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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분석

전제군주제의 비극: 생존을 위한 오명

by 중은우시 2010. 9. 17.

글: 왕립군(王立群)

 

현실생활에서 스스로 자신의 몸에 오물을 뒤집어쓰려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상 명성이 자자한 사람들 중에서 스스로 오명을 뒤집어쓴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잘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실제로 스스로 오명을 뒤집어쓰는 일에는 말못할 사연이 있는 법이다. 이런 사연은 영원히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해봐야 더 큰 재난을 불러올 뿐이기 때무이다. 그래서 이런 고통은 세상에서 가장 쓴 고통이다. 말할 수 있는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진정한 고통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중국역사상 스스로 오명을 뒤집어쓴 최초의 인물은 진시황의 수하장군인 왕전(王)이다. 왕전과 그의 아들 왕분(王賁)은 진시황이 전국통일을 하는데 큰 공을 세운 공신이다. 진시황이 초(楚)나라를 멸망시키고자 할 때, 왕전은 초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하여는 60만의 병력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병력은 진나라의 거의 전 병력이었다. 또 다른 청년장군 이신(李信)은 초나라를 멸망시키는데 20만 병력이면 된다고 말한다. 진시황은 그 말을 듣고, 이신의 말을 믿고, 왕전은 이미 늙어서, 겁쟁이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이신에게 20만의 대군을 이끌고 초나라를 공격하도록 명한다. 이신은 20만 병력을 이끌고 초나라로 갔는데, 초나라군대에 일패도지한다. 이때 진시황은 이신을 책망하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즉시 마차를 몰아 노장 왕전의 고향으로 달려가서 왕전에게 일을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왕전은 진시황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다만, 자신의 출병조건을 제시했다: 토지, 금전, 가옥. 진시황은 그 말을 듣고는 기뻐한다. 그는 왕전에게 말한다. 네가 초나라를 멸망시키면, 진나라의 최고 공신이 된다. 그런데 자손들이 잘살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거냐? 왕전은 머리를 흔들면서 자신의 요건이 만족되지 않으면 출병하지 않겠다고 고집한다. 진시황은 왕전이 요구하는 바를 다 들어준다. 군대를 이끌고 출병만 한다면 좋다는 것이다. 함곡관을 나서면, 관중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때 왕전은 다시 사람을 함양으로 보내어, 다시 밭, 가옥, 돈을 요구한다. 진시황은 왕전이 보낸 사자의 말을 듣고는 이 늙은이가 탐욕이 심하다고 느끼지만, 생각은 생각이고, 원하는대로 다 들어준다. 왕전은 그제서야 병력을 이끌고 출정했고, 2년간 싸워서 결국 초나라를 멸망시킨다.

 

나중에 누가 왕전에게 말했다. 당신은 나이도 많은데, 얼마나 먹을 수 있고, 얼마나 더 마실 수 있겠는가?  왜 그렇게 많이 요구하는가? 이는 자신의 명성을 더럽히는 것이 아닌가? 왕전은 그 말을 듣고는 기뻐한다. 왕전은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명성을 더럽히는 것이다. 내가 병력을 얼마나 데리고 가는가? 육십만이다. 이건 진나라의 전 병력이다. 내가 전국의 군대를 이끌고 출정하는데, 진시황이 안심이 될 것인가? 손안에 전국의 군대를 장악하고 있을 때, 목숨을 유지하려면,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

 

왕전은 옳았다. 그는 비록 무부이지만, 군왕을 알았다. 전제제도하의 군왕은 권력이 무한하다. 그에게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은 끝이 좋지 못할 수밖에 없다. 왕전이 탐욕을 부리는 것은 괜찮다. 모든 독재자들의 생각은 같다: 돈에 욕심을 부리는 자는 무섭지 않다. 최소한 최고권력까지 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왕전은 일생동안 부귀영화를 누린다. 진나라의 다른 장군인 백기(白起)가 자살로 생을 끝마친 것과 비교하면 왕전은 행운아이다. 이것은 왕전이 명군을 만나서가 아니라, 왕전이 독재군주가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어떤 논리로 일처리를 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오물을 뿌리는 것은 명성을 더럽히는 것이지만, 죽을 죄는 아니다. 이 이치는 왕전만 안 것이 아니라, 후세의 인물들도 알았다.

 

한나라초기의 명상 소하(蕭何)는 공이 대단했다. 유방의 여러 신하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조참(曹參)의 공이 제일이라고 할 때, 그 말을 물리치고 소하의 공로가 제일이라고 말한다. 성실하고 열심히 후방에서 유방을 위하여 공을 세운 소하도 아무런 이유없이 유방의 의심을 바든다. 소하는 '삼걸'의 하나이며, 문신이다. 당연히 왕전과 같은 무장은 아니다. 소하는 그저 일을 열심히 할 뿐이고, 일을 하자없이 처리할 뿐이었다. 그러나, 소하는 유방이 가장 꺼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어야 했다.

