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호해(胡亥)
해외매체에서는 차이치를 "창위독공(厂卫督公)"이라고 불렀다. 그 뜻은 동창(东厂)의 우두머리라는 것인데, 이는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동창은 명나라때의 정보기구이고, 특무조직이며, 조정의 응견(鹰犬)이다. 차이치는 동창을 주관할 뿐아니라, 동시에 천하의 온갖 일을 관리감독하며, 중공의 일상사무도 처리한다. 그렇다면 '창공(厂公)'이 아니다. 오히려 사례병필태감(司礼监秉笔太监)에 가깝다. 황상을 도와 세상만물을 처리하며 재상의 권한을 대행하는 직위인.
저명한 중국문제전문가인 가오신(高新) 교수는 일찌기 아시아자유논단에 글을 올려, 시진핑이 왜 차이치를 신임하는지를 기술했다. 그는 푸젠(福建)에서 저장(浙江) 그리고 다시 베이징(北京)까지 20여년에 걸친 "사적인 우정"외에 더욱 중요한 것은 차이치가 베이징의 당위서기로 있을 때, 말그대로 시진핑의 지시를 관철집행했다는 것이다 .특히 2017년 겨울 베이징시에서 하층인구를 정리하는 특별행동때, 시진핑을 대신하여 욕을 먹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모든 책임을 지고 철완의 수단으로 외지인들을 베이징에서 쫓아냈다. 이를 통해 시진핑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다.
가오신 교수는 해외에서 많지 않은 중국문제전문가이고, 실사구시적이며 논리가 정연하고, 개인적인 감정을 섞어넣지 않는다. 그는 해외 전문가들 중에서 뛰어난 인물이다. 그는 차이치가 너무나 많은 직위를 겸직하는데 감탄한다. 중앙서기처의 서열1위인 서기외에 차이치는 놀랍게도 중앙판공실주임을 겸임하여, 중공건정이래 최초의 인물이 된다. 동시에 국가안전위원회 부주석의 중임도 겸임한다; 그외에 일련의 직위도 가졌다. 예를 들어, 중앙선전사상소조 조장, 중앙당건영도소조 조장, 중앙학습'시사상'주제교육영도소소 조장등을 겸임하며, 중공의 이데올로기, 선전기구업무를 분담하고 있다. 이는 시진핑의 차이치에 대한 신임을 충분히 보여준다. 시진핑의 최고심복이라고 할 만하다. 비록 가오신의 견해는 다른 민주운동, 기공인사들도다 조금 뛰어난 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여전히 감탄하는 동시에 깊이있는 분석은 부족하다고 느낀다. 표면적인 현상을 분석하는데 그치고 심도있는 전면적인 분석은 이루어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차이치의 지위는, 중공신시대의 특수한 상황에 적응한 산물이다.
장쩌민의 후진타오에 대한 수렴청정시대에 중공의 9명 상위는 각각 업무를 나누어 관장했고, 각각 따로 놓았다. 이데올로기를 주관하는 상위와 총서기는 진정한 의미에서 상하관계에 놓여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단독으로 수렴청정하는 노인에게 책임졌다. 정법과 정권안정을 책임지는 상위도 마찬가지였다. 직접 장쩌민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았다. 중앙판공실주임은 정치국위원급이 맡았었다. 그런데, 시진핑시대에 이르러, 중공집권당이 치중하는 중점이 달라졌다. 더 이상 경제를 위주로 하지 않는다. 대량의 인터넷 내지 정보시대가 가져온 대량의 정보는 적시에 여과하고, 감별하고, 선별하고, 삭제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통해 이들 정보가 중공통치에 위험을 가져오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상응하여, 각종 집단사건, 사회혼란이 연이어 일어나고, 갈수록 심해졌다. 안정유지에 대하여 더욱 큰 필요가 생긴 것이다. 민중은 진압하고, 통치를 유지하는 것이 생사존망의 수준으로 중요해진 것이다.
시진핑은 19대이래 점차 장쩌민의 수중에서 각종 권력을 빼앗아 온다. 특히 20대이후, 그는 최종적을 고위층 정치적 국면을 장악하게 된다. 옛날의 심복들은 핵심 직위를 차지했다. 그는 새로운 요구, 특히 이데올로기, 인터넷관리감독 및 사회안정유지등의 권력을 하나로 묶을 필요가 있었다. 서기처의 서열1위인 차이치가 통일적으로 지휘하는데, 주요임무는 일상의 이데올로기, 문화오락, 인터넷, SNS등 모든 여론플랫폼에 대한 감독, 관리 및 지휘 공안, 정법, 국안등 강력한 부서와의 협력을 진행하고, 각종 돌발적인 사회집단사건도 처리해야 했고, 각종 공산당통치에 위협을 가하는 사건을 맹아단계에서 소멸시켜야 했다.
차이치는 이러한 위치에서, 거대한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게다가 중앙판공실주임을 겸임하면서, 정보를 수집, 처리, 여과하는 대뇌이자 CPU가 되어 명실상부한 중추가 된 것이다. 이는 예전 장쩌민시대와 후진타오시대와 천양지차를 보인다. 당시 지도자는 중점을 외자도입, 개혁개방에 두었다. 여론감독과 사회안정유지는 중요하긴 하지만, 경제발전을 위해 양보를 해야 했다. 다만 오늘날의 형세는 전혀 다르다. 정치제일, 국가안전이 최우선위치에 놓였다. 차이치가 이런 정도에 이른 것은 시대의 흐름을 탄 것이다. 구체제로 회귀하는 동풍을 맞이한 것이다.
