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개116 원세개의 황제참칭전후의 몇 가지 에피소드 글: 녹순자(鹿順子) 1915년 12월 11일 원세개는 북경에서 황제를 참칭했다. 이를 전후하여 발생한 몇 가지 사건들을 언급하자면... 첫째, 원세개의 장남인 원극정(袁克定)은 부친이 황제에 오르면 자신이 태자가 될 것이라고 깊이 믿었다. 그리하여 부친으로 하여금 황제에 오르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 2008. 8. 11. 팽가진(彭家珍): 암살시대 최후의 자객 글: 송석남(宋石男) 1912년 1월 26일 저녁, 동맹회(同盟會) 회원인 팽가진은 중화민국혁명시기의 중요한 일격을 완성했다. 바로 청나라말기 종사당(宗社黨)의 영수인 양필(良弼)을 암살한 것이다. 며칠후, 청나라황제는 퇴위한다. 손중산은 팽가진을 이렇게 칭찬한 바 있다: "노팽(팽가진)이 공을 거두는 .. 2008. 5. 6. 서태후가 전세계국가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다. 글: 수은하(水銀河) 1900년 6월 21일 음력 5월 25일, 당시 중국의 실제통치자인 서태후(자희태후)는 공전절후의 큰 일을 벌인다. 바로 전세계를 상대로 선전포고한 것이다. 서태후는 <<조서(詔書)>>에서, "구차하게 살아남으려고 하는 것은 만고에 수치스러운 일이다. 크게 들고 일어나서 자웅을 겨.. 2007. 7. 19. 원세개의 묘지에 얽힌 이야기 글: 중화유산 잡지(2007. 7.) 원세개(袁世凱, 위안스카이)를 얘기하면 모두 그를 난세의 간웅과 비슷한 나라를 훔친 큰 도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어디에 묻혔는지는 아는 사람이 적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가 조조와 마찬가지로, 여러 곳에 묘지를 만들어놓았다는 전설아닌 전설을 퍼뜨리.. 2007. 7. 2. 원세개의 유산분할 글: 부국용(傅國涌) 1916년 6월 6일, 원세개(위안스카이)는 모든 백성들의 욕을 먹는 와중에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의 장례식은 아주 호화롭게 진행되었다. 고향인 하남성 창덕의 묘지는 200무(1무는 200평이므로 4만평)이상이고, 시신은 전용열차로 운구되었으며, 직접 장례비만도 50여만은원(銀圓)에 .. 2007. 3. 28. 원정설(袁靜雪) : 나의 부친 원세개 나의 부친이 임시총통선서를 한 후 다시 조금의 시간이 흘렀다. 청황실은 중남해를 내놓았다. 우리는 다시 당시 철사사후통 육군부(지금의 중국인민대학 기숙사)에서 중남해로 이사했다. 나의 부친은 이때부터 중남해에 들어가 거주했고, 다시는 신화문(중남해의 정문)을 나서지 않았다. 이것은 "동흥.. 2007. 1. 12. 이전 1 ··· 15 16 17 18 19 2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