다:

 

먼저 이연에게 글을 바친다: "덕모조화(德侔造化), 공격창민(功格蒼旻), 조서귀심(兆庶歸心)

다시 대수는 이미 쇠하였다고 말한다: "삼령개복(三靈改卜), 대운거의(大運去矣)

세번 스스로 양위하겠다고 한다: 청피현로(請避賢路), 금준고사(今遵故事), 손어구저(遜於舊邸), 서관군피(庶官群辟), 개사당조(改事唐朝)

 

양유는 사람을 보내어 황제의 인수를 이연의 앞으로 보낸다. 이연도 양견을 본따 세번 겸양한다. 그래서 백관들이 몰려와서 글을 세번이나 올려서 권한다.

 

618년 오월, 이연은 수공황제의 선양을 받아 강산을 차지한다. 연호를 무덕이라 하고, 대당이 성립되니 대수는 망한다.

 

되돌아보면 이연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의 둘째아들만큼 대단하지는 않다. 이연은 몇년이 지나지 않아, 황제의 자리를 즐기지 못하게 된다. 부득이 마음에 없지만 병강마장의 능정선전의 이세민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이것은 당연히 내부투쟁이다.

 

위에서 언급하고 열거한 것은 역사에서 몇 번의 비교적 큰 규모의 왕조교체이다. 중국의 남북분열, 오호난화의 시기에는 크고작은 조정에서 친척 심지어 부자형제간에도 황권다툼이 벌어진다. 강산이 바뀌고, 개가 개를 무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정(政)은 상(商)과 서로 통한다. 이익의 앞에서는 친척도 없다. 도둑을 막으려면 먼저 자기 집안 사람부터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