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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조40

송진종(宋眞宗) 조항(趙恒): 송태종의 셋째아들인 그는 어떻게 후계자가 되었는가? 글: 노황설사(老黃說史) 송태종 조광의(趙光義)에게는 9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는 왜 황장자에게 황위를 물려주지 않고, 황삼자에게 넘겨주었을까? 황삼자 조항은 조광의의 장자도 아니고, 황후소생도 아닌데 어떻게 하여 황위를 물려받을 수 있었을까? 송태조 개보9년(976년) 십월 십구일 밤, 송태조 조광윤(趙匡胤)은 그의 동생 조광의를 불러 술을 마시고, 함께 궁안에서 잠든다. 다음 날 새벽(양력 11월 14일), 조광윤은 만세전에서 붕어하니 향년 50세이다. 송태조가 붕어할 때, 효장황후는 급히 환관 왕계은(王繼恩)으로 하여금 황자 조덕방(趙德芳)을 입궁시켜 후사를 처리하게 한다. 그러나 왕계은은 곧바로 남부로 가서 조광의에게 알리고, 조광의가 급히 입궁하여 등극하니, 그가 송태종이다. 조광윤의 죽음과 조.. 2021. 4. 13.
북송황제의 장례과정 글: 시습사사(時拾史事) 고대에 황제가 붕어하면, 왕왕 호화스럽고 융중한 장례식을 치른다. 예를 들어, 진시황, 한무제등등이 모두 그러했다. 그렇다면 송나라의 황제는 예외였을까" 당연히, 아니었다. 관가(官家, 황제)는 통치집단의 1인자이다. 중국에서 가장 권력이 있는 사람이다. 사후에 거창한 장례식도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황제의 지위를 체현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북송황제의 장례과장을 돌아보고, 도대체 어떤 절차를 거쳤고, 얼마나 복잡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유조(遺詔)를 선독(宣讀)하다 정상적이라면 황제가 붕어한 후 반드시 즉시 신황제를 확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국을 주재할 사람이 없게 된다. 구가기구도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럼 도대체 누가 황제에 올라야 하는가? 바로 이때 유조의.. 2020. 8. 23.
"연운십육주(燕雲十六州)"의 지리적위치는 얼마나 중요한가? 글: 지역사(知歷史) '연운십육주'를 얘기하자면, 그것이 거란의 야율덕광(耶律德光)에게 할양되고난 후, 이후의 4백년간 중원한족왕조의 운명을 직접적으로 바꾸었다고 할 수 있다. '연운십육주'는 말그대로 16개의 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유주(幽州), 계주(薊州), 영주(瀛州), 탁주(涿州), 막주(莫州), 단주(檀州), 순주(順州), 신주(新州), 규주(嬀州), 유주(儒州), 무주(武州), 운주(雲州), 응주(應州), 환주(寰州), 삭주(朔州), 울주(蔚州)이다. 비록 겨우 16개의 주이긴 하지만, 는 이 땅에 대하여 아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유, 연의 여러 주는 기후와 지형으로 한족과 외족을 나누고 있어, 장정 1명이 관문을 막으면 만명의 적도 막아낼 수있다"(幽燕諸州, 蓋天造地設以藩漢之限, 誠一.. 2020. 5. 18.
"삼갑(三甲)"은 1,2,3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글: 왕동지(王東志)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삼갑"이라는 말로 1,2,3등을 표시한다. 이 단어는 스포츠경기보도에서 자주 사용된다 예를 들어, 매체의 보도에 "누구누구는 4등의 성적을 거두었다. 아쉽게도 삼갑에 들지 못했다."등등의 유사한 내용이 많다. 사실상, "삼갑"은 1,2,3등을 표시하거나 3등을 표시하는 말이 아니다. 이 단어는 잘못 쓰이고 있는 것이다. "삼갑"이라는 단어는 원래 고대 과거제도에서 나왔다. 에는 '삼갑'이라는 단어와 해석이 없다. 에는 '삼갑'의 유래를 적어 놓고 있다: "태평흥국8년, 진사(進士)의 여러 과에 율의(律義)를 시험보기 시작했다....진사를 삼갑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그 뜻은 태평흥국8년(983년) 전시(殿試)이후 진사를 일갑(一甲), 이갑(二甲), 삼갑(三甲)의.. 2020. 5. 7.
