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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혁명54

"북경(北京)"은 왜 "북평(北平)"으로 불리웠는가? 글: 진신(陳新) 북경은 3천여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古都)이다. 왕조가 교체됨에 따라, 전후로 60여개의 정식명칭과 별칭이 있었다. 세계의 도시역사상 명칭이 가장 많은 곳이라 할 수 있다. 그중 북경과 북평 두 명사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북경은 왜 역사상 북평으로 불리게 된 것일까? 그것은 명나라의 창업자 주원장(朱元璋)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 원나라말기, 몽골통치자에 반항하는 농민반란이 거세게 일어나 전국을 석권한다. 주원장은 농민군의 진우량(陳友諒), 장사성(張士誠)의 세력을 흡수한 후, 강남의 반벽강산을 차지한다. 그리고 원나라 지정27년(1367년) 대장 서달(徐達), 상우춘(常遇春)에게 군사를 주어 북벌에 나선다. 1368년, 주원장은 응천부(應天府, 지금의 남경)을 경사(京師).. 2023. 3. 1.
혁명, 개혁과 중국의 미래 글: 고천활해(高天闊海) 중국의 미래는 어디로 갈 것인가? 개략 다음의 3가지일 것이다: 현상유지. 위로부터 아래로의 개혁(改革), 아래로부터 위로의 혁명(革命). 현상유지는 단기간내에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선택이다. 그러나 매번 모두 하던대로 할 수는 없다. 가던 대로 계속 가다보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기 마련이다. 중공정권이 계승한 청나라정권이 바로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아편전쟁에서 대패하였으나, 청제국은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가던 길을 갔다. 그리하여 제2차 아편전쟁이 일어난다. 이번에는 권력계층들도 느끼게 되었다: 옛날 방식을 유지하는 것은 안되겠다. 그렇게 하면 수시로 서방열강에게 침략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자강운동(혹은 양무운동)이 벌어지게 된다. 서방국가가 강대한 것은 단지 ".. 2022. 12. 4.
노근재(盧芹齋): 문화재해외유출범의 일생 글: 도소을(圖小乙)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소을입니다. 최근 저는 성룡의 영화 를 다시 보았습니다. 영화에서 얘기하는 것은 제크가 사방을 돌아다니며 "원명원"의 십이생초중 잃어버린 마지막 4개의 수수(獸首)를 찾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소을이 소개하려는 사람은 문화재를 회수한 영웅이 아니라, 반대로 문화재를 팔아먹은 "매국노" 노근재입니다. 1880년, 노근재는 절강성 호주시(湖州市)의 한 보통농민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적지 않은 백성들은 아편에 중독되어 있었고, 거기에는 노근재의 부친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편에 중독되어, 노근재의 부친은 하루종일 기력이 없었고, 정신도 맑지 못했습니다. 노근재가 12살이 되었을 때, 부친은 아편흡입과다로 .. 2022. 7. 4.
<양주십일기(揚州十日記)>는 위작일까? 글: 화용군(華容君) 는 청나라때 나타났다고 하는 청나라초기 청나라군사들이 양주성을 함락시킨 후, 10일동안 잔혹하게 양주성의 주민들을 도살한 것을 기록한 글이다. 이 글은 역사학계와 애호가들의 논쟁을 불러왔다. 어떤 사람들은 이 글이 청나라군사들이 양주성의 주민들을 마구잡이로 도살한 것에 대한 진실한 증거라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이 글은 모호하고 애매한 내용과 추악한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였고, 이 글이 특정한 역사상황하에서 돌연 나타났다는 것들을 들어 이 글은 작성과 동기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필자는 후자의 견해에 찬동한다. 즉 는 악의를 가지고 쓴 위작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미리 밝히고 지나가야할 것같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청나라군사들이 양주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 2020. 11. 18.
중국고대의 '명(名)'과 '자(字)' 글: 고건가원(古建家園) 명자(名字, 중국에서는 '이름'이라는 뜻으로 쓰임)는 개인의 부호표시이다. 사람과 사람간에 서로 구별하기 위하여 쓰는 칭호이다. '명자'는 대부분 간단하다. '성(姓)'과 '명(名)'의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성'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고, 혈연관계를 나타낸.. 2019. 8. 25.
정정영(程正瀛): 무창의거의 첫 총성을 울린 인물 글: 역사객잔(歷史客棧) 정정영이라는 이름은 아마 거의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그는 역사상 간단한 인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바로 무창의거의 첫 총성을 울린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중국은 수천년의 봉건사회를 끝내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많은 사.. 2019. 5. 22.
청나라말기의 3가지 선택: 변법, 폭동, 혁명 글: 냉아봉(冷阿鋒) 대청 말기 인심이 바뀌었고, 모든 사람들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바뀔 것인가? 지위가 다르고, 처지가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생각은 서로 살랐다. 당시의 대청왕조도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기회를.. 2019. 4. 12.
강희장(江希張): 10살때 총통의 막료가 된 민국제일신동 글: 역사백가회(歷史百家匯) 강희장은 광서33년(1907년) 정월 초이틀에 산동성 제남 남력성현 강가장에서 태어난다. 부친 강종수(江鍾秀)는 농민출신으로 20년간 힘들게 공부하여,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룬다. 그는 제남의 성수묘(星宿廟)에 의학(義學)을 세운다. 그리고 <공맹도가>, <흥.. 2019. 2. 12.
융유(隆裕): 중국역사상 가장 공헌이 큰 황후 글: 청림지청(靑林知靑) 이전에 나는 융유황후를 좋아하지 않았다. 여러분들도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얼굴도 못생겼고, 말랐으며 등이 굽었다. 그리고 남편 광서제보다 3살이 많았다. 황후라는 명분은 있으나, 한번도 광서제의 은총을 받은 적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 2019. 1. 23.
몰락한 외삼영(外三營) 글: 범정(范晶) 1922년, 목유개(穆儒丐)라는 만주족작가가 심양의 <성경시보>에 장편소설을 발표한다. <동명원앙(同命鴛鴦)> 이야기는 별로 복잡하지 않다. 주로 청말민초에 두 남자와 한 여자의 비극적 사랑이야기이다. 그러나, 책에서의 장면이 아주 감동적이다. 왜냐하면 이는 .. 2019.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