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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풍속

당나라때 여인은 가슴을 드러내는 옷을 입었을까?

by 중은우시 2018. 3. 14.

글: 필경노수(筆耕老叟)





당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드라마에서 궁중여인들은 대부분 가슴을 드러내고, 머리양식이 화려하며, 눈썹화장을 다양하게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물어본다. 당나라때 정말 저랬을까? 기실, 확실히 그러했다.


당나라때 부녀들은 가슴을 드러내는 복장(低胸装)을 을 좋아하여, 상의의 옷깃을 많이 파서, 앞가슴과 목을 드러냈다. 이에 대하여 많은 시인들은 멋진 싯구를 남긴다: "빈수향경운차우(鬂垂香頸雲遮藕), 분착난흉설압매(粉着蘭胸雪壓梅)" 그 뜻은 머리카락이 목까지 내려뜨려져서 마치 구름이 하얀 연뿌리를 덮은 것다는 것이다. 만래라군반로흉(慢來鬂髮半露胸)", "참차수살백부용(參差羞殺白芙容)" 반쯤 드러난 가슴, 그리고 하얀 연꽃이 부끄러워자살할 정도로 하얀 살. 이것은 물론 과장이다. "상공흉전출설석(常恐胸前春雪釋)" 앞가슴이 하얘서 흰눈과 같은데, 봄이 오면 흰눈이 녹는으니 봅이 와서 '눈'처럼 녹아버릴까 두렵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이들 싯구가 나오는 것은 모두 여인들이 가슴을 드러내는 복장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에 가슴과 어깨를 드러내는게 무슨 풍속을 해한다고 여기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여성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충분히 표현하는 것으로 보았다. 당나라때 가슴과 어깨를 드러내는 유행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가슴을 드러내는 복장에 어울리도록 '피견(披肩, 숄)'도 유행했다. 양귀비는 "피자견(披紫絹)"을 가장 좋아했고, 그녀의 몇몇 언니들은 "나피삼(羅披衫)"을 좋아했다. 그녀들이 바람에 숄을 흩날리며 걸어가는 모습을 다른 여자들도 앞다투어 따라했다.


하의는 홍군(紅裙), 즉 붉은치마를 입는 것이 유행했다. 심지어 "장안의 부녀들은 교외로 봄놀이를 가서, 좋은 꽃을 만나면 그 자리에 자리를 깔고 붉은 치마를 걸어서, 연회장막으로 했다." 양귀비는 색깔을 조화시키는 것을 중시했다. "호복황군(好服黃裙)에 자색 숄까지, 색깔이 잘 맞는다. 과연 당시 유행을 선도하던 미인이다.


당나라때 부녀는 머리양식이 다양했는데, 당현종때 가장 유행한 것은 고계(高髻)이다. 이는 궁정에서 시작해서 민간에 까지 유행한 머리양식이다. 양귀비의 고계는 특징이 있었다. 머리 끝에는 부채꼴의 화환(花環)을 꽂았다. 그리고 그 위에는 금봉주취(金鳳珠翠)등으로 장식했다. 귀에는 공작령(孔雀翎)를 더해서 성당시대의 머리양식이 된다.


당나라때 부녀들은 화장도 중시했다. 특히 눈썹을 그리는 것을 중시했다. 시인들은 이렇게 썼다. "장파저성문부서(粧罷低聲問夫婿), 화미심천입시무(畵眉深淺入時無)?" "종일당전학화미(終日堂前學畵眉), 기인증도승화지(幾人曾道勝花枝)" 이는 당나라때 눈썹을 그리는게 확실히 유행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현종은 일찌기 화공(畵工)을 시켜 '십미도(十眉圖)'를 정리하게 했다. 그때 가장 유행한 것은 유엽미(柳葉眉)였다. 당현종은 유엽미를 잘 그렸다. 그가 앞장서서 유엽미를 그리다보니, "천보말년의 유행하는 것은 "청대점미미세장(靑黛點眉眉細長)"의 모습이다. 분을 바를 때는 두텁게 바른다. 양귀비가 더운 여름에는 "매번 땀이 날 때마다 붉고 향이 있었다. 수건으로 닦으면 색이 복숭아같은 붉은 색(桃紅)이었다."


당나라때 부녀들은 향주머니(香囊)를 차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몸에서 향기가 나왔다. 양귀비의 향주머니 가운데에는 성서용뇌(盛瑞龍腦)가 있는데, 이는 페르시아산이고, 향기가 오랫동안 지속된다. 


당나라는 중국고대에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태평성대이다. 부녀들은 화장을 즐겼는데, 이는 바로 태평성대를 나타내는 것이다. 다만, 가난한 부녀, 일하는 부녀들은 이렇게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