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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동흥23

장옥봉(張玉鳳)의 눈으로 본 강청(江靑) 글: 섭영렬(葉永烈) 1972년, 모택동이 병으로 쓰러졌을 때, 그의 곁에서 돌봐주는 사람은 수간호사(護士長) 오욱군(吳旭君)을 제외하고는 바로 장옥봉이었다. 장옥봉은 원래 모택동 전용열차의 승무원이었다. 1968년, 24살된 그녀는 철도부에서 일하던 유애민(劉愛民)과 결혼하고, 얼마후, 딸을 낳는다. 홍.. 2009. 3. 3.
모택동 만년의 비밀거주지 : 202와 305 전 중공중앙판공청 경위국 부국장 무건화(武健華)는 모택동의 경위중의 하나이며, 모택동이 서거한 후, 무건화는 명을 받들어 강청 및 모택동의 조카 모원신을 체포함으로써, 사인방시대를 마감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최근 그는 구술로 사인방체포의 전후의 경력을 이야기하면서, 모택동을 위하여 .. 2007. 4. 2.
모택동의 정치유언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왕왕 역사의 발전이나 방향을 뒤바꿔놓는다. 젊은이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강청의 시대에 이런 일이 발생했었다. "사인방"은 모주석이 "기존에 정한 방침대로 하라(按旣定方針辦)"고 하였다고 하고, 화국봉은 모주석이 "과거의 방침에 따라 하라(照過去方針辦)"고 하였.. 2007. 1. 8.
왕동흥(汪東興) : 모택동 말년의 4 총신(寵臣) 왕동흥은 모택동의 곁에서 30년간 경위(警衛)로 지낸 유일한 인물이다. 기등규(紀登奎)는 모택동의 옛친구의 신분으로 외부에 알려져 있다. 오덕(吳德)은 동필무가 죽은 후에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실질적인 주재자가 되었고, 주덕이 죽은 후에는 중공전국인민대표대회당조 서기가 되어 인대를 3년간 장.. 2006. 12. 18.
등소평에 대한 7번의 암살시도사건 국가주석 호금도는 2개의 비밀기록자료를 비밀해제하였다. 그 중의 하나는 '기밀'로 분류된 자료로서 1949년부터 1977년까지의 국민경제, 재정상황통계숫자와 그 감사후의 기록자료이다. 비밀해제후 성, 지급의 당정부문, 경제, 학술, 과학연구부서에 개방하였다. 다른 하나는 '절대기밀'로 분류된 자료.. 2006. 9.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