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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노세키조약10

일본의 유구(琉球)왕국 병합 경위는...? 글: 양택휘(楊澤暉) 중국과 유구왕국의 교류는 역사가 길다. 유구군도(琉球群島)는 일본 규슈섬의 서남쪽에서 중국대만의 동북쪽의 사이에 크고 작은 섬 55개를 포함하고 있고, 3개의 비교적 큰 군도로 나눌 수 있다. 북부는 엄미군도(奄美群島, 일본명 아마미제도), 중부는 충승제도(冲繩諸島, 일본명 오키나와제도), 남부는 선도제도(先島諸島, 일본명 사키시마제도)이다. 유구국의 역사서 에 따르면, 수양제(隋煬帝)가 우기위(羽騎尉) 주관(朱寬)에게 명하여 다른 나라들의 풍속을 알아보라고 보냈을 때, 이곳에 도착한 적이 있다고 한다. 멀리서 보니 섬들이 마치 규룡(虬龍)이 큰 바다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같아서, "유구(流虬)"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을 보면 이에 대해 상세한 문자기록이 있다. 그후 중국에서는 ".. 2023. 5. 23.
중국은 왜 일본보다 자체 은행설립이 20년이나 늦어졌을까? 글: 건안(建顔) 1897년, 중국근대 최초의 중국계자본은행인 통상은행(通商銀行)이 정식 설립되었다. 그런데, 일본의 최초 일본계자본은행인 미쓰이은행(三井銀行)은 1876년에 일찌감치 설립되어 있었다. 중국은 일본보다 20년이 늦은 것이다. 중국최초의 중앙은행인 호부은행(戶部銀行)의 설립도 일본에 비하여 20년이 늦었다. 기실 일찌기 1885년에 이홍장(李鴻章)과 순친왕(醇親王)의 두 거물이 손을 잡고 두 차례에 걸쳐 조정에 근대은행설립을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후세에 보기에 국가와 민족에 이로운 이 건의는 일군의 '애국자'들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한다. 설마 은행을 설립하는 것이 비애국적이란 말인가? 1. 두 거물이 관영은행의 설립을 주장하다. 1860년대, 서방의 공업문명이 동아시아로 물밀듯이 밀려.. 2022. 8. 22.
훈령(勛齡): 중국의 나폴레옹 글: 살소(薩蘇)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이홍장(李鴻章)이 비스마르크를 만났을 때, 자신이 동방의 비스마르크라고 칭해진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비스마르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그러나 서방의 이횽장이라고 불리지는 않습니다." 이 에피소드가 만일 사실이라면, 비.. 2016. 4. 11.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패한 근본적인 이유는? 글: 뇌이(雷頤) 금년은 청일전쟁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전쟁에서 중국은 일본에 참패한다. 그 후에 영토를 할양하고 배상금을 지급하는 상권욕국(喪權辱國)의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한다. 제1차 아편전쟁이후의 반세기동안 중국은 서방열강에 연이어 패배했지만, 수천년동안 중.. 2014. 8. 26.
일본인은 청일전쟁을 어떻게 보는가? 글: 장풍(蔣豊) 세월이 흘러서 다시 갑오년이 되었다. 1894년 청일전쟁(갑오전쟁)이 발발할 때, 일본국민들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들은 왜 제자인 일본이 자신의 스승인 중국에 칼을 겨누고 덤벼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명치대정견문록>의 기술에 따르면, 청일전쟁이 개전되는 초.. 2014. 6. 23.
2차대전승리후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를 중국이 회수하지 못한 이유는? 작자: 미상 현재 알려진 중국과 일본의 역사자료를 보면, 중국이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발견하고 명명했다. 그러나, 현재 댜오위다오는 일본이 점령하고 있다. 비록 중국측이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처음 댜오위다오를 발견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전의 일이.. 2013. 8. 5.
오키나와: 중국과 일본간의 이슈로 될 것인가? 글: 장풍 "오키나와가 일본영토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아무런 쟁점이 없는 사실이다. 만일 중국에 그런 말이 나왔다면 확실히 식견이 부족한 견해다." 일본의 내각관방장관 스가 요시히데가 2013년 5월 8일 동경에서 한 이 말은 중국매체에 나온 '오키나와문제 재심의'.. 2013. 5. 18.
리홍장과 이토 히로부미의 비교 글: 정만군(程萬軍) 1895년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하기 전에, 청나라정부의 전권대신인 리홍장(李鴻章)은 일본 전권대표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서로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이토는 리홍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중당대인(中堂大人, 리홍장을 가르킴)은 얼마나 위풍당당했습.. 2008. 12. 5.
이홍장의 눈물 17세기중엽부터 제2차세계대전까지, 자본주의의 출현과 발전으로 서방열강은 모두 대외적인 식민지확장, 타국의 자원약탈, 세계시장의 점령이라는 발전의 길을 걸었다. 19세기이전의 서방열강이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를 침략한 전쟁이든, 20세기상반기에 발생한 2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이든, 그 .. 2007. 7. 9.
의화단과 이홍장: 누가 더 애국자인가? 애국이라는 깃발아래서 의화단(義和團)과 이홍장(李鴻章)을 비교한다는 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코메디처럼 들릴 것이다. 의화단은 역사가 공인한 애국운동이고, 이홍장은 대중이 이를 가는 매국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사상이 점차 개방되고, 사람들이 과거에 이미 결론이 난 것처럼 보.. 2006. 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