고대의 시호(諡號)제도와 규칙 글: 배주품역사(杯酒品歷史) 중국에 이런 말이 있다: 개관정론(蓋棺定論)! 관두껑을 닫고나서 결론을 내린다. 그 의미는 한 사람이 살아있을 때에 대한 시비공과는 그가 사망한 후에야 비로소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황제와 문무대신이 죽은 후에 조정은 그들에게 시호를 내린다. 1개의 글자로서 그의 일생을 개괄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호가 그냥 간단한 글자 1자는 아니다. 그 안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통상 황제의 시호와 묘호는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청나라의 강희(康熙)황제는 우리가 그를 성조인황제(聖祖仁皇帝)라고 부른다. '성조'는 묘호(廟號)이고, '인(仁)'은 시호(諡號)이다. 황제에게 묘호를 올릴 때는 불문율이 있다. 조(祖)는 공(功)이 있어야 하고, 종(宗)은 덕(德).. 2019. 1. 8.
송(宋)은 왜 개봉(開封)을 수도로 삼았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조송(趙宋)은 나라를 세우면서, 후주(後周)의 정치적 유산을 승계했고, 변량(汴梁, 開封)을 수도로 삼는다. 그러나 송태조(宋太祖) 조광윤(趙匡胤)의 마음 속에는 변량을 수도로 삼고 싶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개봉은 "사전지지(四戰之地)"이고, 방어할 험준한 지형.. 2018. 10. 16.
오대십국시대의 "촉(蜀)"은 왜 단명했을까? 글: 가등영(賈登榮) 당나라말기, 천하는 대란에 빠지고, 사방에서 전쟁이 벌어지며, 여러 영웅들이 나와서 권력을 차지하려고 싸웠다. 일시에 절도사, 자사등은 속속 스스로의 병력을 거느리고, 독립하여 정권을 세운다. 중국대지에 여러 소국이 나타나게 된다. 이 시기에 사천에 있던 왕.. 2018. 10. 15.
송고종 조구(趙構)가 즉위할 때 다른 종실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글: 만풍모우(晩風暮雨) 정강2년(1127년), 송휘종,송흠종 두 황제가 금나라에 포로로 끌려가며, 북송이 멸망한다. 역사에서 "정강지변"이라고 부르는 사건이다. 송휘종의 적자중에서 유일하게 북으로 끌려가지 않은 강왕(康王) 조구가 황위에 오르는 것은 민심에 맞고, 명정언순(名正言順).. 2018. 8. 14.
진박(陳搏): 화산파의 조사로 알려진 그가 진교병변(陳橋兵變)의 기획자인가? 글: 취역사(趣歷史) (진박은 무협지에서 화산파의 조사로 알려져 있다) 사료에서 아주 재미있는 기록을 보았다. <소씨견문록>에 따르면, 진박은 일찌기 흰색나귀(白騾)를 타고 수백명의 떠돌이소년을 데리고 변량성(汴梁城)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도중에 돌연 놀라운 소식이 전해져 .. 2018. 8. 10.
팔현왕(八賢王) 조덕방(趙德芳)은 정말 금간(金鐧)을 가졌는가? 글: 조한청(趙汗靑) 조덕방은 '팔왕야(八王爺)'로도 불리고, 사람들은 그를 "팔현왕(八賢王)"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희곡, 연의에서 유래한 것이다. 허구로 조덕방이 손에 금간을 쥐고, 위로는 혼군(昏君)을 치고, 아래로는 간신을 때리는 정기늠름한 이미지이다. 즉 정의의 화신이다. 그는 .. 2018. 3. 7.