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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환22

중국역사상 문인과 무장의 숙명 글: 운중군(雲中君) 도연명은 행택현령의 자리에서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그리고 채국귀은(採菊歸隱)의 길을 선택한다; 시선 이백은 재주가 넘쳤고, 원대한 포부가 있었으며, 인구에 회자되는 많은 시가를 남긴다. 관료로서는 뜻을 펼치지 못했고, 최종적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 2013. 11. 16.
기공(氣功)에 연연하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글: 왕아황(王亞煌) 리롄제(李連傑), 자오웨이(趙薇), 마윈(馬雲)이 찾아가서 만나면서 장시(江西)의 기공대사(氣功大師) 왕린(王林)은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핑샹시 천상인간금존국제클럽하우스를 개설한 기공대사는 관리들의 귀한 손님이고, 심지어 어떤 고관은 그에게.. 2013. 8. 4.
오삼계(吳三桂)는 어떤 인물인가? 글: 유지군(劉志軍) 오삼계를 얘기하자면, 사람들은 당연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는 반복무상(反復無常)하게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 인물이다. 먼저 명나라에 배신하고 틈왕 이자성에게 투항했다가, 나중에 다시 창끝을 돌려 청나라에 투항하여, 청나라병사를 산해관으로 끌어들여 .. 2013. 6. 10.
대명황실의 후예는 청나라의 귀족이 되었다 글: 재릉(梓凌) 명태조 주원장의 후손은 명나라가 멸망한 후에도 단절되지 않고, 명나라멸망후 300년간 귀족의 신분으로 중화대지에서 생활앴으며, 여전히 영광을 누렸다. 제1대 한군후(漢軍侯) 주지련(朱之璉, ? - 1730)은 자가 상옥(商玉), 호는 창암(蒼巖)이며, 안휘 봉양 사람이다. 명태조.. 2013. 5. 1.
숭정제가 원숭환을 죽인 것이 잘못인가 글: 주가웅(朱家雄) 원숭환(袁崇煥)의 죽음에 관하여 청나라 중엽이래로, 사서에서는 건륭제가 결정내린 것처럼 '천고기원(千古奇寃)' 즉 천고에 원통할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할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숭정제가 원숭환을 죽이기로 결정한 원인은 아주 복잡.. 2012. 2. 3.
범문정(范文程): 대명왕조의 인재유실 글: 정만군(程萬軍) 범문정(范文程)은 대명왕조의 신민(臣民)들의 눈에는 확실히 "한간(漢奸, 매국노)"이다. 그러나, 민족절개를 별론으로 하고, 재주만을 보자면 그는 인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그의 상대방, 적수들까지도 이 질문에 부정적인 답을 내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확실히 인.. 2010. 2. 21.
원숭환(袁崇煥): 의심스러운 민족영웅 글: 요소원(姚小遠) 원숭환을 연구할 때면, 나는 종종 서로 모순되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자체 모순은 어떤 때는 우습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하여, 뭐가뭔지 모르게 만든다. 원숭환은 민족영웅이지만, 아주 의심스러운 민족영웅이다. 만일 관방의 공식자료에서 역사의 진실을 찾으려 하면, 왕왕.. 2008. 12. 2.
원숭환의 죽음은 누구의 잘못인가? 글: 주가웅(朱家雄) 원숭환의 죽음에 관하여, 청나라중기이후, 역사서에서는 건륭제가 내린 결론에 따라 천고의 억울한 사건이라는 기조를 채택하고 있다. 과연 그러할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숭정제가 원숭환을 죽이기로 결정한 것에는 복잡한 원인이 얽혀 있다. 그중 핵심적인 원인은 .. 2008. 7. 15.
누르하치를 죽게만든 홍이대포(紅夷大砲) 1626년 정월, 누르하치는 군대를 이끌고 요동의 중요군사도시 영원성(寧遠城)을 공격했다. 명나라의 방어장수인 원숭환(袁崇煥)은 "민졸(閩卒, 민졸은 복건성 출신 병사를 의미함)" 나립(羅立)으로 하여금 3천근에 이르는 홍이대포를 쏘게 하였다. 대포는 순환하며 날아가서 만주의 귀인(貴人)을 .. 2007. 6. 7.
모문룡(毛文龍) : 명나라 말기의 장수 모문룡(1576-1629). 절강 인화(지금의 항주)사람이다. 어려서 부친을 잃고, 모친을 따라 외삼촌인 심광조(沈光祚)의 집에서 살았다. 모문룡은 경서를 읽기를 싫어했고, 일하는 것도 싫어했다. 사람들의 관상과 사주를 봐주면서 생활을 영위했다. 천계원년(1621년) 즉, 모문룡이 45세되기 전까지 그가 무엇을 .. 2007.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