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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민국 초기)

정정영(程正瀛): 무창의거의 첫 총성을 울린 인물

by 중은우시 2019. 5. 22.

글: 역사객잔(歷史客棧)






정정영이라는 이름은 아마 거의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그는 역사상 간단한 인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바로 무창의거의 첫 총성을 울린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중국은 수천년의 봉건사회를 끝내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아마 의문을 가질 것이다: 무창의거의 첫 총성을 울린 인물은 웅병곤(熊秉坤)이 아닌가? 당시 손중산(孫中山)은 외국인에게 그를 소개할 때, 그가 무창의거의 첫 총성을 울린 인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기실 이는 역사의 오해이다. 무창의거의 첫 총성을 울린 인물은 바로 정정영이고 웅병곤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정영은 어떻게 하여 무창의거의 첫 총성을 울리게 했을까? 이것을 얘기하자면 처음부터 얘기해야 한다.


1911년 9월 24일, 동맹회가 추진하여 무창의 두 개 혁명단체인 공진회와 문학사가 회의를 개최하고, 10월 6일 무창에서 무장봉기를 하여 청정부를 전복시키기로 결정한다.


다만 청정부가 사전에 소식을 정탐하여, 전체 무창성은 경계태세였고, 무장봉기는 어쩔 수 없이 늦추어진다.


10월 9일, 손무(孫武)는 폭약을 제조하다가 부주의하여 폭발이 발생한다. 순포(巡捕)는 불을 끄튼 과정에서 무장봉기의 문건, 명단, 계획등등을 발견한다. 혁명당인은 모조리 체포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리하여 혁명당인은 10월 10일 무장봉기를 일으키기로 결정하고, 각 의거부대는 첫 총성이 들리는 것을 신호로 동시에 무장봉기하기로 결정한다.


10월 10일 저녁, 호북신군 공정병 제8영의 혁명지사는 인원점검을 마친 후, 잠을 자지 않고, 모두 총을 꺼내어 닦으면서 무장봉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배장(排長) 도계승(陶啓勝)은 이때 평소 하던대로 순찰을 돈다. 1배 3붕(棚)에 도착했을 때 모두 잠을 자지 않고 있으며, 사병 김조룡(金兆龍), 정정영이 완전무장하고 총을 닦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아주 이상하게 여겨 김조룡에게 뭐하는 것이냐 혹시 반란을 일으키려는 것이냐고 묻는다.


평소에는 모두 배장을 무서워했지만, 이제는 곧 무장봉기를 할 것이므로 김조룡도 겁을 내지 않고 큰 소리로 말한다: "반란은 또 어떻습니까? 당신과 무슨 상관입니까?" 도계승은 즉시 수행하던 2명의 호위병에게 말한다: 즉시 저 놈의 총을 압수하라. 그러나 3붕의 사병이 모두 눈을 똑바로 뜨고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2명의 호위병은 감히 움직이지 못한다. 도계승은 직접 앞으로 나가서, 김조룡의 총을 빼앗으려 한다. 김조룡은 당연히 따르지 않고, 도계승과 싸우기 시작한다.


김조룡은 몸이 마르고 약했으며, 도계승은 덩치가 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조룡은 도계승에게 깔린다. 일이 워낙 돌발적이었으므로 모두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이때 김조룡이 큰 소리로 외친다: "너희는 왜 멍하니 있는 거냐? 빨리 덤벼들어랴."


그제서야 사람들은 정신을 차렸다. 정정영이 큰 걸음으로 돌진한다. 그리고 개머리판으로 도계승의 머리를 친다.  다른 사람들도 달려들어 도계승을 때리고 걷어찬다. 도계승은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기회를 노려 문으로 도망친다.


정정영은 도계승이 도망치려는 것을 보자, 마음이 급해진 나머지, 도계승을 향하여 총을 한 발 쏜다. 바로 도계성의 허리에 맞는다. 이 한 발은 별 것이 아니었지만, 공정영의 다른 장교들이 모두 달려오자, 정정영은 일단 시작한 김에 끝을 보자는 심정으로 총을 마구 갈긴다. 그리하여 3명의 장교가 쓰러진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다른 사병들도 아예 모조리 건물 밖으로 뛰쳐 나온다. 담량을 키우기 위해 하늘을 향해 총을 갈기며 소리친다: "군영을 나가자. 새로운 삶을 얻자!" 그리고 무장봉기때 미리 정해둔 목표지점인 초망대(楚望臺) 무기고로 달려간다.


공정병이 공격을 시작한 후, 주둔지 부근의 29표, 30표의 사병들도 즉시 호응하여, 군영을 빠져나온다. 그 다음에는 전체 무창성이 총성으로 뒤덮인다. 국내외를 깜짝 놀라게 만든 무창의거(신해혁명)가 정식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 점에서 보자면, 정정영은 진정한 무창의거의 최고 공로자이다.


이치대로라면, 무창의거 첫 총성의 공적으로 정정영은 큰 인물이 되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왜 그의 이름은 전혀 알려지지 않게 되었을까?


원래, 혁명군 내부는 모순이 많았다. 정정영은 비관적인 심리에 빠져서, 당시 가장 실력있는 사람이 원세개라고 여겨 원세개에게 의탁한다. 이렇게 총부리를 혁명동지들에게 겨누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혁명진영에서는 그를 반도로 본다.


이런 사람을 혁명군이 그냥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계책을 써서 그를 유인한 다음, 술을 멱여 취하게 만들고, 꽁꽁 묶어서 장강에 빠트린다.


이런 연유로, 정정영의 역사공적은 고의적으로 말살되었다. '무창의거 첫 총성'이라는 영예는 웅병곤이 가져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