 

한나라 12년, 경포(鯨布)가 반란을 일으킨다. 유방은 병사를 이끌고 반란을 진압하러 간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걱정이 있었다. 자신이 떠난 후 후방에서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러번 사람을 보내어 소하가 무엇을 하는지를 살피게 한다. 이때 소하는 깜짝 놀랄 행동을 한다. 그는 공공연히 전답을 강제로 사모으고, 돈을 끌어모아서,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소하가 이처럼 스스로의 명성을 더럽히는 행동을 한 것은 유방에게 이런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나 소하는 민심을 얻지 못했고, 여러 사람들이 추대할 만한 사람이 아니며, 황제가 될 재목이 아니다. 나 소하의 바람은 재물이다. 정치야심이나 정치포부는 없다. 소하가 이렇게 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한11년, 진희, 한신이 연이어 모반을 일으켰다. 유방은 대군을 이끌고 원정을 갔다. 소하는 경성에 남아서 지켰는데, 유방은 소하에 대하여 안심하지 못했다. 소하가 이 기회에 황제위를 찬탈하지나 않을지 걱정한 것이다. 그리하여, 소하를 상국(相國)으로 올리고, 500명의 정예병사를 보내어 소하의 호위대를 만들어주었다. 소하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그리하여, 하사한 것을 모두 사양하고, 오히려 가산을 털어서 군비로 내놓았다. 그렇게 하고서야 재난을 면할 수 있었다.

 

한나라초기의 공신중에서, 소하만이 스스로의 명성을 더럽혀서 일신의 안위를 유지한 것이 아니다. 또 하나의 모략의 천재도 이 이치를 잘 알았다. 그는 바로 진평(陳平)이다.

 

여후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 성격이 강직한 우승상 왕릉(王陵)은 공개적으로 여후가 여러 여씨들을 왕으로 봉하는데 반대하다가 여후의 반격을 받아서, 명목상으로는 태부(太傅)가 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우승상의 실권을 박탈당하였다. 여후의 뜻을 거슬르지 않던 좌승상 진평은 여후가 여러 여씨를 왕으로 봉하는데 동의하였으므로, 여후에 의하여 우승상에 발탁된다. 이때 여후의 여동생 여수(呂)는 예전에 유방이 번쾌를 죽이고자 할 때, 진평이 번쾌를 붙잡는 계책을 내놓았기 때문에, 진평에 원한이 있었다. 여러번 여후에게 진평이 우승상이면서 일은 하지 않고 매일 술이나 마시고, 여자들고 놀아난다고 일러바쳤다. 진평은 그 소식을 전해듣고는 술도 더 많이 마시고, 놀기도 더 많이 놀았다. 여후는 원래 진평을 기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여씨일당주에는 진평의 경력, 공로, 명성, 수준에 버금가는 자가 없었다. 그리하여 할 수 없이 진평을 우승상으로 삼은 것이다. 여후의 내심으로는 공신파인 진평이 조정을 잘 관리하여, 권력이 그의 손아귀에 집중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여후는 모든 권력을 자신의 손아귀에 장악하고 싶어했다. 그리하여 진평의 이런 태도는 여후의 뜻에 맞았다. 그리하여 여후는 여동생의 말을 들은 후, 화를 내지 아니하였을 뿐아니라, 오히려 속으로 좋아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진평의 앞에서 여동생 여수를 혼내고, 진평에게 너는 내 여동생이 일러바치는 것을 걱정할 것이 없다. 아낙네의 말은 믿을 수가 없다. 나는 너를 믿는다고 말한다.

 

진평이 이같이 스스로의 명성을 더럽히는 방법으로 여후의 의심을 벗어나고, 자리를 보존했다. 여후가 죽은 후, 진평, 주발은 관영, 제양, 유장과 손을 잡고, 여씨일족을 없애버린다.

 

왕전, 소하, 진평은 모두 일류급인재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명성을 더렵히는 방법으로 일신의 안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부득이한 방법이었다. 누가 명성을 중시하지 않겠는가? 군주독재의 체제하에서, 생사여탈권은 모조리 군주에게 집중되어 있다. 살리고 싶으면 살리고, 죽이고 싶으면 죽이는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군주독재정치하에서 신하들은 어쩔 도리가 없다. 의심받지 않고 억울하게 죽고 싶지 않으면, 스스로를 더럽힘으로써 스스로를 지킬 수밖에 없다. 이것은 생존수단이다 이러한 생존수단이 재미없는 것이기는 하고, 슬픈 일이기는 하지만, 정치권의 규칙이다: 적자생존. 그렇기 때문에 이처럼 극히 불합리한 전제제도는 현대사회에서 버림을 받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