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혁명, 개혁과 중국의 미래

중은우시 2022. 12. 4. 23:39

글: 고천활해(高天闊海)

 

중국의 미래는 어디로 갈 것인가? 개략 다음의 3가지일 것이다: 현상유지. 위로부터 아래로의 개혁(改革), 아래로부터 위로의 혁명(革命).

 

현상유지는 단기간내에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선택이다. 그러나 매번 모두 하던대로 할 수는 없다. 가던 대로 계속 가다보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기 마련이다.

 

중공정권이 계승한 청나라정권이 바로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아편전쟁에서 대패하였으나, 청제국은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가던 길을 갔다. 그리하여 제2차 아편전쟁이 일어난다. 이번에는 권력계층들도 느끼게 되었다: 옛날 방식을 유지하는 것은 안되겠다. 그렇게 하면 수시로 서방열강에게 침략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자강운동(혹은 양무운동)이 벌어지게 된다. 서방국가가 강대한 것은 단지 "선견포리(船堅炮利, 배가 튼튼하고 대포가 날카롭다)"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국가의 재력을 바탕으로 역량을 집중하여 대거 국유 총포공장, 조선공장을 만든다. 청정부는 마침내 북양함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당덕강(唐德剛)의 말을 빌리면, 당시 세계랭킹이 몇위내에 들었다.

 

그러나, 1895년의 청일전쟁에서 북양함대는 와해되고, 궤멸된다. 중국의 유식인사들은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 소위 "중체서용(中體西用)"의 허망함과 선견포리의 천박함을. 서방의 선진적인 기술을 도입해야하고, 정치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그리하여 무술변법(戊戌變法)이 일어나게 된다. 위로부터 아래로의 개혁을 통하여 황권전재를 군주입헌제도로 개혁하고자 했다. 일본 메이지유신의 경험을 배워서 강국의 꿈을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권력계층의 보수세력은 안목이 좁았고, 개혁을 요람에서 압살해버렸다. 그들은 무술육군자(戊戌六君子)를 죽여버리고, 원래 하던대로 계속했다.

 

결국, 중국의 지식인과 민중들이 깨닫게 된다. 썩은 청나라의 권력계층은 이미 치료할 약이 없다. 그들은 자신의 개혁과 전환의 가능성을 막아버렸다. 강국의 꿈을 실현하려면, 나라를 망하지 않도록 하고 계속되게 하려면 이 길을 막고 있는 청나라정권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렇게 아래로부터 위로의 혁명을 실행해야만 한다는 것을.

 

신해혁명(辛亥革命)이 일어났다. 중화대지를 근 3백년간 통치해온 청나라정권, 중국을 2천여년간 통치해온 황권전제재도는 결국 무너져버린다.

 

옛날 방식대로 하는 것은 비용이 가장 적게 들지만 계속 갈 수는 없다. 언젠가는 막다른 길에 부닥치게 된다. 일단 민의가 개혁을 원하면, 개혁과 혁명의 두 가지 길 중에서 통상 먼저 개혁 혹은 개량을 시도해보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댓가를 적게 치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이나 개량은 왕왕 권력계층의 협력과 참여가 필요하다. 권력계층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 개혁에는 진전의 희망이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메이지유신이 그러하다. 권력계층이 비협조와 불참을 선택하고 심지어 개혁을 반대하고 저지할 때, 개혁은 지체되고, 심지어 도퇴된다. 예를 들면 청나라의 무술변법이 그러하다.

 

1978년 중공은 위로부터 아래로의 개혁을 시작했다. 한때 진전이 순조로웠다. 경제자유화로 민중의 생활수준은 크게 제고되었다. 그리고 당시 중공은 이미 "당정분개(黨政分開)" "정기분개(政企分開)"등 구호를 내놓았다. 정치체제에 대한 개량을 진행한 것이다. 

 

그러나, 1989년 학생운동과 민주운동으로 중공내부의 보수세력이 대두한다. 그들은 중국의 학생과 민중에게 총질을 했고,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진압한다. 중공의 개혁은 정체되었다. 특히 정치, 사상층면에서 그러했다. 

 

다행히 경제개혁은 중국의 많은 민중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가져다 주었다. 그중 일부 도시에는 중산계급이 출현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자유권리를 양보하고 빵과 안전을 얻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민의의 구차한 선택으로 중공정권은 다시 삼십여년을 지탱할 수 있었다.

 

2019년이래 우한폐렴, 그리고 과거 2,3년의 방역정책에 현임 중공지도자의 정치적인 역행조치로 중국민중중의 지식계층 특히 대학생, 대도시의 중산계층은 마침내 그들이 자유와 바꾸려했던 빵과 안전의 결과를 인식하게 된다. 자유는 없고, 안전과 빵도 없다.

 

2022년 11월의 상하이, 마침내 중국인은 "시진핑, 물러나라!" "공산당, 물러나라!"는 혁명적인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말은 마음의 소리이다. 비록 이 구호를 외친 사람은 소수의 중국민중들이었지만, 그러나 마음 속으로 이런 생각을 가진 민중이 이미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구호가 "혁명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권력자의 타도를 외치고, 권력계급의 타도를 외치는 것은 혁명적인 요구이기 때문이다. 이 구호를 외친다는 것은 최소한 일부 중국민중은 이미 깨달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개혁의 길은 이미 막혔다. 이제 혁명뿐이다.

 

중공정권의 부패와 몰락은 1백여년전의 청나라정부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청나라정부가 한차례 또 한차례 좋은 기회를 놓쳤고, 개량으로 해결할 수 있던 시기에 옛날 방식을 고집했고, 결국 민중들을 혁명의 양산(梁山)으로 몰아넣었다. 이런 역정은 아마도 21세기의 중국에서 재연될 것이다.

 

서방의 한학계(漢學界)에서는 이렇게 생각한다: 중국역사에는 하나의 왕조가 교체되는 순환현상이 있다. 진나라때부터 시작하여, 그렇게 많은 왕조가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흥기, 강성, 쇠락, 혁명(무너진 후 다시 시작하는)의 순환을 벗어나지 못했다. 중공정권도 쇠락과 혁명의 계단을 밟고 있다. 남은 것은 단지 시간문제이다. 혹은 중국에서 언제 혁명이 발발하느냐의 문제이다.

 

아무도 혁명을 바라지는 않는다. 혁명은 통상적으로 옥석구분(玉石俱焚)한다. 사회에 대한 파괴력이 아주 크다. 보통민중은 여러가지 고통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역사는 이미 중공정권에게 위로부터 아래로의 개혁기회와 시간을 주었지만, 중공권력계층은 안목이 좁아서 기회를 잡지 못했고, 적시에 개혁하지 못했다.

 

개혁이 되지 않으면, 혁명이 일어난다. 중공정권에게 남은 날은 토끼의 꼬리와 같다. 길지 않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