둘째, 차이치의 승진과 권력장악은 시진핑으로부터 고도의 신임을 받았기 때문인데, 이런 신임은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차이치가 현재의 위치에 안정적으로 앉을 수 있었떤 것은 모두 능력과 실력에 의존한 것이 아니고, 시진핑에 대한 충성심에 의존한 것이다. 이런 충성심은 그저 헛된 구호만이 아니다. 몇번 만제를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몇마디 아부의 말을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정치세력을 스스로 잘라내야 하고, 일체의 파벌에 가담하지 않아야 한다. 이전의 자신의 심복이나 따르던 사람들을 모두 멀리해야 하고, 그들을 승진시키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시진핑에게 충성심을 표시한다. 자신은 이미 칼을 들어 거세를 한 셈이다. 모든 정치적 기반을 없애버렸고, 정치적 생식능력을 상실했다. 차이치는 고가과인이 되어 맨몹으로 혼자서 시진핑의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이후 오직 한 마음으로 시진핑을 위해 일하며, 다른 욕심을 부리지 않으며, 특히 조그만치의 정치적야심도 갖지 않아야 한다. 업무처리과정에서, 일체의 파벌을 대함에 있어서 공평하게 하여야 하고, 절대로 암중으로 어느 파벌과 결탁하는 동작을 보여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았다가 시진핑에게 발각된다면, 즉시 중추를 떠나야 할 것이고, 좌천되어버릴 것이다. 이런 정치적 거세술은 그가 충성하는지 아닌지를 시험하는 방법중 하나이다. 일단 완성되고나면, 황궁의 문은 마치 깊은 바다와 같아서, 평생 정치적 환관으로 지내야 하는 것이다. 시진핑과 환난을 함께하며,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다.
셋째, 차이치는 거대한 권력을 장악하였으므로, 일상업무과정에서 반드시 적절한 선을 잘 지켜야 하며, 기율을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 그래야 시진핑의 의심을 사지 않는다. 먼저, 중앙경위국등 경호계통과 경계를 분명히 해야 하고,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종샤오쥔(钟绍军)을 우두머리로 하는 중앙경위단과 벽을 쌓아두어야 하고, 절대 그 업무에 관여하거나 경위단의 업무인원의 인사에 간여하려해서는 안된다. 당연히, 경위국쪽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선을 명확히 지켜야 하고, 차이치와 거리를 유지해야 하며, 접촉을 피해야 한다. 만일 업무가 교차하여 부득이 협력해야 한다면, 차이치는 절대로 자신이 나서지 말고, 시진핑판공실의 인원을 통해 시진핑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은 후에 진행해야 한다. 해외의 여러 분석가들은 차이치의 권력이 중앙경위단을 움직일 정도가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이건 황당무계한 것이다. 만일 차이치가 그렇게 한다면 그가 죽을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것이 될 것이다.
넷째, 차이치는 군대의 장군들과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중앙군사위업무에 참여하거나 간여할 수 없다. 또한 군대인원과 밀접한 연락을 유지해서도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시진핑의 의심을 사서 신임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자고이래로, 중추의 위치에 있는 권신은 역사의 전환기에 큰 역할을 한다. 두 가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자신에게 많은 정치적 추종자가 있다는 것이다. 왕왕 그들은 한 정치세력의 대표자이다. 정계에서 호풍환우한다. 다른 하나는 군대를 장악한다 혹은 금군, 궁정무장역량을 장악한다. 긴급한 순간에 무력을 통해 정권을 통제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역사에 중대한 역할을 하는 정치인물이 된다. 문관으로 예를 들어 명나라때 가정제때부터 융경제때까지의 장거정(张居正), 병력을 이끌었던 인물로는 예를 들어 무측천시대 말년에 정변을 일으킨 장간지( 张柬之), 환언범(桓彦范)등이 있다. 그리고 당금의 인물로는 전 중앙판공실주임, 중앙경위단 단장인 왕동흥(汪东兴)이 있다. 모두 중요한 순간에 문관의 방대한 세력을 이용하여, 혹은 무력을 이용하여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고, 한 시대를 만든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이상을 살펴보면, 차이치는 정치적으로 거세를 당한 환관이다. 자아인격이 없다. 엄청난 정보를 처리하면서 산더미같은 문서와 각종 회의, 번잡한 업무를 밤낮으로 수행하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 결국 피로가 겹쳐서 과로로 죽을 때까지 일하게 될 것이다. 비록 권력이 아주 크지만, 정치적 인격도 없고, 그 혼자이다. 정치적 추종자도 없다. 동시에 군대, 금군세력과도 아무런 연원이 없다. 일단 최고지도자에게 변고가 발생하면, 차이치는 바로 빛을 잃게 될 것이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버리는 돌이 될 것이다. 스스로 어떤 강력한 세력에 투신하여 스스로를 보호받지 않는 한 각 세력으로붜 버림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상황을 보면, 차이치는 비록 거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어미가 자식을 안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것이 아니다. 모두 최고지도자가 부여한 것이고, 임시적인 것이다. 마치 진흙으로 만든 거인처럼 언제든지 여러가지 이유로 총애를 잃게 될 수 있고, 운명은 어떻게될지 모른다. 필자는 이를 이빨없는 호랑이라고 부르겠다. 노비의 운명이라고 보는 것이 아마도 적당한 판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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