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홍문(王洪文): 모택동이 세번째로 정한 후계자
글: 왕우군(王友群) 모택동이 정한 첫번째 후계자는 유소기(劉少奇, 류샤오치)이다. 1969년 11월 12일 모택동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죽는다. 두번째 후계자인 임표(林彪, 린뱌오)는 모택동으로부터 연이언 타격을 받은 후 1971년 9월 13일 몽골 원두르칸에서 비행기추락으로 사망한다. 그 후, 모택동은 나이가 젊고, 학문이 낮고, 입장이 굳건한 사람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가지 고려 끝에 1973년 모택동은 그의 세번쨰 후계자로 왕홍문(王洪文, 왕홍원)을 고른다. 왕홍문 체포 1976년 9월 9일, 모택동이 사망한다. 1976년 10월 6일 저녁, 모택동이 생전에 지정한 네번째 후계자인 중공중앙 제1부주석 화국봉(華國鋒, 화궈펑)은 중공원수 섭검영(葉劍英, 예젠잉), 중앙판공실주임 왕동흥..
2021. 6. 22.
1980년 왕동흥(汪東興)과 함께 정계를 떠난 4명의 풍운인물의 최후는...?
글: 무한적야사(無限的野史) 천명에 이르는 개국소장(開國少將) 중에서 왕동흥은 가장 유명하고, 가장 성공한 인물이다. 그는 17살때 홍군에 들어가서, 장정, 항일전쟁과 해방전쟁을 거치면서 여러번 구사일생하며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그러나 왕동흥에 대하여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것은 그가 전투를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모택동주석의 경위를 맡았기 때문이다. 1947년부터, 왕동흥은 계속 모택동주석의 경위를 맡고, 중앙경위단(中央警衛團)을 장악한다. 그는 일을 열심히 했고, 여러번 특수한 임무도 훌륭하게 완수한다. 그리하여 모주석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건국후, 왕동흥은 소장의 계급을 받았으며, 관료로서의 승진도 순조로웠다. 말년에는 정치국에 들어가, 상임위원에 당선되어 일약 당내서열5위의 풍운인물이 ..
2021. 2. 12.
쑨리쥔 낙마의 비밀은....?
글: 하소강(夏小强) 중국 공안부 공식웹사이트의 보도에 따르면, 4월 20일, 공안부 특근국(特勤局)은 공안특근부문화상전화회의를 개최하였다. 공안부 당위부서기, 상무부부장, 특근국장인 왕샤오홍(王小洪)이 회의에 참석하여 발언을 했다. 왕샤오홍이 이번 회의를 소집한 것은 4월 19일 쑨리쥔의 낙마사건때문이다. 왕샤오홍은 시진핑의 심복이다. 오랫동안 푸젠성의 공안계통에서 재직했다. 시진핑이 푸저우시위서기를 맡고 있을 때, 왕샤오홍은 민허우현 공안국장 및 푸저우시 공안국 부국장등의 직무를 맡았고, 시진핑과 관계가 밀접했다. 그는 나중에 푸저우시 공안국장, 장저우시 공안국장, 푸젠성 공안청 부청장, 샤먼시 부시장 겸 공안국장등의 직위를 역임했다. 2015년 3월, 시진핑은 왕샤오홍을 베이징으로 불러 푸정화(傅政..
2020. 4.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