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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록16

누가 서태후로 하여금 서방열강에 선전포고하게 하였는가? 글: 후유(煦濡) 1900년 6월 21일, 서태후는 광서제의 명의로 각국에 선전포고하는 조서를 내린다. 서태후는 서방열강의 여러가지 죄행을 나열했다. "삼십년동안, 우리나라가 인자하고 후덕하게 다독거리는 것을 빌미로 그들은 갈수록 발호하며 우리나라를 핍박하며, 우리의 토지를 침범하고, 우리의 인민을 유린하고, 우리의 재물을 강탈해갔다." "그들은 스스로 교화지국이라고 하면서 예의없이 횡행하고 병력과 무기의 날카로움을 믿고 이렇게까지 했다." 서태후는 이렇게 분노를 표시한 후, 마지막에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하는 선전구호를 내놓는다: "구차하게 살아남아 만고에 수치를 남기기보다 들고 일어나 자웅을 겨뤄보아야 한다!" 이 선전포고를 전환점으로 하여, 청정부는 정식으로 서방열강과 갈라지고, 중국과 서방열강의 전.. 2021. 6. 22.
청군(淸軍)은 팔국연합군에게 왜 힘없이 패배했을까? 글: 왕우군(王友群) 1900년, 중국역사상의 대사건이 하나 벌어진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오스트리아, 러시아의 8국연합군이 극히 단기간내에 청나라의 수도 북경으로 쳐들어온다. 청나라정부는 결국 팔국연합군을 이기지 못하고, 여기에 스페인, 벨기에, 네덜란드를 .. 2020. 4. 3.
새금화(賽金花)의 임종전 매체인터뷰 글: 반경적(潘京的) 1936년 12월 4일, 새금화가 병사한다. 그녀가 죽기 전에 만주족 언론인인 안의민(顔儀民)은 북평아동신문사(北平亞東新聞社) 사장의 신분으로 그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번 인터뷰는 경자지변(庚子之變)과 관련한 항간의 그녀에 관한 모든 소문을 다루었다. 그리고 .. 2019. 3. 8.
서태후의 사망을 전후한 시기의 후계다툼 글: 사우춘(史遇春) 동한때 반고의 <한서> 권87상 <양웅전(揚雄傳)> 제57상에는 양웅의 <반이소(反離騷)>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있다. <반이소>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정경미여추국혜(精瓊靡與秋菊兮), 장이연부천년(將以延夫天年); 임멱라이자운혜(臨汨羅而自隕兮), 공일.. 2018. 11. 16.
유신파를 가장 먼저 배신한 사람은 강유위의 동생 강광인(康廣仁)이다. 글: 당의문(唐宜雯) 유신변법의 실패원인을 얘기할 때 지금까지 원세개가 담사동 및 유신파를 배신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강유위가 조작해낸 말이다. 양계초조차도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만일 정말 원세개가 그랬다면, 민국이후, 양계초가 어찌 귀국하여 원세개.. 2018. 8. 2.
구문제독(九門提督)은 어떤 관직인가? 글: 논역사(論歷史) 구문제독의 전칭은 "제독구문보군순포오영통령(提督九門步軍巡捕五營統領)"이고 청왕조의 주경무관(駐京武官)이며, 강희13년(1674년)에 설립되었다. 주로 북경내성의 9개 성문 내외의 수비와 문금(門禁)을 책임진다. 9개성문은 정양문(正陽門), 숭문문(崇文門), 선무문(.. 2018. 7. 31.
"무술변법(戊戌變法)"의 4가지 놀라운 진상 글: 풍학영(馮學榮) 진상1: 서태후는 처음에 변법에 반대하지 않았다. 많은 역사드라마를 보면 서태후가 처음부터 끝까지 무술변법을 반대한 '완고한 보수파'로 그려진다. 기실 진실한 상황은 그렇지 않다. 사실상, 서태후는 처음에 광서제의 변법에 대하여 지지했다. 최소한 반대는 하지 .. 2018. 2. 8.
의화단(義和團)사건을 되돌아본다 (2) - 청나라정부 2. 청나라정부 의화단운동 후기는 청나라정부의 지지와 일정한 관계가 있으므로, 당시의 관청도 '구외배외'로 지목받았다. 아래에는 "협애구외(狹隘仇外)'하는 백성이 있고, 위에는 '맹목배외(盲目排外)'하는 고관이 있었으니, 한바탕의 재난은 피할 수가 없었다. 오늘날 의화단운동에 대.. 2016. 2. 29.
의화단(義和團)은 왜 반란을 일으켰는가? 글: 풍학영(馮學榮) 이 세상이 문제는 전부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최소한 절대다수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말해서 경제문제에 다름아니다. 겉으로 드러나든 아니든간에. 의화단은 "부청멸양(扶淸滅洋)"의 기치를 내걸고, 거기에는 아마도 서양인에 대한 원한의 감정도 들어있겠지만, 사료.. 2013. 12. 4.
부준(溥儁): 청말 대아거(大阿哥)로 황위계승자가 되었던 인물 글: 상한(桑寒) 청나라말기, 서태후는 온갖 방법을 다 써서 구차하게 정권의 목숨을 연장하고자 하였다. 가경제이후, 청왕조는 황태자를 둔 적이 없다. 황태자를 두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직접적으로 국가의 장래 주인을 결정하는 일이다. 서태후는 '무술변법'이후 광서제를 멸시한다. 자.. 2013. 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